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2 장

파도소리

3

(1)

 

최현민족보위상이 21군단지휘부에 도착한것은 푸릿한 미명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새벽이였다. 작전탁우에서 밤을 새우고 사무실걸상우에 앉은채로 금방 풋잠에 들었던 군단장은 사전련락도 없이 벼락같이 들이닥친 민족보위상앞에서 일순간 돌미륵처럼 굳어져버렸다.

《EC-121》호사건이 있은 후 전연군단들로부터 거의 매 시간 정황보고를 받아온 최현은 량수책상우에 놓인 탁상등을 닁큼 들어 작전탁우에 옮겨놓고 확대경으로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어느쪽이 제일 갈갠다구?》

피곤이 꽉 엉킨 군단장의 갈린 목소리가 울렸다.

《대답하겠습니다. 한시간전까지 종합된 자료를 보면 적들의 주타격방향은 35사가 위치한 노루봉계선으로 추측됩니다. 어제만 해도 여기서 2차에 거쳐 무반동포사격이 있었고 오늘 3시에는 우리 방어구역에 대한 탐조등탐색이 30분동안 계속되였습니다.》

군단장이 파란색연필로 노루봉우에 두어번 동그라미를 그리자 최현은 거기에 집게손가락을 꾹 눌러짚으며 군단장을 쳐다보았다.

《노루봉이 갸들의 주타격방향이라는 근거가 그것뿐인가?》

《총참모부에서 내려보낸 정찰자료에 의하면 현재 35사 전방지휘소가 자리잡은 노루봉 맞은켠에는 괴뢰야전군 6사외에도 미군장갑차대대 2개와 증강된 포병 1개 련대, 기타 미군공병중대들로 다른 지역에 비해볼 때 유생력량이 제일 밀집되여있고 미군의 비률도 제일 높습니다. 어제부터는 기자들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기-자-들?!》

가늘게 두눈을 쪼프린 최현은 말꼬리를 길게 끌면서 지도우를 훑어가던 확대경을 들어 이마 한가운데까지 내려온 양털모자를 쑥 밀어올렸다.

《코큰 량반들이 되게 허세를 부리는군. 기자들이라…》

잠시 생각에 잠겼던 최현은 고개를 꺾으며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군단장을 피끗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쪽과 저쪽엔 적군배비가 어떻게 되였다고?》

군단장은 최현이 가리키는 37사와 43사쪽을 내려다보면서 적들의 배비상태를 차례로 설명하였다.

《…노루봉계선을 중심으로 량익측에 배비되여있는 이 두개 사단전방은 적들의 류동이 좀 심한것이 특징인데 미군은 움직인것이 없고 전부 괴뢰군 야전사단과 특전려단들뿐입니다. 참모부에서는 이 부산스러운 류동을 제놈들의 주타격방향을 숨기기 위한 허위기동으로 보고있습니다.》

《그러니 괴뢰군은 꽹과리를 치고 미군은 노루사냥에 나선다는건가?》

최현의 두툼한 입술이 비주름히 돋아오르더니 누구를 비웃는듯한 미소가 실룩거리다가 흥! 하는 코방귀가 터져나왔다.

《노루봉은 미끼야!》

너무나 확신성있는 최현의 장담에 군단장은 잠기가 말짱 달아나버려서 밤새껏 두눈에 사진찍어놓다싶이 한 지도를 새삼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이거 보라구, 군단장! 원래 미국놈들이라는건 싸움판에서 선코에 나서질 않아. 얼뜬한것들을 대포밥으로 내밀고는 먼지가 좀 가라앉은 다음에야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나는 족속들이거던. 그러니 노루봉앞에 기자들까지 모셔다놓구 미군이 우글우글 모여든게 무엇때문이겠나?》

군단장은 깨도가 되는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기가 그어놓은 빨간 동그라미를 손가락끝으로 계속 도닥거렸다.

《혹시 적들이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것까지 내다보고 역수를 쓸수도 있지 않습니까?》

최현은 손에 들었던 확대경을 지도우에 털썩 던지면서 풀썩 웃었다.

