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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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원의 새벽공기는 씻은듯이 맑았다.

눈이 녹아 흠뻑 젖어든 잔디밭에서는 뜬김처럼 하얀 안개가 무럭무럭 피여오르고 거무틱틱한 뽀뿌라나무가지우에서는 마른 삭정이를 물고 날아든 알락까치들이 겨우내 엉성해진 더벅둥지를 다듬느라고 분주히 깍깍거린다. 립춘이 지나고 우수가 가까왔다고 하지만 늦은겨울치고는 희한할만큼 푸근한 날씨였다.

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전원회의 확대회의가 끝난지도 한달이 지났다. 그사이 만수대예술단을 새로 조직하기 위한 준비사업과 2. 8영화촬영소에서 만든 《녀성고사총수들》을 완성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시는 한편 당 제5차대회를 계기로 각지에서 벌어지고있는 증산돌격투쟁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대사상전을 조직지휘하여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오늘 새벽 어버이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찌기 저택으로 오시였다. 손을 저으면 휘휘 묻어날것같은 짙은 안개속으로 급히 걸음을 옮기던 그이께서는 앞쪽에서 울리는 귀에 익은 발자국소리를 듣고 멈춰서시였다. 수령님께서 새벽산책을 나오시는것이였다. 얼른 옷매무시를 바로하시며 안개속을 응시하는데 우렁우렁한 음성이 가까이 들려왔다.

《총참모장이 군인들 옷차림문제를 걱정하는거야 좋은 일이지. 그게 어떻게 후방일군들의 몫이라고만 하겠소? 인민군대의 정규화적면모를 세우는데서 군복문제도 중요하오.》

뒤따라 약간 석쉼하면서도 억양이 높은 오진우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수령님께 무슨 말씀을 올리는지 알아들을수는 없으시였다. 이윽고 수령님의 호방하신 웃음소리가 정원의 새벽공기를 기운차게 흔들었다.

《하하… 1부수상이 깍쟁이를 부린다? 깍쟁이를 부려야지. 나라의 큰 살림을 맡은 사람이 물감장사가 돼야지 인심좋은 주막집아낙네 외상막걸리 퍼주듯 하면 되겠소? 그러니 동무는 날더러 지원포를 좀 쏴달라는건데…》

얼마 안있어 까만 닫긴깃양복우에 굵은 모실로 뜬 연보라빛덧저고리 하나를 덧입으신 수령님께서 뒤짐을 지고 걸어오시는 모습이 보이고 그뒤로 약간 울상이 된 오진우의 칼칼한 얼굴이 젖물같은 안개속을 뚫고 나타났다.

수령님께서는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는 김정일동지를 알아보시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약간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시였다.

《왔구만. 눈을 보니 또 밤을 샌 모양인데 새벽에 쪽잠이라도 좀 들려던걸 깨우진 않았소?》

《일없습니다. 저야 젊었는데 밤을 좀 새우면 뭐랍니까? 저는 막 지쳤다가도 이렇게 건강하신 수령님의 모습만 한번 뵙고나면 한 백날쯤 밤을 샐 힘이 또 생깁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소.》

수령님께서는 뒤따라온 오진우가 김정일동지께 반갑게 인사올리는것을 바라보시다가 다시 뒤짐을 지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과 약간 거리를 두고 뒤따르시며 곁에 선 오진우에게 나직이 물으시였다.

《오진우동지가 아침부터 무슨 재미나는 이야기를 했길래 수령님께서 그렇게 웃으셨습니까?》

오진우는 앞서 걸으시는 수령님의 뒤모습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입가에 손을 오그려붙이고 소리를 낮추었다.

《재미나는 이야기가 다 뭡니까? 내 금방 수령님께 된욕을 먹을번했습니다. 장군이 제때에 오셨으니망정이지…》

가뜩이나 쇡쇡한 목소리를 바람새는 소리만큼 낮추느라 했는데도 수령님께서는 어느결에 등뒤에서 오가는 대화를 다 들으셨는지 어글어글한 미소를 짓고 오진우쪽을 돌아보시였다.

《그래도 오동무가 눈치는 있구만. 비판은 하지도 않았는데 제먼저 발이 저려 하는걸 보니. 허허허…》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욕을 먹을줄 알면서도 그저 수령님을 믿고 한번 투정질을 해본겁니다.》

오진우가 짐짓 응석기어린 목소리로 말씀올렸다.

