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1 장

푸른 호수

7

(2)

 

웃옷을 벗어제낀 생산부기사장 서정관이 청높은 목소리로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는 모습도 보였다.

송영숙은 당비서의 뒤를 따라 마당에 들어섰다.

이때 키가 후리후리하고 얼굴이 길쑴한 사람이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송영숙의 남편 백상익이였다. 그는 김춘근당비서의 앞에 떡 멈추어서며 큰소리로 말했다.

《정치위원동지! 안녕하십니까?》

그를 본 김춘근의 얼굴은 대번에 확 밝아졌다.

《아, 중앙공격수!》

김춘근은 백상익의 큰 손을 덥석 잡아쥐였다.

《이거 오래간만이구만. 헌데… 여긴 어떻게 왔소?》

기쁨과 반가움의 한순간이 지나자 당비서의 얼굴에 의혹이 담겨졌다.

《저…》

길쑴한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을 담고있던 백상익이 약간 쭈빗거렸다.

그들을 지켜보던 송영숙이 한마디 하였다.

《당비서동지! 저의 남편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김춘근은 잘 믿어지지 않는지 두사람을 몇번이고 번갈아보았다. 이윽고 그는 하하 큰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됐소? 응? 하하하… 좋구만. 좋아!》

그는 두사람이 못내 대견하고 장한듯 백상익의 등을 툭툭 치며 그냥 큰소리로 웃었다. 마치 친혈육이라도 만난듯한 심정이였다.

《난 여기 당비서요. 이렇게 한마을에서 살게 되여 기쁘구만.》

그들은 마당 한켠 수도가앞에 마주앉았다.

《그래 제대된 다음 대학에 갔더랬겠지?》

김춘근이 물었다.

《예, 경제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백상익은 옛 정치위원에게 씩씩하게 대답하였다.

《경제대학? 참, 군인민위원회 계획부원으로 사업한다구 했지? 군살림살이를 돌보는 중요한 일이구만. 거기에다 이렇게 좋은 안해도 만났구… 좋아! 아주 좋아!》

김춘근은 다시금 백상익의 등을 툭툭 쳤다.

그는 곁에 서있는 송영숙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기사장동문 참 덕있는 녀성이구만. 이런 일등미남자에 사내답구 똑똑한 사람을 남편으로 섬기니 말이요, 응?》

당비서의 말에 송영숙은 쑥스러운듯 얼굴을 약간 붉히였다.

김춘근은 습관인듯 구레나룻을 쓸며 백상익과 그동안의 회포를 나누었다.

김춘근당비서는 몇년전까지 백상익이 군사복무를 하던 부대의 정치위원이였다.

엄격하고 요구성이 높은 지휘관이였던 그는 병사들과 허물없이 잘 어울리면서 그들의 훈련과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보살펴주었다.

사관장이였던 백상익에 대한 김춘근의 사랑은 남다른것이였다. 그것은 중대살림꾸리기에서 전 부대의 본보기라는 그 한가지때문만이 아니였다.

사내답게 잘생기고 성격 또한 호방하고 활달한 그는 명절때마다 진행되는 축구경기에서 부대의 명예를 떨치는 중앙공격수였던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에서 만나다니…

새로 온 기사장의 남편이라니 김춘근의 기쁨은 곱절로 커졌다.

그들은 서로가 부대의 소식들과 제대된 이후의 소식들을 주고받으며 한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비서의 모습을 지켜보는 송영숙의 마음도 즐거웠다.

남편이 생소한 곳에 이사해와서 당분간이라도 고적해할것같은 생각에 은근히 마음이 씌여졌던 그였다. 그런데 친정아버지와도 같은 당비서와 친혈육처럼 정을 나누며 기뻐하는것을 보니 여간 즐겁지 않았다.

그는 안해의 눈길로 남편을 살펴보았다. 두달동안 떨어졌다가 만난 남편이여서 건강상태며 옷차림과 신발에 이르기까지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러나 인츰 마음을 놓았다. 남편은 여전히 건강했고 옷차림과 몸가짐도 흠잡을데가 없었다. 목소리도 우렁우렁하고 눈빛도 정기있고 따뜻하였다.

