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6

(1)

 

송영숙은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지친 걸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돼지물을 주려고 마당에 나왔던 문춘실은 딸을 보자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며칠전부터 정월대보름날준비를 해놓고도 딸에게 아침밥을 먹이지 못해 속이 알알했던 그였다.

그런데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던 딸이 들었던 수저를 내려놓는 바람에 웬일인가싶어 눈을 흡떴다.

송영숙은 그러는 어머니를 건너다보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

《어머니! 이걸 모두 꾸려주세요.》

《?!》

《시험호동 관리공들과 함께 먹고싶어서 그래요. 그들은 지금 점심먹을 생각도 못하구있어요.》

딸이 이쯤하면 물러서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문춘실은 서운한 생각을 누르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얼마후 송영숙은 어머니가 꾸려주는 점심밥을 싸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가 시험호동에 들어서니 정옥이와 봄순은 놀이장앞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직후이고 몇마리 남지 않은 오리들을 한데 모아놓은 호동안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점심식사도 추위도 다 잊고 앉아있던 그들은 송영숙을 보자 눈물이 글썽해져서 일어났다.

《점심식사를 했어요? … 못했지요?》

송영숙은 보통날처럼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관리공들은 둘이 다 말을 못하고 서있기만 하였다.

《내 그럴줄 알았어요. 자! 나하구 같이 들어가서 점심을 먹자요.》

송영숙은 주인인듯 앞서서 휴계실로 들어갔다.

그는 정옥이와 봄순의 앞에 보자기를 펴놓았다.

그리고 수저를 쥐여주며 친근하게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정월대보름날이예요.

자! 우리 집에서 지은 오곡밥을 맛보세요. 이 곰취와 병풍나물잎으로 복쌈도 싸구요. 자! 어서요! … 나도 배고프군요. 어서 많이 먹자요.》

송영숙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리고 정옥이와 봄순이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말을 많이 하였다. 그는 절임하였다가 기름에 튀긴 병풍잎으로 복쌈을 싸서 한개씩 쥐여주고 자기도 먹었다.

서정옥은 갑자기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더니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비육호동에서 일할 때에도 병약한 오리나 칼시움부족으로 다리를 저는 오리를 보면 가슴이 아파 보약도 지어먹이고 다 키운 오리들을 판매에 넘길 때는 그동안 정들여 키운 오리들이 가공장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으로 우울해지군 하던 정옥이였다.

남편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던 그가 하루밤새 몇백마리나 되는 오리를 죽였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랴.

사고원인을 해명하려고 내려오는 사람마다 푸르딩딩한 얼굴로 죄인다루듯 몇마디씩 묻고는 사라져버리군 하였다.

누구보다 섭섭한 사람은 오빠였다.

《그만큼 그만두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더니 끝내… 봐라! 일이 어떻게 됐나?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

말 한마디 따뜻이 해줄 대신 그의 눈빛에는 이런 말이 씌여져있었다. 못마땅해하기도 하고 잘코사니 하는것같은 눈빛이였다. 더우기 동생이 가까이 다가설가봐 꺼리는것같기도 했다.

평시에는 자기에게 살점이라도 베여줄듯 하던 형님도 오늘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안테나》엔 제일먼저 새 소식이 걸렸을텐데…

친오빠네까지 모두 외면하니 서정옥은 정말이지 괴로운 마음을 달랠길이 없었다. 남편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그런데 기사장만은 여느날과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더 따뜻이 대해주고 관심해주니 인정많고 눈물많은 정옥은 끝내 눈물의 뚝을 터뜨리고야말았다.

봄순의 마음도 다를바 없었다. 언제나 일을 잘하는것으로써 고마운 기사장에게 보답하려고 했건만…

송영숙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들을 따뜻이 달래였다.

그는 정옥이와 봄순이 점심식사를 다 한 다음 전날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시간별로 하나하나 물었다.

《아침먹이때는 오리들의 먹성이 좋았겠지요?》

《예.》

《아침먹이를 먹인 다음엔 어떻게 했어요?》

《오전엔 눈이 조금씩 내리기에 오리들을 놀이장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정옥은 곰곰히 기억을 되살려가며 대답하였다.

《그러니 다음먹이시간까지 그냥 호동안에 있었겠군요?》

송영숙은 정옥이와 봄순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며 또 물었다.

이때 정옥의 눈빛이 류다른 광채를 뿜으며 반짝했다.

《아! 있어요! 방역대에서 왔댔습니다.》

《방역대에서요?》

송영숙은 다우쳐 물었다.

《예. 방역대에서 주사를 놓았습니다. 혈청주사!》

봄순이도 웨치듯 대답하였다. 그들은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길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우리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우린 정말 맹꽁이야, 맹꽁이!》

사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앞에서 사고원인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너무도 당황하고 무섬증이 앞서서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기사장이 긴장감을 해소시키면서 차근차근 물으니 비로소 정상적인 사고를 할수 있었다.

그 순간 송영숙도 자기의 실수를 깨달았다.

어제 아침 방역대에서 면역혈청주사를 놓았다는걸 그도 알고있었던것이다.

사실 방역대에서는 이틀전부터 생산직장들을 순서로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런데 그걸 잊다니…

잠시후 호동을 나선 송영숙은 청년직장 사무실에 들어가 전화로 방역대장을 찾았다. 집에서는 점심식사를 하자마자 곧 나갔다고 안해가 대답하였다.

다시 방역대장방을 찾았다. 한동안 신호음이 울려서야 송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났다.

《기사장입니다. 대장동뭅니까? 내 곧 그리로 가겠어요.》

가공직장옆에 위치한 방역대에 찾아가니 키가 크고 여윈 방역대장이 혼자 있었다.

《요즘 방역대에서 혈청주사를 놓았지요? 어디어디 놓았는지 그 순서를 말해주세요.》

송영숙은 주사약제조실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

기사장의 물음에 대장은 긴 허리를 늘구며 일어서서 책장에 꽃혀있는 주사접종일지를 펼쳐들었다.

《가만! 내가 좀 보자요.》

송영숙은 대장에게서 주사접종일지를 넘겨받았다.

그는 온몸에 긴장을 느끼며 접종란에 눈길을 모았다.

모두 30일령의 오리들로서 다섯개 호동을 거쳐 마지막에 시험호동오리들에게 주사한것으로 기록되여있었다.

《마지막이 분명 시험호동이겠지요?》

송영숙은 확인하듯 물었다.

《이걸 보니 대장동무가 주사공과 함께 접종했군요. 그런데 주사약 제조는 누가 했습니까?》

《제약작업반에서 새로 온 제조공이 했습니다. 아! 마침 저기…》

범 제소리 하면 온다면서 방역대장은 긴팔로 창밖을 가리켰다.

주사약제조공은 20대의 젊은 청년이였다.

송영숙은 그에게 시험호동을 맨 마지막에 접종하였는데 주사약이 남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조금 남은것같은데… 여기 있습니다.》

제조공은 반쯤 남은 약병을 기사장에게 내밀었다.

주사약을 받아든 송영숙은 곧 전화를 걸어 생산부기사장과 유상훈소장을 불렀다.

두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방역대에 들어섰다.

그들은 기사장의 지시대로 주사약을 검사하려고 약병을 가지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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