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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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밤갈매기들이 끼르륵거리며 부산을 피우는 바다가 모래불에 주저앉은 석철룡은 흐뭇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워물었다. 영범이를 데리고 섬을 떠난지 꼭 사흘만이다. 그사이 석철룡은 레루대신 쓸수 있는 ㄷ형강을 수백m나 해결해냈고 차편을 얻어 여기 바다기슭까지 끌어다놓았다. 이제 영범이가 노대만 가지고오면 곧 전마선에 싣고 떠날판이였다.

달빛이 산산이 부서져 푸들쩍거리는 파도우에 사흘간에 있었던 일들이 언뜻언뜻 어려온다.

최진성과 조용히 토론을 하고 밤도와 뭍으로 나온 석철룡과 진영범은 물이 줄줄 흐르는 조개마대를 등에 지고 그달음으로 철야행군을 하여 이른아침에 ㅎ제강소에 도착하였다. 레루를 해결해줄만한 사람을 수소문하여 처음으로 찾아간것은 제강소 판매과장이였다. 군인들이 찾아온 자초지종을 듣고난 판매과장은 온몸이 땀참봉이 되여버린 석철룡과 진영범이를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손바닥을 딱 세워들었다.

《사정도 딱하고 성의도 고맙지만 레루는 안되겠소. 지금당장 방직기계생산용강재두 빳빳한 형편이 돼서 레루직장은 물론이구 생필직장까지 모두 소재를 붓고있는 형편인데 계획에두 없는걸 따루 만들 겨를이 어디 있소? 분기말이나 넘기고봅시다.》

분기말이면 두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것인데 거절을 못해서 하는 소리였다. 석철룡은 조개마대를 메고 레루직장이라는데까지 찾아들어갔다. 판매과장이 뭐라든 직접 생산현장에 가서 로동자들을 만나 《하층통일》을 해보자는 배심이였다.

그들이 시뻘건 화광이 천정까지 치닿는 현장에 들어가보니 로동자들은 마침 장입을 끝내고 담배들을 붙여무는 참이였다. 우선 누구를 겨누고 말을 붙여볼것인가 하고 속구구를 하는데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판이 펼쳐졌는지 왁자그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취! 그러니 반장아바이가 이번에 휴가를 받구 저 량강도 고향에 갔을 때 말이예요?》

스물두어살쯤 나보이는 청년이 어디가 개꼈는지 총알같은 재채기를 쏘아던지며 물었다.

《그래, 바루 그때 내 눈으로 직접 봤다니. 우리 마을에선 우물가 장면을 찍었는데 방틀에 얼음이 진걸 만들어야 한대서 온 마을아낙네들이 배우들과 함께 이틀밤을 새워가며 물을 부어 만들었지. 그런데 아침에 보니 그렇게 만든 얼음판으로 꿰진 토스레옷을 입구 물동이를 인 새애기가 맨발에 짚신을 신고 나오더란 말이야. 연출가라는 량반은 다시.〉, 다시.〉하면서 몇시간씩이나 돌려세우구… 아, 그러니 추운건 둘째치구 발이 우선 얼질 않겠나?》

반백이 된 머리를 바싹 깎은 중로배가 여기까지 말하고는 불이 꺼져가는 담배를 힘껏 들이빨았다.

《거 영화배우도 못해먹을노릇이군요. 헌데 연출가인지 하는 사람은 발을 녹이란 소리도 안해요? 에취!》

《웬걸, 연출가는 발을 녹이고 하자는데 그 새애기가 딱 뻗치더군. 거 뭐라던지… 발이 녹으면 자감인지 감자인지 하는게 깨진다나. 보아하니 배우들이 아주 독을 먹구서 영화를 찍더란 말이야.》

《원, 그 소릴 듣구서야 끔찍해서 영화라는걸 어떻게 보겠어요?》

《사연인즉 이번에 우리 마을에서 찍은 영화는 보통영화가 아니구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때 직접 쓰신 대본을 가지구 만든다는거야.》

《아니, 수령님께서 왜정때 영화두 만드셨대요?》

《영화를 만드신게 아니라 대본을 쓰셨다는데… 그때야 촬영기두 없구 배우들두 없었으니 대본만 써놓으셨겠지. 그러니 이게 좀 중한 일인가?》

《그래서 영화배우들두 그렇게 독을 먹구… 에취! 거 희한한 영화가 나오긴 나올 모양이다. 그런데 제목은 뭐래요?》

《제목이야 어디 냄새를 맡고 알겠나? 어쨌든 거 발을 얼구며 다니는 새애기보구는 갑순이라고 하구 동생아이는 을남이라고 하더군.》

《그러니까 제목은… 에취! 갑순이와 을남이로구만요! 을남이와 갑순이일수두 있구… 에취!》

연방 터지는 《에취!》바람에 가열로의 열기로 후끈후끈한 작업장안에 써늘한 바람이 부는것같았다. 로동자들은 북방의 눈보라속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배우들의 정경을 그려보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후에 퍼그나 낮아진 중로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거 배우들끼리만 쉬쉬하는 말을 듣자허니… 웃분이라던지…》

《웃분이요?》

《그래, 웃분이야기를 자주 하더군. 아마 그 웃분이 영화를 총책임지구 만드시는 모양이야.》

《예… 그러니 그 웃분이… 에취! 대단한 연출가인 모양이군요.》

《아니아니… 그분이 누군고 하니…》

목소리가 더 작아져 바싹 도사린 석철룡의 귀에도 겨우 들리였다.

《우리 수령님의 자제분이시라고 하데.…》

《어느분이시라고요?!》

모두들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지는데 연방 재채기를 하던 청년이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예요. 저 황철에 있는 내 친구가 그러는데요, 수령님의 자제분은 내각에서 경제사업을 맡아보신대요. 지금 신문에랑 방송에랑 꽝꽝 나오는 새 소식들이 다 그분의 지도를 받아 그렇게 된거라구요. 짐작두 분수가 있지 아무렴 수령님의 자제분께서 영화를 만드시겠나요? 쳇…》

청년은 어떻게나 열이 올랐던지 이번에는 재채기 한번 하지 않고 말을 내리엮었다. 하지만 그 청년의 곁에 앉은 목이 앙바틈한 로동자는 그 말도 못미더운지 턱밑을 슬슬 문다졌다.

《내가 듣건대는 이번에 푸에블로호를 붙들구 마지막까지 숨통을 조이신분이 그분이시라던데… 그러니 군대일을 보시는게 아닌가?》

석철룡은 호기심이 바싹 동해서 현장까지 찾아들어온 용무도 다 잊은채 귀를 강구고있다가 천정에서 쩔강쩔강하는 종소리가 나고 로동자들이 움찔움찔 일어설 차비를 하는것을 보고야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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