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 회)

제 3 장

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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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우들이 마이크선을 늘이고 공연준비를 하는 사이 군인들은 관람석으로 놓은 동발목들에 앉을념을 하지 않고 계속 무대쪽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그렇게 빈틈없는 《쁠류스안경》도 한가지 놓친것이 있어서 협주단일군의 부탁을 받은 몇몇 군인들이 가설무대뒤에 가림막을 설치하느라고 한참동안이나 뚝딱거린 후에야 공연이 시작되였다.

은은한 바이올린선률이 울리였다.

지난해에 새로 나온 《초소에 수령님 오셨네》의 선률이였다.

그 음악을 타고 군복차림의 아름다운 녀성배우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 한복판으로 걸어나왔다.

《전투원동지들!》

부드럽고도 은근한 부름이 고성기를 통해 섬을 흔들자 수군거리던 장내는 일시에 숨이 죽어버렸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원수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어 바람세찬 외진섬에 배낭을 풀고 한겨울의 추위와 싸우고 암반과 싸우며 따뜻한 봄을 맞이한 전투원동지들!》

무대를 바라보던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푹푹 꺾는다. 자기들이 겪어온것이 시련이라거나 고난이라거나 어떤 힘겨운 극복과정이였다는것을 특별히 생각해보지 못한 군인들이 녀성배우의 한마디 말에서 그 의미가 새삼스럽게 안겨와 눈물이 쿡 솟는것이였다.

《저는 우리들의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위대한 당중앙의 의도를 동지들에게 전달하자고 합니다. 당중앙에서는 동지들이 어버이수령님의 주체적인 군사전략전술사상과 우리 당의 전국요새화방침을 관철하는데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전선을 맡고있으며 동지들의 전투성과에 우리 조국의 안전과 인민의 안녕이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동지들을 알고계시고 동지들을 지켜보고계시며 동지들을 믿고계신다는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지들! 이 얼마나 크나큰 영광입니까!》

흐느낌소리가 올렸다. 와 하고 울음소리같은것이 터졌다. 그 울음소리속에서 안경이 번뜩거리는 정치지도원의 얼굴이 솟구쳐올랐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원수님 만세!》

《만세!-  만세-에!》

병사들의 만세소리는 이때껏 석도에 울린 발파소리를 모두 합친것보다 더 크게, 더 세차게 섬을 흔들었다.

소개에 이어 시작된 전주선률을 타고 무대에 나왔던 배우들이 병사들의 목메인 함성때문에 자기 계기에 노래를 떼지 못하고 박수로 그들을 격려하였다. 그러나 공연은 대성황리에 진행되였다.

기관선에서 내린 배우들은 몇명 되지 않는것같았는데 공연종목은 무척 많기도 하고 다양하였다. 독창과 혼성2중창, 기타중주와 하모니카합주도 있고 무용도 있었다. 《명랑한 취사원》이라는 요술이 있는가 하면 일제놈들의 패망상을 풍자한 재담, 《훈련장의 쉴참은 좋다》는 북제창이야기도 있었다. 배우들이 북통을 두드리며 어깨를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니 최진성은 설아와 함께 소잔령을 넘던 일이 생각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설아는 왜 보이지 않는가. 그 연출가인지 무엇인지 하는 사람이 이번에도 또 빼놓은것일가.

어디선가 폭소가 터졌다. 화술배우들이 또 무슨 재담을 펼쳐놓았는지 병사들은 눈물을 질끔질끔 흘리면서 배를 그러쥔다.

한시간남짓이 진행된 공연은 고조에 올라 마지막합창에 이르렀다.

 

    청춘도 생명도 모두다 바쳐

    혁명에 충직한 승리의 대오

    위대한 수령님이 령도하시는

    당중앙을 목숨으로 지켜싸운다

 

흥분한 병사들이 무대우에 뛰여올라 배우들과 한데 어우러졌다.

배우들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마이크는 병사들쪽에 밀어주었다.

