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10
(1)
정원의 새벽공기는 씻은듯이 맑았다.
눈이 녹아 흠뻑 젖어든 잔디밭에서는 뜬김처럼 하얀 안개가 무럭무럭 피여오르고 거무틱틱한 뽀뿌라나무가지우에서는 마른 삭정이를 물고 날아든 알락까치들이 겨우내 엉성해진 더벅둥지를 다듬느라고 분주히 깍깍거린다. 립춘이 지나고 우수가 가까왔다고 하지만 늦은겨울치고는 희한할만큼 푸근한 날씨였다.
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전원회의 확대회의가 끝난지도 한달이 지났다. 그사이 만수대예술단을 새로 조직하기 위한 준비사업과 2.
8영화촬영소에서 만든 《녀성고사총수들》을 완성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시는 한편 당 제5차대회를 계기로 각지에서 벌어지고있는 증산돌격투쟁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대사상전을 조직지휘하여오신
《총참모장이 군인들 옷차림문제를 걱정하는거야 좋은 일이지. 그게 어떻게 후방일군들의 몫이라고만 하겠소? 인민군대의 정규화적면모를 세우는데서 군복문제도 중요하오.》
뒤따라 약간 석쉼하면서도 억양이 높은 오진우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하하… 1부수상이 깍쟁이를 부린다? 깍쟁이를 부려야지. 나라의 큰 살림을 맡은 사람이 물감장사가 돼야지 인심좋은 주막집아낙네 외상막걸리 퍼주듯 하면 되겠소? 그러니 동무는 날더러 지원포를 좀 쏴달라는건데…》
얼마 안있어 까만 닫긴깃양복우에 굵은 모실로 뜬 연보라빛덧저고리 하나를 덧입으신
《왔구만. 눈을 보니 또 밤을 샌 모양인데 새벽에 쪽잠이라도 좀 들려던걸 깨우진 않았소?》
《일없습니다. 저야 젊었는데 밤을 좀 새우면 뭐랍니까? 저는 막 지쳤다가도 이렇게 건강하신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소.》
《오진우동지가 아침부터 무슨 재미나는 이야기를 했길래
오진우는 앞서 걸으시는
《재미나는 이야기가 다 뭡니까? 내 금방
가뜩이나 쇡쇡한 목소리를 바람새는 소리만큼 낮추느라 했는데도
《그래도 오동무가 눈치는 있구만. 비판은 하지도 않았는데 제먼저 발이 저려 하는걸 보니. 허허허…》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욕을 먹을줄 알면서도 그저
오진우가 짐짓 응석기어린 목소리로 말씀올렸다.
《투정질이라…》
《오동무, 군대는 응석을 부리는 막내아들이 아니라 어머니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맏아들이 되여야 하오. 그런데 가만 보면 오동무두 그래, 다른 동무들두 그래, 군대에만 계속 있던 일부 동무들은 나라사정을 잘 모르는것같애. 우리가 지난해에 전국의 모든 아이들에게 교복에다 모자, 외투까지 다 해입혔는데 오동문 우리 나라에 아이들이 다해서 몇명인지 알고있소? 가만, 우리가 지난해 아이들 옷을 몇벌 해입혔던가?》
《그렇지. 거의 700만벌을 해입혔소. 그런데다 윁남의 호지명
《허허… 아무래두 오늘은 오동무체면을 좀 봐줘야겠군.》
《지금 우리 방직능력이 40만추인데 앞으로 60만추 더 늘여서 100만추를 만들자고 하오. 지금 그런 운동을 하고있긴 한데 이번 당대회에서 7개년계획에다 쪼아박고 내밀자는거요. 비날론공장확장공사는 지난해에 가물때문에 전기와 카바이드가 모자라서 진척을 못했는데 앞으로 북창화력이 좀더 용을 쓰고 서두수발전소까지 돌아가면 화학공장과 비날론공장을 대폭 확장해서 화학섬유도 많이 뽑아내게 될거요, 그렇게 되면 아마 래년에 가서는 오동무가 제기한 문제를 풀어줄수 있을것같소.》
오진우는 나라의 형편을 손금보듯 꿰뚫으시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좀 못먹고 못입으면서도 군대를 위해서는 아낀것이 없소. 그런데 김창봉이는 어쨌나? 나라에서 진지공사하라고 한해에 세멘트는 40만t씩 주고 목재만 해두 수만립방씩 떼주었는데 그걸 가져다가 객실이요 뭐요 하면서 집짓는 놀음만 벌렸지. 지금 우리 나라에 정부초대소도 얼마 되지 못하는데 어떤데는 작은 골짜기 하나에 군대객실을 두개씩 지은데도 있단 말이요. 숱한 외화를 주고 사온 귀한 타일은 돼지우리에다 붙여놓구, 자동차는 새것을 주면 일년도 못굴려서 마사먹구 또 새것을 달라고 하구… 그러구는 아래사람들에게 뭐라고 했소? 〈군대는 모든게 우선적으로 보장되니 마음놓구 써라.〉했단 말이요. 이게 무슨 본때요? 총을 쥐구 인민을 지킨다고만 하면 다요? 인민들 생활형편은 알려고도 안하구 저만 저라구 특세를 부리면 그런 군대를 어느 인민이 너 곱다 하구 먹여살리겠소?》
오진우는 끝내
《
《인민군대가 인민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을 해야 군민관계두 개선되고 또 자기의 힘두 그만큼 막강해지오. 언젠가 농장에 내려갈 물을 뚝으로 막아놓구 싸움까지 벌렸다던 그 중대처럼 되면 그건 벌써 인민군대가 아니요. 우리야 산에서 싸울 때 굶어 쓰러지면서두 인민들 재산에 손을 안댔구 얼어터지면서두 인민들 집에 마구 들어가 잔적이 없지 않소?》
《예, 말씀의 뜻을 명심하겠습니다.》
오진우의 진중한 대답에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던
《참, 그 물싸움했다던 중대는 지금 어떻게 하고있소? 듣자니 거기엔 민족보위성일군이 내려가서 인민군당전원회의 확대회의 문헌접수토의사업을 지도한다던데?》
로일수부국장으로부터 석박골에 내려갔던 민족보위성일군이 그 중대군인들에게 심한 모욕을 받고 올라왔으며 물싸움을 한것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담화과정에 불손한 행동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것은 얼마전의 일이였다. 로일수의 말에 의하면 안영환총정치국장은 그 보고를 받고 군벌관료주의로 처벌을 받은 최광의 아들이 그 중대의 물을 흐리고있다고 하면서 당장 그 부대를 해산하지 않았다가는 큰일나겠다는 의견까지 내비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