《그놈들이 목숨까지 걸고 도박을 해? 어쨌든 갸들이 먼저 장단을 치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춤을 좀 춰주자구.》

《어떻게 말입니까?》

《이 최현이가 노루봉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것같나? 거기 마침 기자선생들도 많이 나와있다면서?》

군단장은 그제서야 최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민족보위상의 불의적인 출현은 적들에게 두개의 돌을 던지게 될것이다. 하나는 아군이 저들의 미끼를 든든히 물었다는 확신일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칫하면 저들이 미끼로 던진 노루봉이 아군의 주타격방향으로 될수 있다는 위구일것이다. 어느쪽으로 추측을 하든지 주도권은 우리가 쥐게 될것이고 적들은 혼란에 빠질것이다. 그러나저러나 이제는 적들의 얕은수가 드러난 조건에서 적들의 진짜 주타격방향에 아군의 방어력량을 보강하는것이 급선무다. 지금까지 노루봉을 점찍고 거기에 력량을 집중했기때문에 37사쪽은 오히려 병력배치밀도가 약한편이였다.

군단장의 이러한 걱정을 최현은 귀신같이 알아맞혔다.

《예비대가 얼마나 있나?》

군단장이 곧 지도우에 손을 짚었다.

《여기 396고지 뒤계선에 땅크 두개 련대, 이 화곡리골안에 포병 한개 련대가 전투준비를 갖추고있습니다. 이제 당장 적들의 주타격방향으로 진출시키겠습니다.》

《아니!》

최현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와르릉거리는건 오히려 노루봉쪽에 증강해야 돼. 적들도 머저리가 아닌데 최현이 하나 나타났다고 호락호락 속겠나? 주타격방향으로 예견되는 곳에는 기동이 빠른 보병을 한개 대대쯤 은밀히 증강시키는게 좋겠는데… 지도를 보라구. 여기 지형으로 보아 37사쪽으로 적군이 밀고들어온다면 보조타격방향과 주타격방향사이에 일정한 공간이 생기게 되거던. 이 틈으로 한개 대대쯤 들이밀어서 쐐기를 치고 뒤통수를 타격하면 올데갈데 없이 발목을 묶고 물에 뛰여든 놈의 신세가 되고말걸. 그런데… 예비가 없지?》

《저…》하고 말끝을 흐리던 군단장이 급기야 《있습니다!》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정치위원동지가 책임진… 하하하… 제가 왜 미처 그 생각을…》

《정치위원의 예비대?》

최현은 어마지두 놀라서 군단장을 쳐다보았다.

여기 정치위원이라면 47군단에서 부사령관을 하다가 한달전에 새로온 리오송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쯤 전연에 나가 정치사업을 하고있을줄 알았던 사람이 무슨 예비대를 책임지고있다고 하니 어떻게 된 감투끈인지 모를 일이였다.

《그건 대체 무슨 예비대인가?》

군단장은 슬며시 뒤목을 어루쓸면서 최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실 정치위원동지가 오자마자 매 사단에서 한개 련대씩 뽑아 새로운 방식의 훈련을 시키자는 의견을 내놓았댔는데… 참모부에서 좀 론난이 있었습니다. 정치위원동지가 제안한 그런 훈련을 하자면 구분대들이 며칠씩 병영을 떠나있어야 하겠는데 방어전연에 공백도 생길수 있고 해서… 정치위원동지가 정 그렇다면 자기에게 한개 대대만 달라, 시범적으로 훈련을 시켜보겠다고 하길래 저도 동의를 했습니다. 지금 그 대대가 37사와 50여리쯤 떨어진곳에서 훈련중에 있습니다.》

최현은 너부죽한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띠우면서 지도우에 두팔을 힘껏 벌려짚더니 단숨을 푹 내그었다.

