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8
(3)
다음날부터 그는 낮과 밤이 따로없이 새로운 고려식물성성장촉진제를 만들기 위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였다.
처녀의 방 창문가에서는 새벽에도 불빛이 흘러나왔다.
드디여 3년간의 소조생활도 끝나가고있었다.
송영숙은 일군들과의 담화에서 공장에 그냥 남겠다는 결심을 그대로 터놓았다. 그의 결심은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그무렵 정의성의 연구조도 당분간 철수하여 연구소에 들어가게 되였다.
닭공장을 떠나기 전날 정의성은 송영숙을 만나 도소재지에 있는 집에 들렸다가 인츰 돌아오겠다고 말하였다.
차수정이 호수가마을의 고향으로 떠나는 날 송영숙이도 언니의 집으로 갔다.
아버지가 전사한 후에도 몇년동안 군부대마을에서 살던 어머니는 년로보장나이가 되여서야 그곳을 떠나 갓 결혼한 맏딸네 집으로 이사해 갔었다.
송영숙이 닭공장에 그냥 남겠다는 결심을 말하자 어머니와 언니는 이왕 가금업과 인연을 맺었으니 끝까지 거기에 충실하라고 고무해주었다.
《아버지도 말씀하시지 않았니? 우리 나라 가금업의 기둥감이 되라고. 난 네가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리라구 믿어.》
송영숙이 공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날 언니 송은숙은 이렇게 말했다.
휴가를 마치고 공장에 돌아온 송영숙은 수정이와 함께 생활하던 호실에 그냥 있으면서 현장기사로 일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밤대로 성장촉진제연구를 계속하였다.
그가 언니의 집에서 돌아온지 며칠 지나서 수정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오리공장 기능공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게 되였다는 소식이였다.
송영숙은 그밤으로 회답편지를 써서 보내였다.
그러나 정의성에게서는 통 무소식이였다.
(아마 이번 걸음에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하구 이곳에 보금자리를 펼 준비까지 하느라 늦어지겠지. …)
송영숙은 금시라도 정의성의 오토바이소리가 들려올것만 같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의성의 리지적인 얼굴과 넓은 이마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멋지게 손빗질하던 그의 모습을 울렁이는 마음을 안고 그려보았다. 그는 가끔 수정이 하던 말을 상기해보았다.
《큐리부부!》
송영숙은 오래지 않아 수정이와 함께 생활하던 이 합숙방이 정의성과 자기 두사람을 위한 연구실이 되고 생활의 보금자리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울렁이는 가슴앞에 두손을 모아잡았다.
…큐리부부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이 크지 않은 방을 살림방 겸 연구실로 꾸리고 밤새도록 연구도 하고 진지한 과학이야기도 나누게 되리라.
일생동안 가난과 싸우면서 과학에 충실하였던 큐리부부…
자기들이 찾아낸 첫 원소에 어머니조국의 이름을 달아준 그들… 손님들의 방문으로 연구시간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손님용의자를 들어낸 그들부부…
(음식만들기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두 물리학자는 가스곤로의 불꽃크기를 잘 계산해서 밥이 타거나 설지 않도록 하였다지?
그러나 난 우리 두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료리시간에 더 품을 넣을테야. 그리고 상점에도 함께 가서 신선한 남새랑 산나물도 사오고 또 그 동무가 좋아하는 물고기도 사오고…
높은 령마루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은 자기의 건강과 식생활에 절대로 무관심해서는 안된다구 생각해.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으니까. 그대신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할테야. … 우리의 가금업을 위해서, 내 나라의 가금업을 위해서. …)
송영숙은 이런 생각도 하였다.
(큐리부부는 결혼선물로 받은 두대의 자전거를 타고 모험많은 신혼려행을 했다지? 그러나 우린 오토바이를 타고 언니네 집에도 가고 동무들도 찾아갈테야. 호수가마을 수정이네 집에도 가고… 그리고 솔잎 푸른 백사장에서 또다시 섭죽도 끓일테야. 하지만 우린 곧 돌아와야 해. 어서빨리 돌아와서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연구도 해야 하니까.
우리의 힘과 우리의 지혜로 번영해갈 우리의 앞날은 얼마나 아름다울가? …)
그의 공상은 끝이 없었다.
(《마리! 당신과 함께 보낸 일생은 즐거웠소. …》 삐에르가 큐리부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지?
먼 후날 그 동무도 나의 손을 다정히 잡으며 이렇게 말할거야.
《동무와 함께 보낸 인생은 참으로 행복하였소. …》라고 말이야. 아! 그러면 나는…)
송영숙은 행복에 대한 소중한 꿈을 안고 정의성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시간과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던 《전자시계》가 영영 고장난게 아닐가? 혹시 앓지는 않는지, 아니면…)
처녀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현장기사로 일한지 몇달이 되던 어느날, 송영숙은 가금공학연구소에 출장을 가게 되였다. 그곳 연구소에 배치받은 동창생에게서 연구에 필요한 자료들과 시약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동무와 함께 실버들 춤추는 대동강기슭에서 산보도 하고 인민대학습당에서 도서열람도 하면서 평양구경까지 하고난 그는 며칠만에야 연구소를 떠났다.
동창생이 꾸려준 자료들과 시약을 배낭과 가방에 한가득 지고들고 역에 나온 송영숙의 마음은 즐거웠다.
그날 아침 그가 탄 급행렬차는 동해연선을 따라 정시로 내달렸다.
려행길에 오른 손님들은 얼굴곱고 명랑한 처녀와 길동무가 된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손님들이 낮잠을 청하고있을 때 옆자리에 앉은 나이지숙한 녀인이 송영숙에게 과일을 꺼내놓으며 말을 건늬였다.
《처년 닭공장에서 일한다지? 그럼 거기서 연구사업을 하던 정의성이라는 청년을 알겠구만?》
진하게 화장을 한 도시풍의 녀인은 크지 않은 목소리로 넌지시 물었다. 낯모를 녀인에게서 뜻밖에 정의성의 이름을 들은 송영숙은 일순 놀라며 굳어졌다.
다음순간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들으니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웃음어린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