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4
(1)
《예? 임신이라구요?》
송영숙은 까무라칠만큼 놀랐다.
공장진료소 의사 리윤옥은 동그스름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송영숙의 얼굴은 붉어졌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다.
송영숙은 어깨를 떨구며 근심스럽게 앉아있었다.
(하필 공장에 온 첫해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당비서의 안해인 녀의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질거라고 생각하니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이럴 땐 어쩌면 좋아요, 예?》
송영숙은 구원을 청하듯 리윤옥을 올려다보았다.
리윤옥의 반달눈이 커졌다.
《어쩌다니요? 아이를 낳아 키우는거야 녀성의 본분이 아니나요?》
그는 심란해진 기사장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오래동안 군인가족생활을 하면서 의사 겸 조산원으로 수많은 병사감들을 받아내고 키워온 리윤옥이다.
그는 송영숙의 마음을 안심시켜주듯 찹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없어요. 힘은 좀 들어두 그게 우리 녀자들의 기쁨이구 자랑이 아니나요. 기사장사업을 하면서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힘이야 들겠지요. 그래두 일없어요. 친정어머니두 계시구 또 나도 곁에 있지 않나요.》
그는 마치도 자기가 친언니의 구실을 해야 할 의무감이라도 지닌듯 스스럼없이 말하였다.
송영숙에겐 리윤옥이 고마왔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다음 이렇게저렇게 손발이 얽히우고 사업에도 지장이 될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할 일은 많고많은데 어쩌면 좋담. …)
남편과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류산시켜버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리윤옥의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이 자기가 임신한걸 모르게 해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송영숙은 리윤옥에게 그것을 부탁하였다.
리윤옥은 별걱정을 다 한다는듯 곱게 흘겨보았다. 그의 반달눈이 살짝 까부장해졌다. 그는 진료소에 자주 찾아와 검진도 받고 또 무리하지 말라고 거듭거듭 당부했다.
송영숙은 상담실에 들어서는 낯선 환자를 보고 황황히 매무시를 바로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료소를 나선 송영숙은 사무실로 가려다가 곧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가 집에 들어서자 터밭에서 따들인 팔따시같은 첫물오이를 씻고있던 어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일어났다.
《병원에 가봤니?》
송영숙은 찌푸둥한 얼굴로 머리만 끄떡였다.
문춘실의 얼굴은 삽시에 어두워졌다.
《선생이 뭐라던? 나쁜 병은 아니겠지?》
문춘실은 딸의 뒤를 따라 방에 들어서며 조심히 물었다.
송영숙의 입에서는 불쑥 투정과 신경질 섞인 대답이 튀여나왔다.
《병이면 좋게요?… 뚱딴지같이 임신이라지 않나요.》
《뭐라구? 임신이라구?》
문춘실이 북관말특유의 센 억양으로 되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주름살이 싹 없어졌다. 그는 철썩 무릎을 쳤다. 그리고 싱글벙글 웃었다.
《내 이런 좋은 소식 듣자구 어제밤 희한한 꿈을 꾸었구나.》
《난 속상해죽겠는데 어머닌 그저…》
송영숙은 민망스러운 눈길로 어머니를 흘겨보았다.
문춘실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뭐가 속상해?》
《한창 바쁜 때… 남들이 알면 웃을게 아니나요? 기사장이라는게…》
송영숙은 그냥 불만스러운 감정을 터놓으며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문춘실은 끌끌 혀를 차며 세면장쪽에 대고 제 생각을 말했다.
《기사장보담 더 높은 어른들두 다 자식낳이를 하면서 일해. 딴생각말구 낳기만 해라. 키우는건 내 다 하지 않으리.》
이윽고 어깨춤이라도 출듯한 기분으로 부엌에 내려갔다. 그는 수도앞에 다가앉으며 지난밤 꿈처럼 제발 아들만 낳으라고 맘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더두 말구 제 서방처럼 잘생긴 아들만 낳아라. 그럼 내 경아 키우듯이 금이야, 옥이야 받들지 않으리. …)
문춘실은 마치 자기가 아이를 가진것만큼이나 꿈이 컸다. 몇년전까지만 하여도 딸이 처녀로 늙어버릴것만 같아 밤잠도 제대로 못자던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