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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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느 사이 바다기슭의 자갈밭에는 껍질이 반들반들한 조개며 막돌쪼각같은 굴조가비들이 두두룩하게 쌓였다. 천막에 갔던 정치지도원이 되돌아 달려나오며 중대장을 소리쳐불렀다.

《중대장동지! 그만합시다! 이만하면 되겠습니다!》

정치지도원의 목소리를 귀동냥해들은 군인들이 손에 쥔 조개들을 물에 담그어 와락와락 헹구며 기슭으로 나올 잡도리들을 하였다.

《좀 보우. 군인들이 어떻게 되여가는가.》

진성에게 슬그머니 침을 찔러넣은 석철룡이 바다물속으로 점벙점벙 걸어들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누가 나오라고 했소? 중대장의 명령이 있기 전에야 폭탄이 떨어져도 꿈쩍하지 말아야지.》

일이 끝나는가부다 하고 발뗌을 하려던 군인들은 꿈쩍 놀라서 다시 허리를 굽히고 물속을 더듬었다. 정치지도원이 최진성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만합시다. 군인들도 몹시 추워하는데… 지금 잡은것이면 며칠은 실컷 먹겠습니다.

최진성의 구리빛얼굴에 굵다란 근육이 쭉 가로지나갔다.

내가 지금 중대장이 옳기는 옳은가.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정치지도원의 말에 흔들리다니!

아버지문제때문에 내 속대가 약해진 모양이다. 아니, 설사 어떤 과오를 범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내가 존경하는 항일투사이고 나를 키워준 아버지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과오가 결코 이 정치지도원에게 내가 모든것을 양보해야 할 근거로는 될수 없다. 적어도 내가 중대장으로 있는 한!

최진성은 서서히 허리를 펴고 사위를 둘러보다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1소대장! 2소대장!》

좌우량켠에서 소대장들의 대답소리가 들렸다. 최진성은 대답이 들려오는쪽을 보지도 않고 발밑에서 돌 한개를 주어 이십보쯤 떨어진 곳에 무져놓은 조개무지를 향해 힘껏 뿌려던졌다. 수류탄처럼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간 돌이 두두룩한 조개무지에 딱 소리를 내며 정확히 떨어졌다.

《이제부터 각 소대는 저기 보이는 저 무지만큼 조개를 더 잡을것!》

최진성이 무릎을 걷고 바다물에 들어서자 정치지도원도 묵묵히 따라들어왔다. 조개잡이는 황혼이 깃들무렵에야 끝났다.

바다기슭에 피워놓은 우등불에 몸을 녹이고 젖은 옷가랭이도 말린 군인들이 생선국끓이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기는 천막식당으로 다 들어갔을 때 불무지주변에는 세명의 중대지휘관들만 남았다.

불길은 이미 다 사그라지고 밤알만한 숯덩어리들이 벌겋게 이글거렸다. 최진성은 몸뚱이가 다 타고 불무지가생이에 끄트머리만 남은 장작쪼각들을 집어 불이 사그라진 숯무지속에 던져넣었다.

매운 연기가 한바탕 끄물끄물 피여오르자 석철룡이 휘휘 손사래를 치더니 불무지를 통채로 날려보내려는듯이 세찬 입김을 불어댔다. 퍽 소리와 함께 고깔같은 불길이 솟아오르자 둘레가 확 밝아지며 마주앉은 세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입을 꾹 다물고 앉은 최진성의 얼굴은 깎아놓은것같고 두손을 깍지 낀채 무릎을 그러안은 정치지도원의 눈은 안경을 끼지 않았는데도 부옇게 흐려보였으며 석철룡의 찌프린 눈에는 불만이 꽉 찼다. 최진성이 쿵 하고 헛기침을 깇고나서 먼저 입을 열었다.

《됐소. 오늘 일은 내가 좀 지나쳤다고 해두기요. 내 성격이 막돼먹어서 그런거니 정치지도원동무가 리해하오.》

《성격문제라면… 얼마든지 리해할수 있습니다.》

숯불찌에 대고 푸푸 입바람을 불고있던 석철룡이 가운데 끼워들었다.

《아니, 중대장이 리해해달라는건 뭐구, 정치지도원이 리해한다는건 또 뭐요? 이거 말들을 별나게는 하는군. 날보구 말을 못해 그러우?》

석철룡의 급작스러운 반발에 최진성이 아연해하는데 정치지도원이 누긋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부중대장동무보구 그러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왕 말이 난김에 생각되는걸 좀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석철룡은 입바람불기를 그만두고 정치지도원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하오, 할 이야기가 많겠는데…》

《부중대장동무가 이전에 중대장사업을 했다는걸 저두 모르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부중대장동무가 지나치게 월권을 한다고 생각되진 않습니까? 저도 그런 느낌이 들지만 병사들의 반영도 좋지 않습니다.》

《알고있소. 하지만 나는 중대장동무의 사업을 돕고 중대가 잘되길 바래서 그러는것이지 무슨 직무가 욕심나서 그러는건 아니요. 적어두 난 동무처럼 중대일을 방해한것은 없단 말이요.》

《방해하다니요?》

말이 험하게 번져가는것을 느낀 최진성이 석철룡의 팔을 잡아당겼으나 일단 불이 달린 철룡은 제 성미대로 욱 밀고나갔다.