《좋소, 그럼 그 예비대는 급히 37사쪽으로 출발시키고 소리가 요란한 기계화부대들은 노루봉으로 뽑소. 좋기는 내가 노루봉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다음에 곧장 들이닥칠수 있게 시간을 맞추오. 까마귀가 난 다음에는 배가 떨어져야 그럴듯하거던. 허허… 참 그리고… 거 오송이는 말이야. 아니… 군단정치위원은 내가 급히 찾는다고 하오.》

잠시후에 군단장을 앞좌석에 태운 최현민족보위상의 군용찌프차는 노루봉쪽으로 떠났다. 해토가 되여 질쩍해지기 시작한 토사도로를 30분쯤 달려서 전방지휘소가 자리잡은곳에 도칙했을 때 리오송은 벌써 사단의 지휘관들과 함께 최현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군화뒤축에 기벼운 먼지를 일구며 급속으로 달려온 사단장이 소리를 퍽 낮추면서도 기백만은 빳빳이 살아나게 위혁적인 구령을 쳤다.

《차려-엇!》

최현은 손을 흔들어 사단장을 저지시켰다.

《사단장! 정신이 번쩍 들게 구령을 다시 치라구. 저 건너편에서 다들 듣게 말이야! 오늘 작전의 승패는 동무 목소리가 얼마나 큰가에 달렸소.》

사단장은 굳어진 눈으로 최현의 뒤에 서있는 군단장을 쳐다보더니 의미있게 끔쩍여보이는 직속상관의 눈길을 보고서야 건기침을 톺아올렸다.

《사단 차려-엇! 민족보위상동지! 제21군단 제35사단은 전연방어임무를 수행하고있습니다. 사단장 소장 강성욱!》

《좋소. 쉬엿하시오.》

《알았습니다. 쉬여-엇!》

최현은 몇걸음 앞으로 나와 사단장의 손을 쥐여흔들면서 엄청 큰소리로 치사를 하였다.

《사단장 목소리가 괜찮아. 그만하면 저쪽에선 귀머거리들도 들었겠소. 이거 군악대같은게 있으면 나팔까지 불어야 제격이겠는데…》

아무리 민족보위상의 명령이라고 해도 이 위험천만한 전방지휘소에서 사단장이 영접구령을 너무 크게 친것이 아닌가 하고 속이 한줌만 해있던 군관들은 최현의 입에서 나팔소리까지 나오자 어안이 벙벙해지고말았다. 빨찌산로장의 의도를 제꺽 알아차린것은 리오송정치위원뿐이였다.

원래 리오송은 적들의 주타격방향이 노루봉이라는 참모부의 예측을 그닥 신통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군단장의 결심이 확고한데다가 적들이 미끼로 던진것이 분명한 노루봉에 일정하게 력량을 집중하는것도 전술적으로 의의가 있을것같아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하였다. 리오송은 며칠전에 정치부성원들을 자기가 주타격방향이라고 본 37사와 43사쪽에 집중파견하였다. 군단장이 참모부성원들과 함께 적아 유생력량의 대비를 따지고 그 배비를 변경시키고있는 사이에 정치부일군들은 정치위원이 조직한대로 《보조타격방향》에서 맹활약을 시작하였다. 리오송자신은 언제부터 자기가 고문격으로 지도하여오던 훈련대대를 데리고 37사가까이로 행군로를 잡았다. 군단장은 밀집된 방어력량에서 한개 대대쯤 빠져나가는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리오송은 언제든 정황이 생기면 기동력과 불의기습능력이 강한 이 예비대를 요진통에 들이밀어 군단참모부가 놓친 구멍을 메워내려고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물론 여기에 군단지휘관들에게 훈련과 관련한 자기의 주장을 실체험으로 납득시키자는 숨은 욕망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급기야 군단장으로부터 훈련대대를 37사쪽으로 뽑으라는 무전련락이 왔다. 이제야 물이 제곬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는데 구경은 최현민족보위상이 노루봉에 나타났다. 보나마나 적들의 기만전술을 거꾸로 리용하자는것이다. 리오송은 노루봉골안이 떠나가도록 울리는 사단장의 영접구령부터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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