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6

(1)

 

먹이시간이 지나자 리봄순은 서정옥에게 아버지의 점심을 드리고 오겠다고 말했다.

《어서 갔다와.》

정옥이 웃으며 머리를 끄떡였다.

봄순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인츰 돌아오겠다고 덧붙여 말하였다.

《일없어, 천천히 갔다와.》

정옥은 살뜰한 손길로 처녀의 등을 가볍게 떠밀었다.

봄순은 아버지의 점심꾸레미를 들고 시험호동을 나섰다.

그는 호동 뒤켠길로 걸음을 옮겼다.

청년직장과 종금2직장은 서로 등을 맞대고 들어앉았기때문에 뒤켠으로 가면 에돌지 않고서도 수의사방에 들어갈수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며 지름길에 들어서던 봄순은 저도 모르게 호- 한숨을 내쉬였다.

아침출근길에서 만났던 옆집 방인화의 생각이 났던것이다.

《얘, 봄순아!》

봄순이가 큰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가공직장장 방인화는 출근길에 나선 그에게 함께 가자면서 사내처럼 팔을 휘저으며 다가왔다.

처녀와 나란히 걸음을 같이하게 되였을 때 그는 요즈음 부식물을 무얼 먹는가고 물었다.

며칠전에 담근 김치도 있고 메주장에 풋고추를 넣고 끓인것에 절인 오리알로 아침밥을 먹었다고 대답하자 그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더니 며칠전에 온돌수리를 하니 불이 잘 들던가고 물었다.

직장장사업때문에 늘쌍 바삐 드달려다니면서도 봄순이네 살림살이를 제집일처럼 관심해주는 큰어머니였다. 이윽고 그는 불쑥 이렇게 물었다.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하니? 봄순아.》

《?!》

《너의 아버지일 말이다. 지금처럼 계속 혼자 살게 할수야 없잖니?》

《…》

《효자는 부모한테 짝을 무어준다는데 이젠 네가 아버지한테 말하려무나. 새 엄마를 데려오라구 말이다, 응? 그래 넌 보급원엄마가 나쁘던?》

《나야 뭐…》

성미 앵공한 봄순은 새초롬해진 얼굴을 숙이였다.

그는 새 엄마 얘기만 나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큰어머니의 소개로 보급원엄마가 들어왔을 때 봄순은 량부모를 다 잃은 심정이였다.

새 어머니를 맞아들이니 아버지는 그전과 다른 사람이 되여버렸던것이다.

여느때는 무뚝뚝하던 아버지가 딸의 눈을 피해가며 새 어머니와 웃음을 나누었고 밥상에 앉아서도 말없이 새 어머니에게 더 관심하였다.

봄순이가 밤일을 나갈 때마다 가슴앓이를 하던 모습도 사라졌고 오히려 계속 나가기를 바라는듯한 눈치였다.

결국 새 어머니를 맞으니 아버지도 이붓아버지가 돼버린것이다.

봄순이의 마음은 싸늘해졌다. 슬프기 그지없었다. 사랑과 정이 무참히 침해당하는것보다 더 억울하고 분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봄순에게는 이 분하고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길이 없었다. 마음속 생각을 터놓고 의지하던 큰어머니도 자기의 편이 아니라 아버지와 새 어머니편이였다. 만날 때마다 봄순의 심정은 아랑곳 않고 새 어머니를 잘 대해주라는 당부뿐이였다.

함께 일하는 정옥이는 정옥이대로 아버지가 좋은 엄마와 함께 살게 됐다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것이였다.

그러니 누구에게 자기 심정을 터놓을수 있으랴.

앵공한 성격 그대로 혼자서 말없이 묵새길수밖에 별도리 없었다.

그는 시험호동일이 바쁘다는 구실로 거의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봄순은 감기에 걸려 며칠동안 때식도 건느면서 호동에서 앓았다. 하면서도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정옥의 따뜻한 간호를 받고야 일어났다.

정옥에게서 딸이 앓았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시험호동에 찾아온것은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다음날이였다.

봄순이는 그때 두볼을 눈물로 적시며 아버지의 무정함과 자기의 설분을 토설하였다.

《아버지! 아버지맘속엔 새 엄마밖에 없지요? 나두… 친엄마두 다 없지요? 예?…》

딸의 항변에 마음이 약한 아버지는 당황해서 안절부절하였다.

그럴수록 봄순은 더 슬프게 울었다.

《가라요! 나한텐 아버지가 없어요! 그리구 집도 없어요!…》

다음날 차수정이도 찾아왔다. 그는 사정하듯 말했다.

《여기서 앓는걸 몰랐구나. 그저 바빠서 안들어오는줄 알았지. 집에 가자, 응? 어서.》

하지만 봄순은 그의 손을 차겁게 뿌리쳤다. 며칠동안 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찾아와 설복해도 눈만 내려깔고 랭기를 풍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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