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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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숙은 그의 발치에 다가앉아 구두앞코숭이를 꼭꼭 눌러보며 발이 편안한가고 물었다.

처녀는 그저 머리만 끄덕거렸다.

《그럼 어디 한번 걸어봐요. 어서요.》

송영숙은 걸음마를 떼여주는 어머니처럼 처녀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봄순은 수집게 웃으며 못박힌듯 서있기만 했다.

《이번 노래모임때 보니 처녀들이 모두 이런 구두를 신었더군요. 봄순이도 이제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 구두를 신고다니라요.》

송영숙은 자기의 손에 끌려 사뿐히 걸음을 옮기는 처녀에게 친근한 어조로 말하였다.

봄순은 고개를 다소곳한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사실 그는 다른 처녀들이 신고다니는 뒤축이 뾰족하고 굽높은 이런 구두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말을 할수 없어서 부러운대로 참고있었다. 그런데…

잠시후 기사장은 새 구두를 곽에 넣어서 봄순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아버지의 건강과 가정생활에 대해서 차근히 물었다.

《봄순동문 참 좋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군요.

수의사동진 그 누구보다 공장을 위해 애쓰시는 훌륭한분이예요. 지금처럼 어려운것이 많은 속에서도 털단백질먹이를 연구하는것만 보아도 얼마나 돋보이나요? 난 수의사동지가 앓을가봐 항상 근심이예요. 건강하고 근심걱정이 없어야 연구사업에서 성공할수 있으니까요.

난 봄순동무가 아버지를 잘 모신다는 말을 들었어요. 자기 맡은 일도 잘하고 아버지도 잘 모시고… 얼마나 좋아요?》

송영숙의 부드러운 어조에는 진정이 넘치고있었다.

그는 인츰 얼굴에 밝은 웃음을 담았다.

《참! 봄순동문 종금직장 진철동무와 친한 사이라지요? … 부끄러워하긴… 일없어요. … 내 보기에는 그 동무도 무척 성근하고 진실해보여요.

앞으로 우리 공장의 기둥감이 될거라구 생각해요.

봄순동무도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 난 그런 좋은 청년과 가까이하는 봄순동무도 괜찮은 처녀라구 봐요.》

송영숙은 처녀의 진심을 들여다본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처녀의 얼굴은 아예 홍당무우가 되였다.

송영숙은 아버지와 수정에 대한 봄순의 생각을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남달리 수집음을 잘 타는 처녀여서 에둘러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후 그는 친동생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때나 찾아와요. 날 친언니처럼 생각하구 말이예요. 그리구 우리 함께 아버지일을 잘 도와드리자요.》

이윽고 그는 문밖에 나와 처녀를 바래주었다.

성미앵공한 처녀는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 못하고 방에서 나왔다.

봄순에게는 기사장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다.

(세상에 우리 기사장동지처럼 살뜰하구 인정많은 일군도 있을가? … 그리구 내 마음이랑 진철동무에 대해서도 어쩌면 그렇게 잘 아실가? …)

처녀는 마음속으로 몇번이고 물었다.

봄순은 기사장이 가까이에 있으면 항상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꼈다.

그는 앞으로 일도 더 잘하고 아버지도 더 잘 모시리라 마음다졌다.

또한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사장의 사랑에 꼭 보답하리라 마음다지며 집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한시바삐 아버지에게 새 구두를 보여드리고싶었다.

(이 구두를 보시면 아버지도 기뻐하실거야. …)

새 구두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가공직장앞에서 정문으로 나오는 차수정을 띄여보았다. 도서보급때문에 그곳에 왔댔는지 그는 두툼한 책 몇권을 안고있었다.

그런데 봄순이와 눈이 마주치자 쌀쌀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쳤다.

그 순간부터 처녀의 걸음은 떠졌다. 새 구두도 점점 무거워졌다.

문득 새 구두를 안겨주면서 기사장이 하던 말 《우리 함께 아버지일을 잘 도와드리자요.》가 《우리 함께 아버지가 보급원과 다시 가정을 이루도록 잘 도와드리자요.》라는 말로 해석되였다.

(기사장동지도 우리 아버지와 보급원엄마가 함께 살기를 바라고있어. 그래서 나를 더 따뜻이 대해주는것이고… 그런데 보급원엄마는…)

봄순에게는 수정의 싸늘한 눈빛이 두려웠다. 그 눈빛은 자기의 탈가가 전적으로 봄순이때문이라고 웨치는듯 싶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방인화큰어머니의 부탁대로 아버지에게 보급원엄마를 다시 데려오자고 말하기도 서슴어졌다. 지금껏 자기가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모시고 살겠다고 하더니 진철이라는 남동무가 나서니 그제서야 새 엄마를 데려오라고 하는것이 너무도 자기중심적이고 리기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라도 보급원이 집에 들어온다면 그전과 달리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뜻이 대해줄수는 있어도 자기가 나서서 새 엄마를 데려오라고 아버지를 추동할 용기는 없었다.

(그러니 난 어쩌면 좋을가? …)

봄순은 점점 무거워지는 구두를 안고 집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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