(제 6 회)
제 1 장
푸른 호수
3
(2)
서정관의 집은 공장유치원앞에 있는 탑식아빠트 5층이였다.
층계를 오른 그들은 5층 3호앞에 이르러 초인종을 눌렀다. 인츰 중학교(당시)에 다니는 서정관의 아들애가 나와 그들을 맞아주었다.
문이 열리자 부엌에서 기름이며 양념감냄새가 기분좋게 훅 풍겨나왔다.
《누이네가 왔군요. 어서 들어와요.》
서정관의 안해 방송화가 짧은 다리로 전실에까지 나와서 시누이네를 반기였다. 목이 밭고 몸집이 통통한 방송화의 크지 않은 눈가에서 애교스런 웃음이 찰찰 넘치였다.
서정옥은 준비해가지고온 식료품꾸레미를 형님에게 안겨주었다.
《변변치 못해서 미안해요.》
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애를 남편의 무릎우에 앉혀놓은 정옥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다시 부엌으로 내려갔다.
부엌에서는 배합먹이직장에서 통계원으로 일하는 방송화의 동생 방옥화가 칼도마장단을 경쾌하게 울리며 료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옥은 팔소매를 거두고 만두를 빚는 방송화와 마주앉았다. 그는 날렵한 손동작으로 솜씨있게 만두를 빚기 시작하였다.
한송이, 두송이 렬을 맞추어 모양새 곱게 빚어놓은 만두를 보고 방송화가 혀를 찼다.
《누인 손끝이 여물어서 못하는 재간이 없다니까.》
《일철이 아버지가 색시 하나만은 잘 얻었지요 뭐.》
몸집이 큰 방옥화도 한마디 께끼였다.
부엌에서는 세 녀인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서정관은 날이 어두워서야 방옥화의 남편인 운수직장 운전사와 함께 집에 들어왔다.
《언니한테 들려봤어요?》
남편의 가방을 받으며 방송화가 물었다. 가공직장장 방인화를 두고하는 말이였다.
《이제 오면서 들려보니 시어머니가 앓아서 병원에 갔다누만.》
서정관이 겉옷을 벗으며 대답했다. 방송화의 얼굴은 샐쭉해졌다.
《언닌 언제 봐야 형제들 일에 무관심하다니까.》
이윽고 세 녀인은 부엌과 아래방을 오락가락하며 생일상을 차려놓았다.
집식구들은 모두 밥상에 둘러앉았다. 방옥화가 얼른 증폭록음기를 켜놓았다. 경쾌한 음악이 울리자 집안엔 명절분위기가 넘치였다.
서정관의 쉰두번째 생일을 축하하여 집식구들은 차례로 그에게 술을 부었다. 가장답게 웃목에 틀스럽게 앉은 서정관은 우아한 몸가짐과 자세로 생일축하잔을 받았다.
서정옥은 푸짐하면서도 고급한 생일상을 둘러보며 형님의 솜씨가 여간이 아니라고 속으로 감탄하였다.
사실 편의작업반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방송화는 남달리 손이 크고 인심이 후한 녀인이였다. 그는 뭐든 생기면 형제들과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척척 나누어주기도 했다. 무슨 일에서나 쪼물짝하지 않고 통이 큰데다가 남편의 말이라면 물속으로 솜마대도 서슴없이 끄는 녀인이기도 하였다.
그는 해마다 남편의 생일이면 가까이에 살고있는 형제들과 이웃들을 청해서 남편을 축하해주었다. 시집켠이나 친정켠식구들모두가 공장에 뿌리를 내리고 공장과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들이여서 명절날이나 생일날에 모여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것이 그의 남다른 기쁨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남편의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있었다.
오리먹이용조가비를 실어오느라 장거리운전을 나갔다가 들어온 방옥화의 남편인 운전사는 뭐든 다 맛있다면서 부지런히 저가락을 놀리였다. 서정관과 정의성은 료리의 맛을 음미해보며 천천히 식사를 했다.
방송화는 녀주인답게 집식구들을 둘러보며 료리를 권하기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집식구들의 화제는 느닷없이 새로 온 기사장에게로 옮겨졌다.
