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9

(1)

 

서정옥은 미용을 하려고 방송화를 찾아갔다.

방송화는 미용실에 들어온 시누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한시간만에 정옥을 완전히 다른 녀자로 만들어놓았다.

피곤에 몰려 반쯤 졸고있던 정옥은 《자! 거울을 좀 봐요.》하는 방송화의 말을 듣고 눈길을 들었다.

그는 거울에 비쳐진 자기의 모습을 황홀해서 들여다보았다.

곁에 선 방송화도 자기의 멋진 창조물을 자랑스럽게 감상하고있었다.

《얼마나 고와요? 이제부턴 자주 오라요. 누인 멋부릴줄 모르는게 흠이라니까. 보란듯이 곱게 차리구 다녀야 해요.》

그는 반짝반짝 머리기름을 덧발라주면서 새물거렸다.

《나야 기껏 오리나 키우는데 치장해선 뭘해요? 그저 남보기 부끄럽지 않을만큼이면 되지요 뭐. 그런데…》

정옥은 쑥스럽게 웃으며 다시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스쳐갔다. 현장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멋을 부린것같아 은근히 근심스러웠던것이다. 곱슬곱슬하고 반짝거리는 머리가 되려 한숨까지 자아냈다.

《무슨 소릴 하나?》

방송화가 크지 않은 눈을 빨았다.

《녀잔 우선 곱구부터 봐야 해요. 그래야 남편들도 헛눈팔지 않지?》

그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시누이의 어깨를 탁 쳤다.

《참! 기사장이 일철이 아버지일에 발벗구 나선다지? 이틀이 멀다하게 찾아다니면서… 맞아?》

원래 남의 소리하기 좋아하는 방송화인데 어째서인지 기사장에 대해서는 특별하였다. 언젠가는 남편을 소갈데 말갈데 다 내몬다고 지지리도 야비하게 험담하더니 오늘은 또 무슨 심사에 기사장에게로 화제를 돌리는걸가?

《이틀이야 뭘… 필요할 때면 들리군 하지요.》

서정옥은 형님의 입방아에 기사장의 인격이 조금이라도 상할가봐 한몸으로 막아서고싶은 심정이였다.

손벽이 마주쳐지지 않는것을 민망스러워하며 방송화는 머리를 까딱까딱하였다. 하더니 인츰 해죽거리며 목을 갸웃갸웃하였다.

《누이! 그러다가 기사장한테 남편을 뺏기지 않겠어?》

형님의 말에 정옥은 그만 호호 웃고말았다. 너무도 터무니없고 현실성없는 말이여서 오히려 재미나게 들렸다.

《뭐라나요? 인간생활인데요 뭐…》

그는 꾸밈없이 웃으며 흔연히 대답하였다. 년장자처럼 아량있고 너그럽게 말하는 정옥을 보고 방송화는 눈을 할기죽거렸다.

《누인 그저 말끝마다 인간생활타령이야. … 하지만 벙어리두 남편을 뺏기니 말을 하더래.》

《그럴수도 있지요 뭐. 역시 인간생활이 아니나요?》

정옥은 다시금 곱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앉아있어야 기사장에 대한 험담만 들을것같았다. 무엇때문에 그다지도 기사장을 시비하는지 모를 일이였다.

미용실을 나서던 정옥은 온통 가시투성이인 형님의 말을 되새겨보다가 또다시 웃고말았다.

그는 남편을 잘 알고있었다. 남편처럼 사업과 연구밖에 모르는 곧은 목이 또 어디 있으랴. 지금은 꿈속에서도 첨가제연구를 하고있는 남편이였다.

하지만 기사장에 대한 남편의 태도에 대해서는 야속하고 민망스러운 생각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지난날의 우정은 둘째치고라도 사심없이 첨가제연구를 도와주는것만 생각해도 좀더 친절하게 대해줄수 있겠는데…

그런면에서 오빠는 참으로 본받을만 했다. 상급에 대한 태도에서 오빠는 얼마나 공손하고 정중한가. 그런데…

그날 저녁 남편과 나란히 퇴근길에 오른 정옥은 이렇게 말했다.

