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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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용차뒤좌석에 웅크리고앉아 고르로운 진동에 몸을 맡기고있던 최현은 갑자기 옷깃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에 오한이 나서 으스스 어깨를 떨며 선잠이 깨여버렸다. 진달래가 한창인 4월이라고 하지만 이런 새벽에는 날씨가 겨울보다 더 쌀쌀하다. 연신 하품을 하며 긴장하게 조향륜을 붙들고있는 운전사를 얼핏 바라보고난 최현은 이제껏 장령외투의 양털목깃속에 꾹 박았던 목을 돌려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설핏한 어둠사이로 희스무레한 전야가 흘러간다. 도간도간 거뭇거뭇한 보습자리가 눈에 띠운다. 자연이란 복잡한것같으면서도 얼마나 단순한가. 겨우내 허여스름하게 색이 바래고 꾸덕꾸덕 말라붙었던 땅도 저렇게 한번 보습으로 갈아제끼면 금시 까만 윤기가 돌고 뜬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르는 새 흙이 드러눕는다.

최현은 어제저녁 해군사령부에서 있었던 불쾌한 일이 떠올라 금시 뻣뻣해오는 뒤목을 거치른 손바닥으로 썩썩 문질렀다. 사람의 머리속도 저렇게 보습으로 밭을 갈듯이 푹푹 갈아엎을수 있다면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21군단에 나갔던 최현이 평양으로 돌아오던 길에 해군사령부에 들린것은 어제 저녁무렵이였다. 최현은 이번에 전연을 돌아보면서도 해군에서 준비하고있는 대규모함선집단타격방안에 대하여 줄곧 생각하였다.

전연방어지대시찰을 통하여 다시한번 느꼈지만 적들은 동부산악지대에 든든히 틀고앉은 우리의 방어 및 반타격집단들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그처럼 엄청난 력량상우세를 차지하고서도 뚫지 못한 전선을 오늘에 와서 어째보겠다고 서뿔리 덤벼들 놈들이 아니다.

그때문에 적들은 정세가 긴장해질 때마다 우리 수역가까이에 대규모함선집단을 들이밀어 바다로부터 군사적위협을 가하는것을 상투적수법으로 써먹고있다. 아직은 위협에 머물러있지만 그것이 언제 실전으로 이어지겠는가 하는것은 누구도 모른다. 해안에 대한 적들의 위협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전 민족보위상 김창봉과 해군사령관 유창권을 비롯한 군벌관료주의자들은 수령님의 해군건설방침을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

함선을 경량화할데 대한 방침이 제시되면 해병침실에서 회상기를 비롯한 교양자료들을 부리우다못해 발라스트까지 떼여내는 망동짓을 부렸고 해군장비들을 현대화할데 대한 방침이 제시되였을 때에는 낡은 함선들을 페기시킨다고 하면서 해방후 우리 로동계급이 어버이수령님의 구상을 받들어 자체의 힘과 기술을 가지고 만든 전투함선까지 바다우에 띄워놓고 박산내버렸다.

이런 천벌맞을짓을 해놓고도 그자들은 그 모든 행동을 당의 방침을 집행하는 과정에 범한 과실로 변명하려고 하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변명에 고개를 기웃거리고있을 때 이러한 행위의 반혁명적본질을 낱낱이 발가놓으신분은 바로 김정일동지이시였다.

함선을 경량화한다고 하면서 회상기책을 부리우라고 한것은 무엇때문인가?

정 낡아서 전투함으로 쓸수 없다면 력사박물관에라도 고이 보존해야할 귀중한 함선을 해체도 아니고 파괴해버린 검은 속내는 무엇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자들의 행위가 결코 수령님의 교시를 잘 리해하지 못했거나 력사에 대한 무식에서 산생된것이 아니라 사대주의에서 시작된 허무주의의 표현이고 수정주의에서 자라난 패배주의의 발현이며 나아가서는 우리 당의 혁명력사와 전통을 거세말살하려는 의식적인 해독행위라는데 대하여 적라라하게 까밝히시였다.

한줌도 못되는 반당반혁명분자들에 의하여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해군을 새롭게 갱신하는데서 최현은 무엇보다 부족되는 함선들을 보충하고 해안방어체계를 보강하는것을 비롯하여 그자들이 남긴 치명적후과부터 가셔내는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말하여 원상복구가 1차목표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해군을 원상복구하는데 머무를것이 아니라 열백걸음을 더 앞질러나가 이전시기에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강력한 해군을 건설하실 구상을 내놓으시였다. 그 골자가 바로 적들의 대규모함선집단에 대한 실제적인 공격능력을 갖추는것이였던것이다.

최현은 지금쯤 우병국사령관이나 리철봉이 설익은 방안이라도 세워놓았을것으로 믿고 이번 길에 그것을 최대한으로 완성하여보자고 작정을 하였다. 그러나 해군사령부에서 그를 맞이한것은 상상밖의 보고였다.