《지금 공사형편이 어떻소? 갱은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데 레루가 따라서지 못해서 병사들이 벌써 한주일째나 질통으로 돌을 나르고있지 않소? 이렇게 굼벵이천장하듯 해가지고는 명령받은 날자까지 공사를 끝내지 못할게 뻔한데 정치지도원동무는 중대장을 꼬드겨 조개잡이를 조직해놨소. 그래, 조개나 문어가 굴을 뚫소?》

석철룡의 마지막말이 정치지도원에게는 어떻게 들렸는지 몰라라 최진성에게는 분명 《우리 중대군인들이 동무의 포르말린용액통을 채워주는 사람들이요?》하고 말한것처럼 들렸다.

《됐습니다. 레루문제는 내가 래일 군단에 올라가 제기해보지요.》

어색한 분위기를 가시기 위해서라도 최진성은 이야기를 빨리 끝내버리고싶었다. 그러나 정치지도원은 그의 말꼬리를 또 붙들었다.

《군단에 올라가봐야 뾰족한 수가 없을겁니다. 지금 정세가 어떤지야 모두들 잘 알지 않습니까? 내가 들어올 때 보니 지휘부병영은 텅 비다싶이 하고 온 군단이 초긴장상태였습니다. 자체로 해결방도를 찾아야지요. 그리고 제 생각엔 우리에게 당장 걸린게 레루나 광차가 아닌것같습니다. 》

《그럼 무엇이 걸렸단 말이요?》

석철룡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우리 지휘관들이지요.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병사들을 믿고 그들을 아껴야 합니다. 그런데 부중대장동무만 해도 군사과업이 어렵다고 하여 걸핏하면 병사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오늘일만 놓고봅시다.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자고 시작한 조개잡이가 어떻게 되였습니까? 찬물속에 저녁늦게까지 붙들어두어서 오히려 피곤만 주었습니다. 난 이에 대해 중대장동무나 부중대장동무가 심각하게 자기를 돌이켜봤으면 합니다.》

정치지도원은 말을 마치고 일어서더니 병사들이 식사하고있는 가설 천막식당쪽으로 걸어갔다. 석철룡은 정치지도원이 사라지기 바쁘게 울화통을 터뜨렸다.

《잘은 하는군. 조개잡이는 제가 시작해놓고 우리한테 험테기를 씌워? 어디서 저런 관료주의자가 또 나타났나? 그런데 중대장동문 왜 그렇소? 레루문제를 해결하러 군단에 가겠다고 나섰으면 끝까지 우겨야지 정치지도원의 한마디에 주저앉는단 말이요?》

《그의 말이 옳지 않습니까? 지금정세가…》

《그럼 전연에만 정세가 긴장하고 우린 평화롭소? 전쟁이 일어나면 여기로는 적들이 안 들어온단 말이요? 급하기는 오히려 우리가 더하지.》

최진성은 거의 사그라져가는 숯불을 점도록 바라보다가 석철룡의 팔등에 손을 얹었다.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는 그의 말도 옳습니다. 나한테 한가지 생각이 있는데…》

진성은 레루문제를 풀기 위해 자기가 생각한바를 이야기하였다. 석도에서 뭍으로 나가 30리쯤 북쪽으로 올라가면 동해안지구에서 손꼽히는 ㅎ제강소가 있었다. 최진성의 생각이란 바로 그 제강소의 도움을 받을수 없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석철룡의 얼굴에는 대번에 화색이 돌았다.

《그게 좋은 생각이요. 아무렴 그 큰 제강소에 레루토막 몇개 여유가 없겠소? 내 당장 나갔다오겠소.》

최진성은 덤벼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석철룡을 붙들었다.

《뭘 그렇게 서둘면서… 빈손으로 떠나자고 그럽니까?》

《빈손이 아니면, 중대장이 돈마대라도 지워줄려구? 저 안경쟁이라면 몰라두 동무주머니에야 뭐가 있겠다구…》

《돈마대는 없어두 우리 석도의 특산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마침 조개두 퍼그나 잡았는데 둬마대 가지고나가십시오. 혹시 알겠습니까?》

석철룡은 능청스러운 눈길로 최진성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까 조개잡이를 더 하자고 할 때부터 그런 생각을 미리 해둔건 아니요? 허허허… 어쨌든 좋소. 레루문제는 내가 맡지.》

최진성은 석철룡이 어려운 일을 선뜻 맡아나서준것이 고마와서 대답대신 그의 손만 더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유리병속에 문어나 잡아넣고있는 정치지도원보다는 그래도 석철룡이 훨씬 더 미더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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