《여보! 당신은 왜 기사장동지에게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 안하셔요? 당신은 그래 기사장동지가 고맙지 않나요?》

남편과 나란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정옥은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정의성은 되려 랭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고마우면 어쩌라는거요? 매일 엎드려 절을 하라오?》

《당신은 언제봐야 수정보급원에겐 친절하지 않나요? 이따금 만나서두 따뜻이 인사를 나누구요. 그런데…》

정옥은 지금껏 품고있던 불만을 터놓았다.

문득 큰 공장의 기사장인 녀성앞에 서고보니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지 않을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다음순간 정옥은 머리를 저었다. 남편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출세욕도 찾아볼수 없었고 오직 탐구심과 학구열만이 있었다.

《여보! 부탁해요. 래일이라도 기사장동지가 오면 제발 따뜻이 대해줘요. 예? 내 보기엔 기사장만큼 좋은 일군이 없어뵈는데… 당신이 그러니 내가 되려 미안해요. 그러니 제발…》

정옥은 거의 애원이 담긴 어조로 당부했다.

안해의 그 순진한 눈길앞에서 정의성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알겠소, 알겠다니까.》

남편이 헌헌하게 접수하는걸 보고 정옥은 복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피워올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즐거운 기분으로 저녁준비를 서둘렀다.

웃방에 올라가 실험자료를 읽고있던 정의성은 부엌에서 들려오는 안해의 코노래소리를 듣고 눈길을 들었다.

문득 그의 생각은 송영숙에게로 이어져갔다. 자기자신과 송영숙의 가슴에 쓰라린 상처를 남기였던 그 시절로. …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럴 땐 어쩌면 좋은가. …)

그때 새로운 연구과제를 받고 고향도시에 올라온 정의성은 괴로움에 모대기며 자기자신에게 안타깝게 물었다. 그는 연구소일군들을 찾아다니면서 닭공장에 다시 내려가 연구사업을 계속하겠다고 몇번이고 절절하게 호소하였다. 그의 호소는 오히려 연구소일군들을 더 감동시켰을뿐이였다. 일군들의 눈가에 담겨졌던 믿음과 기대…

《동문 역시 생각하는 품이 다르구만. 다른 동무들은 모두 중앙의 연구소나 보다 높은 곳을 지망하는데 동무만은 현실에 다시 내려가겠다니 말이요. 동문 앞으로 훌륭한 연구사가 될거요. 우리 함께 손잡구 일해보기요. …》

정의성은 그만 손맥이 풀어져 더 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하는수없이 당분간이라도 연구소에 남아있기로 결심하였다. 닭공장으로 내려가는 문제는 얼마쯤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상정시키려는것이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결코 순편치 않았다.

부모가 보아둔 처녀의 문제는 그의 괴로움을 더욱더 가증시켜주었던것이다. 가풍좋은 집과 사돈을 맺으면 여러모로 좋을거라면서 결혼을 재촉하는 부모형제들과 총각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며칠에 한번씩 찾아오기도 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처녀의 어머니…

정의성은 도무지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없었다.

어느날 저녁 정의성은 어머니앞에 송영숙이와 함께 닭공장에서 일하면서 희망대로 연구사업을 하려고 한다는것을 털어놓았다.

아들의 말을 들은 어머니의 눈은 화등잔만큼 커졌다.

《여길 떠나서 아예 닭공장으로 가겠다구? 도시에서 농촌으로? 철이 없구나! … 그리구 처녀가 총각에게 시집오게 돼있지 총각이 처녀한테 간다는건 또 뭐냐?》

일생 회계원으로 일해온 그의 어머니는 생활에서도 타산이 밝았고 모든것이 수자처럼 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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