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7
(1)
송영숙이 시험호동에 찾아온것은 리봄순이 나간 뒤였다.
첨가제생산실건설장에 나왔던 그는 기초파기공사가 한창인 현장을 돌아본 다음 시험호동에 들렸던것이다.
먹이조리실의 구석구석을 소독수로 청소하던 정옥은 기사장을 보자 일손을 멈추고 깍듯이 인사했다.
《봄순동문 어디 갔어요? 혼자 청소하는걸 보니…》
송영숙은 놀이장쪽을 기웃이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버지한테 갔습니다. 인츰 돌아오겠다면서…》
정옥은 호동을 비운 봄순에게 그 어떤 질책이 차려질가보아 은근히 마음쓰며 의자를 내놓았다.
송영숙은 알싸한 표백분냄새를 기분좋게 들이키며 의자를 당겨앉았다.
《점심식사를 가져다드리러 간 모양이지요?》
기사장의 친근한 물음에 서정옥은 얼른 《예.》하고 대답하였다.
송영숙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문득 차수정의 얼굴이 떠오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며칠전에 집에 온 그를 보고 친정어머니는 그의 처지가 하도 가엾어서 눈굽을 닦기까지 하였다.
《자주 다녀라. 경아 에민 바빠두 난 계속 집에 있으니까. 저녁에두 혼자 있기가 싫으면 여기 와서 나하구 같이 자자꾸나.》
문춘실은 차수정이 막내딸처럼 생각되는지 그가 올 때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무엇이든 꿍져보내려고 분주히 오락가락했다.
《어머니, 일없어요. 너무 걱정마세요. 그저 어머니만 건강하세요.》
수정도 매번 같은 말로 늙은이를 안심시키군 했다. 그러면서 문춘실을 도와 집짐승들도 돌봐주고 터밭김도 매주었다. 손기가 빠르고 동작이 가벼운 그는 무슨 일을 해도 몸을 푹푹 적시군 하였다. 그가 남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한가지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일을 잘하는것이였다.
(수정이도 빨리 가정을 복구해야 할텐데…)
자기 생각에 옴해있던 그는 《기사장동지!》하는 서정옥의 부름에 눈길을 들었다.
《왜 그래요?》
송영숙은 웃음어린 눈가에 관심을 담고 서정옥을 쳐다보았다.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정옥은 약간 점직해하였다.
《제 언제부터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그, 저…》
여느때없이 정색을 지으며 말꼭지를 떼였다가 꼬리를 가무리는 그를 보고 송영숙은 의아해졌다.
《왜요? 무슨 일이예요? 어서 말해요.》
《저… 다름이 아니라… 고마워서 그럽니다.》
《고맙다니요? 뭐가요?》
송영숙의 크고 맑은 눈에 의혹이 더 짙어갔다.
그러자 정옥의 말문은 더 굳어졌다.
남편의 첨가제연구를 돕기 위해 먼 출장길을 걸으며 새 설비들을 마련해주고 지금은 첨가제생산실까지 건설하도록 해주면서도 지금처럼 자주 찾아와 관심해주는 기사장이였다.
그는 언제든 조용한 기회에 감사한 마음을 터놓고 인사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색해질수록 말이 조리있게 엮어지지 않는것이 안타까왔다.
정옥은 얼굴을 붉히며 《새 설비랑 마련해주구 또 우리 일을 잘 도와주어서 그럽니다.》하고 겨우 한마디 하였다.
송영숙의 얼굴에 그제야 웃음이 피여났다. 그는 나무람이 담겨진 어조로 말했다.
《정옥동무도 참… 그건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이거던요.》
흔연히 하는 말에 정옥은 무랍없이 웃었다. 송영숙은 서정옥에게서 친동생과도 같은 따뜻한 진정을 느끼였다. 언제봐야 성실하고 일솜씨 알뜰한데다가 복스러운 얼굴처럼 마음씨가 고운 정옥이다.
송영숙은 그를 친근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호기심을 담고 물었다.
《참, 정옥동무 세대주는 어디서 일해요?》
《?!》
기사장의 물음에 정옥은 놀라운 눈길을 들었다. 문득 서운한 생각이 샘솟았다. 이미 자기에 대해 다 알고있는줄 알았던 그였다.
다음순간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불필요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그여서 모든것을 리해했다.
그는 방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서… 함께 일합니다.》
《우리 공장에서요? 그래 어느 직장이예요?》
송영숙은 더 큰 호기심을 안고 정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 사람이 이 착실하구 얼굴도 마음씨도 고운 녀인을 안해로 두었을가?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할거야. …)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서 흘러갔다.
이때 갑자르며 서있던 서정옥이 작업복 앞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수집음이 담긴 얼굴로 대답하였다.
《기술준비소… 여기서 함께 일하는 정의성…》
그는 마지막말을 웃음으로 대신하였다.
순간 송영숙은 흠칫 몸을 떨었다. 눈동자마저 딱 굳어졌다.
이윽해서야 그는 약간 말을 더듬으며 《그…래요?》하고 물었다.
그리고는 예전대로 친근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난 미처 몰랐어요, 정옥동무가 정기사동무 안해인줄…》
그는 진심으로 미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음은 정옥에게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난 기사장동지가 우리 세대주와 함께 닭공장에서 생활했구 또 처녀때부터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학위까지 받았다는걸 다 압니다.》
그는 기사장과 남편의 우정에 대하여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자기의 소박한 심정을 기쁜 마음으로 터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