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2 장

파도소리

1

(2)

 

리철봉은 아직까지 어느 한쪽에도 자기 생각을 얹어놓지 않았다.

사령관이나 정치위원의 눈치를 보자고 해서가 아니라 어느쪽에도 시원한 공감이 가지 않았고 뒤집어보면 어느쪽이나 타당한 주장이기때문이였다. 다른 사람들은 나름대로 주장을 해도 무방하겠지만 사령관과 정치위원의 무게로 평형을 유지하고있는듯한 이 천평저울의 어느 한쪽접시에 자신의 견해가 놓이는 경우 그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많다.

그때문인지 지금까지는 사령관도 정치위원도 이상하리만큼 침묵을 지키고있는 리철봉에게 주장을 독촉하지 않았다. 그의 주장이 자기들의 생각과 반대켠으로 기울어지는 경우를 저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다르다. 어떻게든 결판을 내고 무엇이든 시작을 떼야 할 긴박한 정황이 박두했다. 리철봉은 온몸에 바늘이 돋았다.

몇달동안 궁리하고 모지름써온 천만가지의 생각들이 피줄을 따라 흐르고 부딪치면서 가속된 함선기관처럼 후끈 달아오르는것같았다.

그런데 그동안 자기가 무슨 연구를 했던지 딱히 가지가 잡히는것은 없고 다만 평양역두에서 자기를 바래주며 하시던 김정일동지의 말씀만이 쟁쟁히 떠오른다.

《철봉동무, 오면서도 이야기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적아간의 력량대비를 타파하자면 그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전법을 창조해야 하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것이 아니라 우리 수령님의 주체적군사사상과 자기것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하는것이요. 우리 힘으로 적들과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하며 이길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 뚫고나가지 못할 요새란 없을거요. 수령님께서는 해군의 전쟁준비를 완성하는데서 동무를 크게 믿고계시오.》

믿음…

지금 이 시각 리철봉의 심장을 두드리는것은 사령관이나 정치위원의 간절한 기대가 아니라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인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우리 식의 전법

자기것에 대한 믿음…

그런데 어찌하여 이 시각까지도 나의 머리속에는 아무런 묘책도 떠오르지 않고 자신에 대한 믿음조차 생기지 않는것인가!

리철봉이 침묵하는것을 본 우병국사령관이 《그럼 내가 좀 말합시다.》하고 말을 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껏 사업수첩우에 무형의 그림을 덧그리며 안절부절하던 군관들이 책뚜껑을 덮으며 사령관을 쳐다보았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던 의논도 멎었다. 리철봉이 자리에 앉자 우병국은 《사자고추》를 힘껏 쥐였다놓고나서 입을 열었다.

《터놓고 말하여 현재의 함선갑판에 대구경포를 올려놓는것은 기술적으로 무리할뿐더러 상식에도 어긋나는것입니다.》

사령관이 이렇게 서두를 떼자 의자등받이에 등을 푹 박고 앉아있던 정치위원이 반쯤 몸을 일으켜세웠다. 우병국사령관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지만 모스크바의 크레믈리광장에는 질량이 40t, 구경이 890mm나 되는 짜리포가 있습니다. 허황한 공상의 산물이라고도 할수 있는 이 대구경포는 자체가 내포하고있는 기술적모순때문에 제작자들의 의사와는 달리 단 한번도 포알을 날려보지 못하고 짜리로씨야의 강대성을 보여주는 상징물로서 그 존재가치가 규정되고말았습니다. 군사적견지에서 랭철하게 투시해본다면 이 거물은 욕망과 현실간에 얼마나 큰 차이가 존재하는가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력사적모델이라고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잠간만…》

임철정치위원의 우걸우걸한 목소리가 사령관의 설명을 멈춰세웠다.

《그러니 사령관동무는 역시 미싸일을 들여오는수밖에 없다는것입니까?》

우병국은 두주먹으로 책상을 꾹 눌러짚으며 정치위원쪽에 대고 안타깝게 이야기하였다.

