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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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먹성인자도 찾아야 하고 미량원소들과 비타민들도 천연제나 화합물로 바꾸고 보충하자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중요미량원소의 하나인 망간(Mn)도 지금은 수입제인 류산망간이나 과망간산칼리움으로 대용하지 않는가.
공장첨가제의 성분들중에도 일부 비타민과 미량원소들은 수입제나 화학물질로 대용하고있는데 그것을 모두 천연물과 원료원천이 풍부하고 국산화된 화합물로 바꾸기 위한 연구를 중단없이 내밀어야 하는것이다.
(내 기어이… 기어이…)
정의성은 은근히 주먹을 틀어쥐였다.
다음날 저녁 정의성은 안해와 나란히 시험호동을 나섰다.
제염소에 나갈 준비도 할겸 처남의 병문안을 하려는것이였다.
서정관이 감기로 앓는다는 말을 들었던것이다. 며칠째 출근도 못하는걸 보니 심하게 앓는 모양이였다.
래일 수송조를 책임지고 떠나게 된 그는 제염소로 가기 전에 처남에게 인사도 하고 병문안도 하는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서정관의 집에는 마침 량주가 있었다.
아래목에 자리를 펴고 누웠던 서정관은 동생내외를 반기며 일어나앉았다.
정옥은 오빠에게 병세가 어떤가고 근심스레 물었다.
서정관은 이런저런 약을 썼더니 많이 나아졌다고 시들하게 대답하였다.
《이게 다 정신적타격이지 뭐갔소?》
방송화가 얼른 한마디 께끼였다.
정신적타격이라는 어마어마한 표현에 정옥의 눈은 커졌다.
정의성의 눈빛도 긴장해졌다.
《?!》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옥은 근심과 불안이 엇갈린 목소리로 물었다.
혀끝으로 청중을 낚아낸 방송화는 바로 이때라싶게 말주머니끈을 풀었다.
《생각 좀 해보라요. 사람은 우선 마음이 안착돼야 무슨 일이든 잘할게 아니요? 헌데 새 기사장이 온 담부터 저 령감은 쐐기가 됐시요. 공장에 구멍난 곳마다 찾아다니면서 메꾸는 쐐기 말이요.》
그제야 정의성은 빠른 손빗질로 앞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또 험담이 시작됐구나. …)
긴장하게 솟구었던 정옥의 어깨도 툭 떨어졌다.
그러나 방송화는 승이 나서 험담주머니를 털었다.
《글쎄 작년엔 첨가제생산실건설을 통채로 떠맡기구 몇달 때려몰더니 며칠전엔 소금밭이끼 수송조직을 하라구 했다잖아요. 이번엔 염전으로 내몰자는거지요. 내 그래 령감을 집안에 끌어앉혔시요.》
그는 장한 일을 한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순간 정의성의 가슴속에서는 주먹같은것이 불끈 솟구쳤다.
(결국 소금밭이끼수송에서 빠지려구 환자역을 놀구있구나. …)
그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차고 일어나고싶은것을 겨우 참았다.
그의 감정을 재빨리 읽어본 서정관은 벌컥 성을 내였다.
《그만하오! 아무렴 내가 당신풍에 놀아날 사람이요?》
서정관은 세대주의 권한으로 안해의 입에 빗장을 질러놓았다.
하지만 부부일심동체라고 안해의 말은 자기의 마음을 대변한것이였다. 사실 방금전에도 서정관은 안해앞에서 기사장에 대한 불만을 하늘만큼 터놓았었다.
《그러지 않아도 내 매부를 만나 얘길 좀 하려던 참이였소.》
서정관은 올방자를 틀며 어엿한 자세로 말을 건늬였다.
《그래 매부생각엔 공장첨가제가 수입첨가제보다 꽤 나을것같소?》
그의 태도와 눈빛이 여느때없이 진지하고 심중한것을 보고 몸가짐을 바로하였던 정의성은 긴숨을 내그었다.
(또 첨가제연구에 찬물을 끼얹자는 심사로군. …)
열물이라도 삼킨듯 입안이 쓰거워졌다.
그러나 열백번이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배심이 생겼다.
《공장첨가제를 어떻게 수입첨가제에 비교하겠습니까? 아직 채 완성되지 않았지만 수입첨가제보다 훨씬 훌륭할겁니다. 우리의것이 아닙니까? 두구보십시오.》
그는 언제나와 같이 자기의것에 대한 긍지와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서정관은 웃몸을 제끼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속이 빈 웃음이였다.
《하하…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제 잘난 멋에 산다구 하는거지. 누가 뭐라든… 참! 매부도 날 수입병환자 취급하려들건 아니요?》
(도적 제발 저리다더니 어지간히 수입병환자취급을 당한 모양이군. …)
정의성은 속으로 코웃음쳤다.
이윽고 서정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매부는 공장경영활동에 대해선 잘 모르고있소. 사실 우리 공장에 흔한 부산물로 첨가제를 사다쓰는건 가장 실리에 맞는 일이요. 자기 단위 특성과 실정에 맞게 원료와 자재를 효과적으로 리용하는것두 기업관리나 경영활동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겠소?
그런데 매부는 제 잘난 멋에 시간과 품을 랑비하는것같구만.
거기에 기사장은 또 기사장대루 건설이니 수송이니 하구 공장사람들을 들볶아대지. … 요즘엔 자기와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수입병에 걸렸다구 비난하더구만. 음, 음…》
서정관은 기사장에 대한 불만을 쓴웃음으로 함축시켰다.
기사장을 비난하는 소리에 서정옥은 자기
(오빠도 형님도 기사장을 헐뜯지 못해 그냥 몸살이를 하는구나. 어쩌면…)
인츰 정의성이 되물었다.
《그러니 형님은 결국 첨가제연구를 그만두라는겁니까?》
그의 사색적인 눈빛과 크지 않은 목소리에서는 도전심리가 확 풍겨나왔다.
약삭바른 서정관은 곧 안면근육을 풀었다.
《그거야 기사장이나 매부결심에 달린거고… 난 그저 내 생각을 말했을뿐이요. 허지만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택하는것두 현자가 아니겠소? 더우기 당신은 당신이라치구 저 앨 좀 보오.》
서정관은 아래목에 앉은 녀동생을 가리켰다.
《물론 남편을 도와서 함께 일하는건 기특한 일이지. 하지만 이제는 처녀시절두 아닌데 1년 열두달 시험호동에 매여있으니 집안꼴이 뭐가 되오?》
오빠의 말에 정옥은 얼굴을 활딱 붉혔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남편의 편에 서고싶었다. 그는 쎄타앞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집안의 막냉이로 자라던 어릴적처럼 어리광스럽게 말했다.
《난 일없어요. 일철이 아버지 일만 잘된다면야…》
그는 뒤말을 잇지 못하고 대신 방그스름히 웃었다.
서정관은 그제야 송곳이를 다 드러내며 껄껄 웃었다.
《그렇다면야 나두 할말이 없지. 좋아! 좋아! …》
이때 문기척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