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2 장
파도소리
2
(1)
달그락, 달그락…
렬차바퀴가 레루이음짬을 넘는 소리가 가락맞게 울린다. 《EC-121》호사건으로 나라에는 일촉즉발의 긴장한 정세가 조성되였지만 렬차는 정시로 달리고있었고 인민들의 생활도, 혁명과 건설도 이 렬차와 같이 고르로운 동음을 울리며 정시로 달리고있었다.
원래는 김량남이와 함께 가실 작정을 하시였으나 아직 자기를 돌이켜볼 기회를 좀더 주고싶기도 하고 몸이 약한 사람을 북방에 데리고갔다가 가뜩이나 약질인 몸에 병이라도 생길것같아 그만두시였다.
그때문에
벌써 세번째로 보시는 원서여서 군데군데 빨간색연필로 밑줄을 그어놓은데도 있고 가생이를 집어놓은데도 많았지만 글줄뒤에 숨은 뜻과 그로부터 환원되는 새로운 의미를 새기며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시였다. 래일이 금요일이니 로동계급의 100년사상사총화조성원들이 토론준비를 해놓고 기다릴것이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외국어에 밝은 일군, 사회과학부문에 조예가 깊은 일군, 정치경제학과 철학부문에 대한 교육경험이 있는 일군들로 연구조를 뭇고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토론회를 진행하군 하였는데 아무리 바쁜 일이 생겨도 이 토론회만은 번지지 않으시였다.
그동안 분석한 도서들만 하여도 《유태인문제를 론함》, 《헤겔법철학비판 서론》, 《철학의 빈곤》을 비롯한 맑스와 엥겔스의 저서들, 《무엇을
할것인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국가와 혁명》을 비롯한 레닌의 저서들은 물론 헤겔, 푸르동의 저서들까지 보충적으로 보신것이 수십여권에
달하였다. 이제 몇달만 있으면 이 강행군도 끝나고 로동계급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선행리론가들이 줄기차게 벌려온 투쟁의 력사를 전면적으로 총화한
기초우에서
덜커덩하고 차량이 흔들리더니 야무진 호각소리에 이어 렬차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었다. 어느 역구내에 들어서는 모양이다.
이내 멈추어선 렬차에서 와르르 내려선 려객들이 어디론가 한곳으로 몰켜가는것이 차창밖으로 눈에 띄운다. 하나같이 손에 물병들을 든것으로 보아 수도물이 나오는 곳을 찾아가는것같았다.
잠시 책에서 눈길을 떼고 물병을 든 려객들의 걸음을 좇으시느라니 그들이 몰려간 곳은 수도간이 아니라 네모방정하게 귀틀을 맞추어 쌓아올린
우물이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우물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사방을 둘러보며 무엇인가를 찾는다. 어떤 성미급한 려객은 방틀에 배를 걸고 우물속에 거꾸로
박힌다. 드레박이 없어서 그러는것은 아닐가. 하루에도 수많은 려객들이 리용하는 우물이니 십상 그럴수도 있다.
《저… 무슨 책인데 그렇게 재미있게 보십니까?》
웃침대에서 잠기어린 목소리가 울리더니 하얀 면상의바람으로 자리에 누웠던 40대의 장령이 가슴우에 덮었던 군복에 팔을 꿰면서 아래로
내려왔다. 어제 저녁 혜산역에서 우연히 만난
몇해전
《부총장동지는 혹시 내가 재미난 소설책이라도 읽는줄 아는가본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고타강령비판〉입니다.》
김순일은
《그런걸 난 또… 젊은 시절에 번역판은 더러 보았지만 이렇게 원문으로 된것은 처음 봅니다.》
《그렇습니까?》
어느 학문의 리론이나 다 그러하지만 특히 군사리론은 철학의 반영을 필수로 한다. 세계최초의 군사리론이라고도 할수 있는 《손자병법》을 실례들어보아도 일부 학자들은 손빈의 《36계》를 두고 그것은 철학이 반영된 군사리론이라기보다 그자체가 하나의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약육강식을 기초로 하고있는 자본주의나라의 경제전문가들은 이 리론을 경제분야에 활용하여 막대한 리윤을 얻어낸 실례를 들면서 손자병법이야말로 인간생존의 가장 확고한 비결이라고 극구 찬양하기도 한다.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정당화하고 왕가의 존망을 위하여 백성의 생사를 짚검불처럼 여긴 중세의 군사리론을 인류의 영원한 생존철학처럼 추어올리는데는 가소로움을 금할수 없지만 어쨌든 클라우제위츠의 전쟁론이나 엥겔스의 군사론을 비롯하여 고금동서의 유명한 군사리론들은 어느것을 막론하고 철학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것들이였다.
전쟁 그자체가 특별한 폭력수단에 의한 어떤 계급의 정책의 연장으로서 정치의 산물로 된다는데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전쟁이 물질의 대결이기 전에 인간의 대결이기때문일것이다. 사상과 리념의 대결, 지혜와 의지의 대결인 전쟁에서 쌍방의 인생관, 철학적리념이 무엇인가 하는것은 전략과 전술을 결정하는 관건적인 고리로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토론상대를 또 한명 만난셈이구만요. 그래, 부총장동지는 이 책을 읽어본 감상이 어떻습니까?》
김순일은 아직도 잠이 덜 깬 모양으로 미간을 썩썩 문지르더니 눈을 가늘게 쪼프리였다.
《오래전의 일이여서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이 책을 보면서 맑스라는 사람이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사회주의를 전혀 체험해볼수 없었던 시대에 순수 론리적인 사색으로 반세기후에 인류가 겪게 될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문제를 전개했으니 참 천재적인 리론가이로구나 하고 감동했던 일만은 생생합니다. 귀가 먼 상태에서 교향곡을 창작한 베토벤을 천재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음정을 들을수 있었던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부총장동지도 이야기했지만 여러가지 철학리론문제를 내놓은 이 론문에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에 대한 문제가 독자적인 리론적범주로 설정된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맑스와 엥겔스는 19세기 70년대에 농민이 농업로동자로 전환되여 나라안에 로동계급과 자본가계급만이 존재하던 영국을 표본으로 하여 사회주의동시혁명의 견지에서 이 문제를 연구하였기때문에 로동계급이 자본가계급을 타도하기만 하면 전세계에서 짧은 기간에 과도기의 임무를 수행하고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로 넘어갈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김순일은 입에 물었던 사이다를 꿀꺽 넘기며 고뿌를 내려놓았다.
《거기에 대해서는 저도 의견이 좀 있었습니다. 현실이 증명한바이지만 세계혁명이라는것은 나라별로, 시기별로 력사적조건과 환경이 다른것만큼 동시혁명이라는것이야 어불성설이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그 리론은 시대적제한성이 있다고 봅니다.》
《제한성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