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9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6
(2)
김정일동지께서는 급히 그에게로 다가가 팔을 끼시고 창가에 놓인 쏘파쪽으로
부축해가시였다. 그렇게 단단하던 몸이 며칠새 어떻게나 헐끔해졌는지 자신께 온몸을 기대다싶이 하고 걷는데도 별로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최현을 쏘파에 앉혀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원탁우에 놓인 차고뿌에 더운 물을 따라가지고 그의 곁에 다가와 앉으시였다.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하실것이지 불편한 몸에 왜 여기까지 오십니까? 심장은 좀 일없습니까?》
최현은 그이께서 들려주신 더운 물고뿌를 두손으로 그러쥐고 후루루 입김을 불다가 검버섯이 더묵더묵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힘겹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수령님께서 친히 병원에까지 다녀가시구 장군이 또 귀한 약재들을 보내주셔서 이제는 퍽
나았습니다. 그런데…》
최현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움쭉 몸을 일으켜 손에 들었던 물고뿌를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쏘파에 앉으며 그이의
손을 꼭 잡았다.
《내 아무래두 수령님앞에서 망녕된짓을 한것같습니다.》
《망녕된짓이라니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상심하셨습니까?》
최현은 숨이 가빠오는지 울대가 훌떡 뛰도록 마른침을 삼키였다.
《글쎄 오늘 퇴원하자마자 수령님 집무실에 가니… 저더러 당장 민족보위상을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당에서 이미
결정을 했다고 하시면서… 난 〈알았습니다.〉하구 대답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내가 대답을 잘못 올린것같단 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최현이 무슨 말을 하자고 온것인지 그제야 짐작이 가시여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최현은 큰일난듯 손을 홰홰 저었다.
《웃으실 일이 아닙니다. 옛날말에두 신하는 나라님의 은총을 세번 사양해야 한다구 했는데 주책없이 덥석 대답을 해놓은것이 아무래도 로망같아
그럽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호랑이같이 사납고 결패가 있으면서도 마음이 그지없이 순박한 이
백전로장의 고백을 미소속에 듣고계시였다.
몇해전 오진우가 자신께 찾아와 우락부락하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창봉이 그놈, 내 당장 쏴갈길가 하다가 참았습니다!
산림대에서 가마솥이나 지고 따라다니던게 최현동지를 어떻게 보구…》
그날 오진우는 최현의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왔다는 말을 듣고 축하겸 집에 찾아갔다가 물바께쯔를 든 김철호를 보게 되였다고 한다.
보위성
주택구역에 수도물이 안나와서 그런 역사인가고 물으니 김철호는 쓰다달다 말이 없다가 웃집에서 수도물로 논농사를 짓는 모양인지 통 물이 내려오지 않는다고 롱담삼아 푸념을 하더라는것이였다.
오진우는 그달음으로 웃집에 달려올라갔다.
그때 최현의 집은 민족보위성주택구역의 맨 아래쪽에 있었는데 수도물은 산꼭대기에 있는 음료수탕크에서 관을 뽑은 자연수여서 맨우에 자리잡은
민족보위상, 그아래 총정치국장네 집을 거쳐서야 내려오게 되여있었다. 물이 안내려오는 원인을 알아보려고 올라갔던 오진우는 입이 딱
벌어지고말았다.
민족보위상의 집은 뜨락을 운동장만하게 닦아놓고 그 한복판에 직사각형으로 수영장을 만들어놓았는데 타일까지 번쩍거리는 텅 빈 못에 맑은
수도물이 철철 넘치고있었다. 그 커다란 못을 다 채우고 넘어난 물이 이번에는 그 아래집에 꼭같이 만들어놓은 못에 또 꿀럭꿀럭 괴였다. 이렇게
되고보니 최현의 집 수도꼭지를 적실만한 물은 애초에 한방울도 남는것이 없었던것이다. 오진우는 너무도 격분하여 최현을 붙들고 따졌다.
《아니, 체신상 몇년에 사민이 되셨소? 이제야 군복두 다시 입었겠다, 저런 버르장머리없는것들을 왜 탕탕 쏴갈기지 못해요?》
최현은 숱진 장미를 꿈틀하더니 《야, 총이라는게 그런걸 쏘라구 차구댕기는게 아니다. 수령님께서 쏘라고 해야 쏘지.》하고 오히려 오진우를 윽박지르더라는것이였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때의 일을 상기하시고나서 풀이 푹 죽어버린 최현에게 정색한 표정을
지어보이시였다.
《수령님께서 최현동지의 직무를 당에서 결정했다고 하셨다지요?》
《예… 분명 그렇게 말씀을 하셨지요.》
《그렇다면 최현동진 지금 저와 당결정을 흥정하고있는셈입니다?》
최현은 수그렸던 머리를 번쩍 쳐들며 이마전에 손을 가져갔다.
《아니, 내가요? 그야 어떻게 그런 무엄한…》
김정일동지께서는 외투소매가 후렁후렁한 그의 팔을 힘주어 그러잡으시였다.
《그렇다면 뭘 더 론할게 있습니까? 물론 이제부터 민족보위성사업을 책임지고 일하자면 힘이 드실겁니다. 그러나 모자라는 힘은 나를 비롯해서
우리 젊은 사람들이 보태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물고뿌를 최현에게 주시려다가 물이 다 식은것을
느끼고는 도로 내려놓으시였다. 최현은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주먹으로 무릎을 툭툭 치다가 뚝 멈추었다.
《내 장군의 뜻을 알기때문에 더 그러는것입니다. 어쩐지 당에 부담을 끼치는것같아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집무실안을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그이의 심중이 실린 무거운 구두발소리가 바닥을 울리였다.
이윽고 구두발소리가 뚝 멎었다.
《최현동지, 제가 지난해 7월에 철호어머니랑 같이 백두산에 갔던 일이 기억나십니까? 최현동지가 직접 리오송부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호위까지 조직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최현은 앉은자리가 불편한듯 이리저리 몸을 궁싯거리였다.
《제가 그때 백두산에 올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우리 수령님께서 안도에서 무장투쟁의 첫 자욱을 떼실 때
그 대오에 서있던 투사들이 지금 다 살아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간고한 혁명투쟁의 길에서 정말 너무나 많은 렬사들이
수령님곁을 떠나갔습니다. 차광수, 리광, 박훈, 김일룡, 조덕화, 김종환, 안태범… 지금
우리곁에 남아있는 투사동지들은 거의다 33년도이후에 수령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나마도 지금까지 군복을
입고있는분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고 리오송동지처럼 제일 나이가 어렸던 소년중대출신들도 중년기에 들어서고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새로운 또
하나의 세대가 우리 혁명군대의 중진으로 등장하게 되였습니다. 그렇다면 인민군대의 새세대 지휘관들에게 백두산의 바통을 물려주어야 할 사람은 과연
누구들이겠습니까? 수령님을
모시고 오래동안 싸워온분들이 나이가 많다고 물러서고 힘이 모자란다고 주저앉는다면 시대가 준 이 력사적과업은 과연 누가 수행하겠습니까?》
최현은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이의 말씀을 자자구구 새겨들었다. 자기자신도 기억에 희미해지기
시작한 항일전의 1세들을 한명한명 외우시는 그이의 심중에 얼마나 안타까운 소망과 절절한 기대가 깃들어있는가를 생각할 때
먼저 떠나간 전우들의 생이 절통하기도 하였거니와 수령님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여 대오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안된
최광이와 같은 락오자들이 또다시 새로운 의분을 자아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