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7

(1)

 

최진성은 평양을 떠난지 이틀만에 석박골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였다.

휴가맛을 별로 보지 못하고 돌아온 자기로서는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고도 하겠지만 그래도 중대장이 평양에 갔다왔는데 의례 그럴법한 떠들썩도 없었고 평양소식을 묻는 병사들도 없었다. 협주단처녀를 만나면 꼭 사진을 찍어오라고 다짐을 두었던 영범이도 대수 인사치레를 하고는 화구간쪽으로 어슬어슬 달아났다. 중대부에 들어서니 난로에 불을 지피고있던 부중대장 석철룡만이 뿌드드한 얼굴로 그를 맞이해서는 《빨리 왔구만.》하고 어깨에 멘 배낭을 맥없이 받아내리였다.

원래 최진성이 여기 석박골로 올 때는 그가 바로 중대장이였다.

《물싸움》이 있은 후에 처벌을 받으면서 최진성이와 하루아침에 직무가 바뀌였는데 석철룡자신은 그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직무야 어떻게 바뀌였든 이 중대는 여전히 《나의 중대》라고 생각하는 철룡이였다.

실지로 병사들은 그가 부중대장이 된 후에도 최진성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중대장동지》로 불렀고 진성이도 사업상문제에 들어가서는 중대와 인연이 깊은 그에게 많이 의지하였다. 이런 연고로 처벌이 있은 후에도 둘사이에는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자기를 보는 눈빛이 왜 이리 찌푸둥한지 모를 일이다.

부대가 해산될것같다는 소문을 이미 듣고 떠났던터이라 그럼즉한 예감이 없는것도 아니였지만 온 중대가 자기의 눈만 피하는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해산이 되면 다같이 되는것이지 꼭 자기에게만 불리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무슨 일입니까? 끝내 중대를 해산한답니까?》

석철룡은 난로아궁에 장작을 쑤셔넣느라 이리저리 불을 뒤채기다가 어깨가 들썩하도록 코방귀를 뀌였다.

《헹, 그저 해산이면 좋기나 하게. 케를 봐선 모두 영창에 들어가야 할것같소.》

최진성은 석철룡의 삐뚤어진 말이 롱담인지 진담인지 가늠해보려 했으나 종시 아무것도 나꾸어내지 못하였다. 석철룡은 불탄 가치들을 이리저리 헤집어놓은 틈사리에 참나무장작 두어개를 털썩털썩 던져넣고나서 손바닥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지금 부대적으로 인민군당전원회의 확대회의문헌접수토의사업을 하고있소. 우리 중대에는 민족보위성 일군이 내려왔는데 아침저녁으로 군인들을 불러다놓고 개별담화를 하고있소. 어떻게나 파고드는지 지난봄에 있은 물싸움까지 다시 꺼들리웠소.》

또 물싸움이야기이다. 하기야 상처라는것이 그렇게 쉽게 아무는 법이야 있겠는가. 다시 생각하기도 지긋지긋한 일이였지만 진성의 눈앞으로는 지난해에 있었던 그 사건이 어쩔수없이 떠올랐다.

사건의 발단은 중대에 있는 부업밭때문에 생겨난것이였다.

중대부업지라는것이 대체로 농장에서 관리하는 경작지 변두리에 있는 비탈밭들이여서 작황은 그닥 시원치 못하였다. 이태전 가을에 여기에 내려왔던 김창봉은 부업밭들을 얼추 돌아보고나서 이렇게 감자알이나 쑤시라고 부업을 조직한것이 아니라며 비탈밭을 몽땅 논으로 개조하라고 불호령을 떨구었다. 산비탈에 논을 풀자면 적어도 양수기가 몇대는 있어야 할것 같다고 누군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김창봉은 앙천대소를 하더니 손에 들고다니던 단풍나무지팽이로 앞에 보이는 산허리를 쭉 갈라보였다.