《글쎄 수의축산대학을 졸업하구 처녀시절부터 닭공장에서 지배인을 했대요.
마흔살전에 벌써 큰 공장 기사장이 됐으니 꽤나 발전이 빠르지요?
겉볼안이라구 훤하구 눈이 억실한게 녀자가 원체 잘난데다가 성격두 시원시원하더군요.》
며칠전에 배합먹이직장에서 보았던 녀성기사장의 품위있고 세련된 자세와 잘생긴 얼굴을 그려보며 방옥화가 먼저 말꼭지를 떼였다.
서정옥도 이때라싶게 자기의 속마음을 터놓았다.
《난 기사장이 우리같은 녀자인데다가 학위까지 받았다는게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그는 자기의 말에 모두가 긍정하길 바라며 집식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남편도 오빠도 침묵만 지키였다.
부엌에 내려가 만두국을 들여오던 방송화가 그의 말을 받았다.
《누이! 누인 일철이 아버지도 학위를 받았구 지금은 또 큰 박사론문이 될 첨가제를 연구하고있는데 뭘 그다지 부러워하나?》
방송화는 작은 눈에 웃음을 담으며 흘겨보았다.
《하지만…》
정옥은 신뢰감이 어린 어조로 말했다.
《…녀자가 우리 공장처럼 큰 기업소의 기사장을 한다는게 어디 쉽나요? 그리구 처녀때는 글쎄 지배인까지 했다지 않겠나요? 거기에 또 학위를 받았구… 아마 나같은건 열번 다시 태여나두 어림없을거예요.》
남편의 잔에 술을 붓던 방옥화가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아이들에게 만두국을 더 담아주던 방송화가 다시금 힐난조로 말했다.
《옛날부터 솟을대문안에 더 큰 눈물이 있대요. 그러구보니 남들이 부러워하는 생활도 막상 헤쳐보면 그저 그렇더구만.》
정의성과 운전사앞에 료리그릇들을 밀어놓으며 방송화는 말주머니를 끌러놓았다.
《내 오늘 우리 미용실에 찾아온 아주머니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었는데 기사장에게두 무슨 곡절은 있었더구만. 그러게 서른살이 퍽 넘어서야 결혼을 했겠지? 그 나이에 이제 겨우 세살난 딸애가 있대요.》
《그-래요? 남편은 뭘한대요?》
방옥화가 자못 호기심이 동해서 물었다.
《남편은 뭐 군인민위원회 계획부원이라는지. 꽁생님이구 사내싸지 못한지 제 집사람에게 꿈쩍 못하는데다가 가시어머니까지 모시느라 혼쌀난다누나. 그 늙은이가 글쎄 웬간한 사내쯤은 쥐락펴락하는 형편없는 왕드살이래.》
《아이구나! 세상에…》
방옥화는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목격한듯 철썩 무릎을 쳤다.
《집살림은 바루 그 친정어머니가 도맡아안구있대. 결국 기사장이야 집살림엔 아예 손털구 나앉은셈이지. 헌데 그쯤한게 뭐 그리 크겠나?
그리구 우리 집안끼리니 말이지 큰 공장이든 작은 공장이든 지배인을 하다가 기사장이 된거야 승급이라고 할수 없지 않나?》
방송화는 말을 마치고 크지 않은 눈으로 집안식구들의 얼굴을 재빨리 쭈욱- 훑어보았다. 누구도 그의 말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제껏 호기심에 등이 달아 말꼬리를 물었던 방옥화까지도 슬며시 눈길을 외면한다.
동생의 남편인 운전사만이 술 몇잔 들어가자 기분이 들떠서 제꺽 처형의 말을 받았다.
《승급이든 강급이든 기사장이라면야 사실 큰 간부지요. 기사장이 간단하우? 난 이 나이 되두룩 반장도 못했수다. 허허… 그리구 녀자가 큰 일을 하느라 시집도 늦게 갔을게구요.》
식사하면서 류별나게 입소리를 내군 하는 그는 방송화를 돌아보며 벌씬 웃었다.
방송화는 깔끄러운 눈빛으로 힐끔 흘겨보았다. 운전사의 말도 결코 자기 말에 대한 지지가 아니였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