군인들의 우렁찬 노래소리가 석도의 하늘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나가자 조선인민군 일당백용맹을 떨치며

    제국주의침략자 모조리 때려부시자

    …   

 

공연을 마치고 무대철수작업이 끝난 다음 병사들은 저저마다 땀에 흠뻑 젖은 배우들을 붙잡고 천막식당으로 이끌었다. 협주단배우들은 도중식사를 싸온것이 있다고 만류했으나 최진성의 눈짓을 받은 군인들은 막무가내로 소편대성원들을 밀고들어갔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있던 정치지도원이 나이가 지숙해보이는 한 군관을 겨누고 슬금슬금 다가갔다.

《수고하셨습니다. 공연이 정말 훌륭합니다. 아까 마지막으로 부른 합창이 새로 형상한 군가입니까?》

《예. 이번에 당의 지도를 받아 새로 완성한 군가입니다.》

정치지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수첩을 내보이였다.

《곡이 얼마나 순편하고 힘이 있는지 2절부터는 모두 함께 따라부르지 않습니까.》

나이지숙한 군관은 푸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니 인사를 한번 더 해야겠군요. 실은 제가 이 노래의 작곡가인데이번 순회공연기간에 병사들의 반영을 들어보고싶어서 나왔습니다. 당에서는 군인들이 새 군가를 직접 불러보게 하고 의견을 받아서 더 완성하라고 하였습니다.》

정치지도원은 가사를 적은 수첩을 들여다보며 몇구절을 불러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보다 더 훌륭할수는 없을것같은데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노래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두사람은 순간에 구면지기처럼 되여 팔을 끼고 천막식당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정치지도원이 식당앞에 멈춰서서 물었다.

《저… 한가지 물을게 있는데 이번 공연에 정설아동무는 왜 오지 않았습니까?

작곡가의 온몸이 뚝 굳어졌다.

약간 세모진데다 꼬리쪽이 아래로 처질사한 작곡가의 사색적인 두눈이 가늘게 쪼프러지더니 정치지도원의 군복깃에 달린 중위령장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혹시 최진성동무가 아니요?》

정치지도원은 고개를 가로젓고나서 우리 중대장을 어떻게 아는가고 의아스럽게 물었다.

《피차일반이요. 동무가 우리 설아동무를 아는것처럼, 허허…》

정치지도원이 들어오지 않아서 찾으러 나오던 최진성은 천막밖에서 울리는 설아의 이름을 듣고 흠칫 놀라 출입구뒤에 몸을 감추었다.

한겹의 얇은 천막을 뚫고 정치지도원과 누군가가 나누는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입술이 탈탈 말라들었다.

《설아동무가협주단에서 나가다니?! 어디로 갔습니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재능있는 동무였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렸지. 돌아가는 말에는 그의 삼촌이 그렇게 요구했다고도 하고 본인에게 무슨 사정이 있어서 예술을 그만두었다고도 하는데 모를 일이거던. 지금 한창 협주단이 흥할 때인데 전도유망한 동무가 그런 결심을 했다는게… 그런데 진성동무는 그사이 왜 편지를 하지 않았다오?》

《그건 저… 그럴만한 사연이 좀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젠 설아동무를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찾는다고 해도 소용이 있을것같지 않구만. 그 동무가 떠나기 전에 나에게 진성동무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만약 협주단으로 그의 편지가 오면 자기를 더 찾지 말아달라는 회답을 써달라고 부탁하더군. 처녀총각들의 일을 내 알바 아니지만 대체 둘사이는 어떻게 된 감투끈이요?》

최진성은 딛고선 땅이 흐물거리고 눈앞에서 꺼먼 연기가 피여오르는것같았다.

어디로? 왜 갔는가? 무엇때문에 자기를 찾지 말라고 하는가?

샘처럼 솟구쳐오르는 하많은 생각들이 최진성의 머리를 휘휘 잡아돌리였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생각을 굴리고굴렸어도 진성은 설아가 그렇게 돌발적으로 사라져버린 원인을 끝내 찾아낼수 없었으며 그렇게 종적을 감춘 설아가 지금으로부터 며칠전에 김정일동지의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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