《저기다 뚝을 쭉 올리쌓아서 수로를 막으란 말이요. 그럼 물면이 산비탈까지 올라갈게 아닌가.》

몇몇 일군들이 그 개울물이 흘러드는 아래쪽 논밭들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았으나 서슬이 딩딩한 보위상앞에서 감히 말을 꺼내지는 못하였다. 중대군인들은 보위상이 떨구고간 황당한 명령을 집행하느라 겨우내 언땅을 까서 뚝을 쌓았다. 사달은 봄에 가서 터지고야말았다.

써레질을 앞두고 이제나저제나 논에 물이 흘러들기만 기다리던 농장원들은 수로에 물이 내려오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도대체 어디에서 사달이 났는가 하여 물줄기를 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산골짜기에 언제처럼 솟은 보막이를 보고는 입을 딱 벌리였다.

관리위원장과 리당비서가 달려오고 뒤따라 뜨락또르에 삽과 곡괭이를 실은 농장청년들이 들이닥쳤다.

처음에는 관리위원장과 중대장사이에 옳으니, 그르니 말마디나 오고 가댔는데 그사이 성미급한 젊은 축들이 보막이뚝에 들어붙어 곡괭이날을 박기 시작하였다.

직일근무를 서고있던 소대장이 상급참모부에 정황을 보고했다. 그것이 줄줄이 올라가서 민족보위상에게까지 보고되였는데 한참만에 중대로 내려온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뚝을 지키라!》는 칼날같은 명령이였다. 석박골초소에 《폭풍!》구령이 울렸다. 군인들이 뚝을 향해 대렬을 지어 달려왔다. 그러나 정작 농장원들이 모여선 곳에 이르러서는 어쩔바를 모르고 머밋거렸다. 뚝에 모여선 농장원들은 이끝저끝으로 낯이 익은 주변마을사람들인데다 그 맨 앞장에는 《병사참모부》에서 중대장의 처남으로 통하는 적위대장까지 서있었던것이다. 그의 녀동생이 석철룡과 어떤 사이인가 하는것은 새로 배치받은 진성이도 다 아는 일이였다. 그런데 중대군인들의 이런 거북한 눈치가 석철룡의 자존심을 건드려놓았다.

석철룡은 벼락같이 달려나가서 처남이 될 사람의 손에 들린 곡괭이부터 앗으며 툭 밀쳐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농장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중대장을 에워쌌고 그것을 본 병사들이 또 농장원들속에 끼워들었다.

겨울철에 언땅을 까서 어성버성하게 쌓은데다 이미 곡괭이날에 여러군데가 헐리운 보뚝은 백여명이나 되는 사람사태를 지탱해내지 못하고 털썩 무너져내렸다. 그통에 농장원들과 군인들 여러명이 타박상을 입었다.

이 물싸움이 있은 후 중대장 석철룡은 대위로부터 중위로, 부중대장으로 강급강직되였다. 강직리유는 사민들로부터 《군사시설물》을 지켜내지 못한 《엄중한 과오》때문이였다.

《헹, 난 뭐가뭔지 통 모르겠소.》

석철룡은 어이가 없다는듯 찌푸둥한 눈으로 최진성을 쳐다보았다.

《듣자하니 이번 문헌접수토의사업은 군벌관료주의여독을 청산하는것이라는데 우리야 그 직접적인 희생자들이 아닌가. 군인들만 해두 일곱이 상했구 난 별까지 한줌 떼웠구. 게다가…》

석철룡은 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고 애매한 장작개비만 아궁속에 쑤셔박으며 데그럭데그럭 불을 들추기 시작했다.

《게다가》라는 말뒤에 가무려버린 석철룡의 속대사인즉 그 적위대장의 녀동생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남의 일에 좀 무관심한 최진성이도 호기심이 부쩍 나서 농장마을 학교에서 교원을 하는 그 처녀의 얼굴을 몇번 훔쳐보았는데 돌투성이 석박골모양으로 우둘투둘한 석철룡의 관상에 비해보면 정말 보름달같은 미인이였다. 별로 외출도 하는것같지 않은 석철룡이 처녀선생과 어떻게 정을 굳혔는지는 알수 없는 노릇이지만 둘사이는 병사들의 표현대로 꿀바른 찰떡같았다. 그러나 물싸움이 있은 후에는 그 《찰떡》이 사흘 마른 꼬장떡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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