모두들 왕청같은 미싸일수입안을 놓고 왈가왈부하는데다가 우병국사령관은 임철정치위원이 군사일군들의 의견을 독단으로 내리누르기때문에 일해먹기가 베차다고 시큼한 소리까지 하였다.

최현은 지금이 어느때이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가, 당의 전권대표인 정치위원의 말도 듣기 싫다면 사령관도 자리를 내놓으라고 호된 추궁을 해놓았다. 그래놓고는 해군사령부에 더 앉아있을 멋이 없어서 저녁식사도 하지 않고 길을 떠나고말았다.

서리를 하얗게 들쓴 최현의 승용차는 해살이 푹 퍼져서야 평양에 들어섰다. 최현은 어제밤도 끼니를 번진데다 새벽추위에 떨면서 아침을 맞고보니 속이 몹시 쓰려났으나 집에 들릴 생각도 잊고 곧장 당중앙위원회청사로 향하였다. 정문앞에 차를 세우고 중앙현관쪽으로 걸음을 다우치던 최현은 흠칫 놀라며 멈춰섰다. 중앙현관과 좀 떨어진 곳에 금방 도색을 한것처럼 번쩍거리는 자동차 두대가 서있고 그 적재함우에 《까츄샤》포같은것이 실리였는데 뜻밖에도 김정일동지께서 여러 일군들과 함께 그 차앞에서 말씀을 나누고계시다가 최현을 알아보고 반색을 하며 마주오시였던것이다.

《전연에 나가셨다더니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지금 들어오는길입니다.》하고 대답하며 인사를 올리던 최현은 눈을 끔벅이며 의아하게 물었다.

《그런데 제가 전연에 나간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아바이가 전연으로 떠나면서 이번 길은 수령님께서랑 아시면 못가게 막으실수 있으니 갔다와서 보고드리겠다. 절대 보고하지 말아라.하구 아래사람들에게 엄포를 놓으셨다면서요?》

최현은 그만 눈앞이 아찔해져서 그이께 매달리다싶이하였다.

《아니 원, 수령님께서야 모르고계시겠지요?》

《알고계십니다.》

최현은 맥이 싹 풀려 한숨을 내쉬였다.

《허, 이거 내가 무슨 일을… 내 원체 수령님앞엔 뭘 숨긴적이 없는데… 크게 노하셨습니까?》

최현이 걱정어린 눈길로 수령님의 집무실창문쪽을 올려다보자 그이께서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정세가 이렇게 긴장한데 최현이 갈데 있는 사람인가, 자신께서는 그럴줄 알았다고 하시며 일단 결심을 하고 나간 사람을 들볶지 말고 돌아온 다음에 단단히 처벌하자고 하셨습니다.》

최현은 그제서야 마음이 풀리는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벌씬벌씬 웃다가 김정일동지의 존안을 우러르며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거 내가 전연에 나간걸 보고드린게 도대체 누굽니까? 내 그만큼 신신당부했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최현을 바라보시였다.

《걱정마십시오. 민족보위성에선 비밀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최현동지가 전연에 나간걸 보고한것은 아군이 아니라 적들입니다.》

《적들…이라구요?》

최현이 의아한 눈길로 그이를 쳐다보았다.

《어제 남조선 동아일보에 최현동지가 전방감시소에 올라 쌍안경을 들고있는 사진이 크게 났습니다. 그 사진밑에다 최현동지의 빨찌산경력과 해방후 김석원부대를 료정내겠다고 38°선을 넘어서 개성까지 쳐나갔던 전적까지 죽 내려실었는데 아마 최현동지가 또 분계선을 넘어올가봐 되게 혼이 난 모양입니다. 하하하…》

최현은 그이를 따라 흐덕지게 웃었다. 수령님께 보고드리지 못하고 떠난것이 마음 한구석에 걸려있기도 하고 다 늙은것이 전연에 나가 무슨 큰일을 치랴 하면서도 응당 자기가 나서야 할 길이라는 자각 하나로 나갔던것인데 그만큼이라도 적들에게 자극을 주었다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 미소를 거두고 정색하시였다.

《신문에 난 그 사진때문에 수령님께서 몹시 노하셨습니다.》

최현은 자기의 어떤 모습이 사진에 찍혔기에 수령님께서 걱정을 하셨는지 도저히 짐작할수 없었다. 의혹의 답이 자기 얼굴에 묻어있기라도 한것처럼 손바닥으로 너부죽한 얼굴을 쓸어만지는 최현을 이윽히 바라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저에게 그 신문을 보여주시며 사진기의 렌즈와 저격보총조준경중에서 어느것이 더 멀리 보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최현은 금방 숨이 멎는것같았다.

해방후 적들을 추격하여 개성까지 쳐나갔다가 돌아온 후 수령님의 집무실에 불리워가 허리에 찼던 싸창을 회수당하던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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