송영숙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정찬 그 눈길이 미치는 곳에 자기가 있다는 생각으로 더더욱 즐겁고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끼였다.

이사짐을 거의 들여갈무렵에야 김춘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좀 들어가볼가?》

김춘근은 토방우에 올라서서 이사짐들을 정돈하고있는 방안을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이때 부엌에서 오락가락하던 송영숙의 친정어머니 문춘실이 외손녀의 손목을 잡고 그앞에 다가왔다.

서정관에게서 공장당비서라는것을 귀띔해들은 문춘실은 황송하여 머리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그리고는 얼른 외손녀에게 타일렀다.

《경아야, 어서 인사올려라. 당비서동지시다. 자!》

할머니의 말에 네살잡이 어린것은 머루알같은 눈으로 사람들을 올려다보더니 나푼 인사를 하였다.

《딸애가 참 곱게 생겼구만.》

김춘근은 귀염성스러운 얼굴에 눈매고운 아이를 보고 용타고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낯모를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은 아이는 부끄러운지 할머니의 치마자락에 얼굴을 묻었다.

《경아야!》

사람들의 뒤켠에 서있던 송영숙이 조용히 딸애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어린것은 엄마의 목소리를 가려듣고 빠끔히 얼굴을 내밀었다.

《엄마!》

아이가 춤추듯 달려왔다

송영숙은 나비처럼 팔랑 춤추며 날아온 딸애를 품에 꼭 껴안았다.

아이의 따스하고 고르로운 숨결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순간 온몸은 전류가 흐르는듯 찌르르했다. 그는 행복에 겨워 딸애를 쓰다듬기만 하였다. 따스한 체온과 젖비린내가 온몸으로 느껴져 그는 무아경에 잠긴듯 눈을 꼭 감았다.

한덩어리가 된 모녀를 지켜보던 문춘실이 무슨 뜻인지 끌끌 혀를 찼다. 송영숙은 그제야 딸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이 마음에 듭니까? 어머니!》

김춘근은 사람좋은 웃음을 담고 문춘실에게 물었다.

몸매 작고 체소한 문춘실은 앞가슴에 수를 놓은 연회색쟈케트의 앞자락을 매만지며 허리를 굽석하였다.

《예, 이만하문야 뭐…》

더이상 바랄것이 없다는 뒤말을 대신하며 문춘실은 빙그레 웃었다.

김춘근은 그에게 약간 허리를 굽히며 조금 큰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우리 집은 저 길건너입니다. 자주 다니십시오. 년세가 많으신데 어디 편치 않거나 손녀가 앓으면 새벽이나 밤중에라도 찾아오십시오. 우리 집사람은 공장진료소 의삽니다. 그러니 허물없이 다니십시오.》

당비서의 친절한 말에 문춘실은 더욱더 황송하여 몇번이고 고맙다고 하였다.

잠시후 서정관이 이사짐을 다 들여놓았다고 말했다.

김춘근은 머리를 끄덕이며 문가에 서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서정관은 송영숙에게 다가서며 미흡한 점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속삭이듯 물었다. 송곳이가 반짝거리며 그의 존재를 강조하였다.

송영숙은 빙그레 웃으며 이만하면 됐다고 말했다.

서정관은 다시 문춘실의 곁에 다가가 무어라고 손세를 써가며 말하였다. 얼핏 들으니 부엌과 창고에 부식물감을 가져다놓았다는것이다.

문춘실은 혀를 차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였다.

《자! 우린 이만 돌아가기요. 집주인들도 이젠 좀 휴식을 해야 할테니까. 어서 가기요.》

김춘근이 먼저 토방아래 내려서며 말했다.

송영숙과 문춘실이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말했으나 그들은 굳이 사양하며 대문을 나섰다.

김춘근은 백상익의 손을 잡으며 다시 만나자고 말한 다음 문춘실에게도 허리굽혀 인사를 하였다. 그는 곧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집식구들은 마당가에 서서 떠나가는 승용차와 사람들을 바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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