《다른 방도야 없지 않습니까?》

임철정치위원은 사령관의 지꿎은 눈길을 피하면서 리철봉에게 물었다.

《참모장동무도 같은 생각입니까?》

리철봉은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섰다.

《물론 저는 우리 자체의 능력으로 포의 위력을 높이자는데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일정한 정도에서는 포의 중량을 얼마 늘이지 않고 탄두의 위력을 높일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례로 포의 구경에 비례하여 자체중량이 늘어나는것은 우선 발사시 포신에 작용하는 내압을 억제하기 위해 강체의 두께를 늘이는것과 관련되는데 이런것은 특수한 강재를 리용하여 해결할수도 있을것입니다.》

량좌우에 앉은 군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착상이고 가설입니다. 특수강문제도 과학적인 담보가 없지만 그런것을 만들자면 시간이 걸릴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두가지 방안을 다 내밀수 없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한쪽으로는 미싸일수입안을 추진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포무기제작을 병행시키는것이…》

긴장한 시선으로 리철봉을 주시하고있던 우병국사령관이 흡족한 기색을 짓고 정치위원을 건너다보았다.

《나는 참모장동무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아무래도 단신고사포보다야 쌍신고사포의 명중확률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쌍선을 칩시다.》

임철정치위원은 지꿎게 침묵을 지켰다. 무언의 부정이였다. 우병국은 땀발이 지르르 돋아나는것을 느끼며 안타까운 어조로 물었다.

《그러면 도대체 어쩌자는것입니까?》

임철정치위원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지금껏 앞탁에 펼쳐놓고 앉아있던 빨간 가위의 수첩을 정히 들어올리였다.

《나는 동무들이 지금껏 해군의 전쟁준비를 시급히 완성할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에 대하여 고심어린 연구도 많이 하고 또 충분한 토론도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몇달동안이나 끌어온 이 협의회는 한마디로 그 시작이 틀렸습니다.》

인열로 후끈 달아오른듯싶던 사무실안은 삽시에 얼어들었다.

우병국의 의아한 눈길이 정치위원의 심각한 얼굴을 불안스럽게 스쳤다.

《함선을 소형화하고…》

힘주어 서두를 뗀 임철정치위원은 두손에 반듯이 펴든 수첩에 눈길을 떨구고 한마디한마디를 빚어내듯이 읽어나갔다.

《우리식의 무장장비를 개발하며 주체적인 전법을 창조하라! 이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해군에 주신 교시입니다. 백가지 토론을 하든 천가지 궁리를 하든 우리는 오직 여기서만 사색의 출발점을 찾아야 합니다.》

장내에는 엄숙한 고요가 깃들었다.

《물론 참모장동무는 함선의 소형화를 실현하면서도 전투력을 높일수 있는 방안을 일정하게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쌍선을 치자는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벌써 신념이 확고하지 못하다는걸 말해주는게 아닙니까? 다른 동무들도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으나 사나 최고사령관동지의 교시를 관철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지 이 길로 가보다가 안되면 저 길로 가보자는 식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수령님의 교시는 어떤 가능성을 론할것이 아니라 실현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나는 정치위원으로서 우리모두가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더 깊이 학습한 다음 이 협의회를 다시 하자는것을 제기합니다.》

협의회는 여기서 일단락되였다. 리철봉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부대지휘부청사를 나섰다. 누구라할것없이 같은 심정들이였겠지만 리철봉은 자기자신만이 커다란 죄를 지은것같아 가슴이 활랑거렸다.

자신을 믿는다고 하시던 김정일동지의 음성을 생각하면 우병국의 미싸일수입안을 배제하지 못한것이 부끄러웠고 론거가 당당한 그 방안을 반대해나서자고 보면 과학적인 담보를 가진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무능이 한스러웠다. 집에 돌아와보니 출입문에는 뜻밖에도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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