《투정질이라…》

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오동무, 군대는 응석을 부리는 막내아들이 아니라 어머니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맏아들이 되여야 하오. 그런데 가만 보면 오동무두 그래, 다른 동무들두 그래, 군대에만 계속 있던 일부 동무들은 나라사정을 잘 모르는것같애. 우리가 지난해에 전국의 모든 아이들에게 교복에다 모자, 외투까지 다 해입혔는데 오동문 우리 나라에 아이들이 다해서 몇명인지 알고있소? 가만, 우리가 지난해 아이들 옷을 몇벌 해입혔던가?》

수령님께서 말소리를 길게 끄시며 물으시듯 뒤를 돌아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한걸음 가까이로 다가서며 방금 물으신 수자를 말씀올리시자 수령님께서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렇지. 거의 700만벌을 해입혔소. 그런데다 윁남의 호지명주석이 부탁을 해서 수백만벌의 군복을 만들어 보내주었지. 거기에 든 천만해두 적질 않소. 그런데 이 오동무는 날보구 뭐라는지 아오?》

수령님께서 다 털어놓으라는가고 물으시듯 오진우쪽을 슬쩍 돌아보시자 그는 어쩔바를 몰라하며 난색을 지었다.

《허허… 아무래두 오늘은 오동무체면을 좀 봐줘야겠군.》

수령님께서는 오진우의 굳어진 얼굴에서 시선을 떼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지금 우리 방직능력이 40만추인데 앞으로 60만추 더 늘여서 100만추를 만들자고 하오. 지금 그런 운동을 하고있긴 한데 이번 당대회에서 7개년계획에다 쪼아박고 내밀자는거요. 비날론공장확장공사는 지난해에 가물때문에 전기와 카바이드가 모자라서 진척을 못했는데 앞으로 북창화력이 좀더 용을 쓰고 서두수발전소까지 돌아가면 화학공장과 비날론공장을 대폭 확장해서 화학섬유도 많이 뽑아내게 될거요, 그렇게 되면 아마 래년에 가서는 오동무가 제기한 문제를 풀어줄수 있을것같소.》

오진우는 나라의 형편을 손금보듯 꿰뚫으시는 수령님의 그 넓으신 안목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렇게 무거운 짐을 안고계시는 수령님께 외람된 청을 드렸던 자기의 좁은 소견이 부끄러워서 차마 머리를 들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좀 못먹고 못입으면서도 군대를 위해서는 아낀것이 없소. 그런데 김창봉이는 어쨌나? 나라에서 진지공사하라고 한해에 세멘트는 40만t씩 주고 목재만 해두 수만립방씩 떼주었는데 그걸 가져다가 객실이요 뭐요 하면서 집짓는 놀음만 벌렸지. 지금 우리 나라에 정부초대소도 얼마 되지 못하는데 어떤데는 작은 골짜기 하나에 군대객실을 두개씩 지은데도 있단 말이요. 숱한 외화를 주고 사온 귀한 타일은 돼지우리에다 붙여놓구, 자동차는 새것을 주면 일년도 못굴려서 마사먹구 또 새것을 달라고 하구… 그러구는 아래사람들에게 뭐라고 했소? 군대는 모든게 우선적으로 보장되니 마음놓구 써라.했단 말이요. 이게 무슨 본때요? 총을 쥐구 인민을 지킨다고만 하면 다요? 인민들 생활형편은 알려고도 안하구 저만 저라구 특세를 부리면 그런 군대를 어느 인민이 너 곱다 하구 먹여살리겠소?》

오진우는 끝내 자신을 지탱해내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수령님, 제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만 부실한 소리를 했습니다. 왕청서부터 수령님을 따라다녔다는게 어깨에 왕별을 한줌씩 달구두 아직… 용서해주십시오.》

수령님께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오진우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인민군대가 인민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을 해야 군민관계두 개선되고 또 자기의 힘두 그만큼 막강해지오. 언젠가 농장에 내려갈 물을 뚝으로 막아놓구 싸움까지 벌렸다던 그 중대처럼 되면 그건 벌써 인민군대가 아니요. 우리야 산에서 싸울 때 굶어 쓰러지면서두 인민들 재산에 손을 안댔구 얼어터지면서두 인민들 집에 마구 들어가 잔적이 없지 않소?》

《예, 말씀의 뜻을 명심하겠습니다.》

오진우의 진중한 대답에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던 수령님께서 문득 무엇이 생각나신듯 김정일동지께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참, 그 물싸움했다던 중대는 지금 어떻게 하고있소? 듣자니 거기엔 민족보위성일군이 내려가서 인민군당전원회의 확대회의 문헌접수토의사업을 지도한다던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인차 대답을 올리지 못하시였다.

로일수부국장으로부터 석박골에 내려갔던 민족보위성일군이 그 중대군인들에게 심한 모욕을 받고 올라왔으며 물싸움을 한것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담화과정에 불손한 행동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것은 얼마전의 일이였다. 로일수의 말에 의하면 안영환총정치국장은 그 보고를 받고 군벌관료주의로 처벌을 받은 최광의 아들이 그 중대의 물을 흐리고있다고 하면서 당장 그 부대를 해산하지 않았다가는 큰일나겠다는 의견까지 내비쳤다고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대를 해산하기는 쉽다, 그러나 군인들의 운명과 관련된 문제인것만큼 심사숙고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과오를 범한 중대라고 하여 선입견적으로만 대하지 말고 총정치국에서 다시 내려가 제기된 자료를 정확히 확인해보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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