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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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정일동지께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고 리오송정치위원은 무엇을 하고있던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리오송정치위원은 지금 ㅎ제강소에 나가있을것입니다.》

《ㅎ제강소에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척 놀라시였다. 어제밤에 거기를 떠나셨는데 리오송이 지금 거기에 나가있다니 한걸음이 어긋난 모양이다.

《거기엔 무슨 일로 갔습니까?》

로일수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자초지종을 말씀올리였다.

석도진지공사장의 한 군관이 모자라는 소철레루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강소에 갔다가 회관보수용으로 건사해놓았던 ㄷ형강을 가져오게 된 사연이며 전마선으로 그 강재를 나르다가 바다속에 수장된 사건…

그곳 정치지도원이 군단에서 내려보낸 잠수성원들과 함께 ㄷ형강을 모두 건져가지고 제강소에 사죄하러 간 이야기…

《그러니 리오송동지가 그 ㄷ형강을 가지고 제강소에 함께 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연과 필연이 겹쳐드는것같은 예감에 가슴이 쩌릿해오시였다. 사실 ㅎ제강소 일군들에게 회관을 새로 보수할데 대한 의견은 주시였지만 아무래도 그곳 로동자들만 가지고는 로력과 시간이 부족할것같아 21군단에서 한번 원민작전을 통이 크게 벌려볼수 없겠는지 토론해보자고 하였는데 정치위원이 제강소에 나가있다니 때마침 일이 제대로 흘러가는셈이다. 빌려왔던것을 도로 가져다주는것보다 이왕 걸음을 한김에 제강소 로동자들이 깜짝 놀라게 회관건설을 맡아서 해준다면 어버이수령님의 교시관철에 떨쳐나선 로동자들도 크게 고무하게 되고 주둔지역 인민들과의 뉴대도 한층 깊어질것이다. 군민관계에서 인민군대는 인민의 재산을 다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방어전을 할것이 아니라 인민들을 적극 도와주기 위한 공격전을 벌려야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로일수부국장에게 그대로 이야기하시였다.

《어떻습니까? 총정치국에서 이렇게 방향을 세우고 21군단에 내려가 조직정치사업을 한번 본때있게 해보지 않겠습니까?》

《알았습니다!》

로일수는 가슴을 쭉 펴며 패기있게 대답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러면 그 일은 그렇게 하고 이왕 찾아온김에 생각되는것을 몇가지 더 이야기하겠다고 하시며 요즘 인민군협주단은 무엇을 하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로일수는 약간 당황해졌다. 원래 인민군협주단은 안영환총정치국장이 직접 맡아보던 단위여서 큰 관심을 두지 못했다. 얼마전 안영환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부터 한두번 나가보기 시작했는데 아직은 자신있게 대답할만한 파악이 없었다.

《저… 구체적인 파악은 아직 못했지만 제 보기에는 창작가들속에 낡은 사업작풍도 남아있고… 협주단이 좀 좌왕우왕하는것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처럼 나가다가는 사회예술단체에 뒤떨어진다고 하면서 자기들도 큰 가극작품같은것을 하나 맡아 형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협주단의 지금 능력으로는 시기상조라고도 하고… 제가 원체 예술을 잘 모르다나니 이 정도로밖에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말끝을 가무리며 고개를 숙이는 로일수를 바라보시면서 예술을 모른다고 나앉으면 협주단에 대한 지도사업을 포기하자는것인가고 가볍게 책망하시였다.

《물론 예술부문을 지도하자면 일군들이 문화적소양도 높이고 그 부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갖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래단위에 대한 지도사업에서 기본은 실무적지도, 기술적지도가 아니라 정치적지도, 정책적지도입니다. 이번에 적들이 대형정찰기격추사건을 걸고 전연에서 긴장을 조성하고있을 때 인민군협주단이 소편대를 무어가지고 나가서 전사들을 고무하고 들어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한곡의 힘있는 노래는 천만자루의 총검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회관에 들어앉아 사회예술단체가 어떻소, 가극이 어떻소 하고 흥타령만 부른것은 협주단 창작가들과 배우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기본은 총정치국이 정책적지도를 잘하지 못했기때문입니다. 내 말이 너무 과합니까?》

로일수는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면서 황망히 말씀드리였다.

《아닙니다.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부터가 예술을 잘 모른다는데로부터 예술인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려고만 했지 당정책관철에 예술단체를 적극적으로 인입할 혁명적인 자세에 서지 못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결함의 원인을 알았으면 됐다고 하시며 협주단에는 아직도 배우들을 관료주의적으로 다루어야 예술을 창조할수 있다는 낡은 견해를 가진 창작가들도 일부 있지만 대체로는 다 경향이 좋고 설명순동무와 같이 젊고 재능있는 동무들도 있으니 그들에 대한 교양사업과 지도를 잘하면 훌륭한 예술단체로 꾸릴수 있다고 하시였다.

《특히 인민군협주단은 해방후 처음으로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합창으로 형상하여 인민들을 불러일으켰고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사선을 헤치고 한사람도 빠짐없이 최고사령부까지 찾아온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포연에 그슬리고 총탄에 찢긴 군복을 입고 찾아온 창작가들과 배우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너무도 기쁘고 대견하시여 조선의 예술은 살아있다.고 격정에 넘쳐 말씀하시였습니다. 전후 어려웠던 시기에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와 같은 수령옹위의 송가를 창작하여 반당종파분자들의 죽지를 분지른것도 인민군협주단입니다. 협주단은 응당 수령님을 따르고 수령님 한분만을 옹위해온 이런 자랑찬 전통을 줄기차게 이어나가야 합니다.》

로일수는 자기가 인민군협주단에 대한 지도사업에서 주선을 놓치고있었다는것을 통절히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그럴수록 이처럼 영명하고 위대하신분께 군예술집단의 장래를 의탁하고싶은 마음이 부쩍 솟구쳤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로일수의 그러한 심정을 환히 들여다보고계시였다. 알아맞히셨다기보다 수령님께서 몸소 조직하고 키워오신 인민군협주단을 당의 예술단체로 더 훌륭하게 빛내여야 할 사명을 느끼고계시였다.

《물론 우리는 앞으로 인민군협주단에서 큼직한 혁명가극을 하나 만들어볼 구상도 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모든 창작가, 예술인들이 군복입은 예술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창조기풍을 세우는것이 중요합니다. 대오가 든든히 준비되여야 언제 어떤 명령을 주어도 단숨에 수행할수 있는것입니다. 나도 이제부터는 인민군협주단에 대한 관심을 높이자고 합니다. 우선 래일부터 우리 당중앙위원회 일군 한명을 협주단에 내보내겠습니다.》

로일수는 환희에 가슴이 벅차오르는듯 《고맙습니다!》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올리고나서 방에 들어설 때 미처 드리지 못했던 거수경례를 힘있게 드리였다. 로일수는 곧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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