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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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의성은 지금 소금밭이끼를 들여다보면서 이번에 제염소에 다시 나온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번에 여기에 내려와있으면서 소금밭이끼에 대한 또 하나의 비밀을 밝혀냈던것이다.

그것은 소금밭이끼에 대한 일반화학조성이 그 지대의 토양조건과 바다물의 조성, 기후조건 등으로 일정한 차이가 있다는것이다.

같은 소금밭이라 해도 계절별, 채취방법에 따라 일반조성에서도 차이가 심하였다.

단백함량이 높은 람조류는 여름철에 우세하고 봄과 가을에는 록조류와 규조류가 우세한데 이것은 첨가제연구에서 반드시 중시해야 할 문제였다.

드벅차지는 마음을 안고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정의성의 마음은 청신한 아침대기처럼 맑고 상쾌하였다.

한해동안분의 소금밭이끼를 전부 수송하였으니 이제는 연구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여 하반년부터 공장첨가제와 수입첨가제를 절반씩 섞어서 생산을 보장하리라는 결심이 확고해졌다.

《연구는 중단없이 밀고나가면서 한편으로 생산에 도입해야 한다구봐요. … 더 좋구 원천이 풍부한 천연제를 계속 연구보충하면서 하반년부터는 대담하게 생산에 도입하자요. …》

열정어린 눈빛으로 신심있게 말하던 기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것같았다.

정의성의 눈앞에는 이곳으로 떠나기 전날 사무실에서 만났던 송영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은 아침부터 햇솜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였다.

오후에는 언제였던가싶게 하늘이 말짱 개이더니 봄날씨처럼 따스했다. 수송조를 책임진 정의성은 오후 첫시간에 기사장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송영숙은 수송조가 해야 할 일들을 재삼 강조하였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들어와서 시험오리들의 생육상태며 먹이상태를 관찰해야겠어요.》

정의성은 그의 말을 헌헌히 접수하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기 일은 기사장동무가 있으니 마음을 놓습니다. 우리 집사람에게도 말했지요. 무슨 일이 있으면 기사장동무를 찾아가라구요. 사실 우리 집사람은 기사장동무를 무척 좋아하더군요.》

정의성은 안해에 대한 자랑도 비웃음도 아닌 목소리로 말했다.

송영숙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실무적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주인은 어디까지나 정동무예요. 그리구 정옥동무는…》

그는 책상앞에 놓인 탁상일력을 한장 번지며 말을 이었다.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좋은 동무더군요. 또 알뜰하구 성실하구… 말그대로 헌신적인 녀성이지요. … 안해에 대해선 동무가 더 잘 아실텐데요?》

그는 정의성을 곧추 쳐다보았다.

정의성은 눈길을 떨구었다. 그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넓은 이마에 드리운 앞머리칼을 천천히 쓸어올렸다.

송영숙의 얼굴이며 목소리에는 빈정대는 태도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진정어린 말이 더 무안스러웠다.

이때 어디선가 《반월가》의 청고운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송영숙의 손전화기에서 울리는 노래였다.

송영숙은 인츰 주머니에서 손전화기를 꺼내였다.

화면에 나타난 번호를 보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는 신비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알카리와 반응하여 새파랗던 리트머스종이가 산성시약과 반응하여 순간에 분홍빛이 되듯이 딱딱하고 실무적이던 송영숙의 얼굴에 화기가 돌았던것이다.

정의성은 그의 감정변화와 말투로 보아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그의 남편이라는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였다.

송영숙은 약간 점직해하는 얼굴로 창문을 향해 반쯤 돌아서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남편에게 출장준비를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더니 언제쯤 돌아오는가고 살뜰히 물었다. 감정변화가 예민한 그의 눈가에는 따뜻하고 다정한 빛이 흘렀다.

그의 얼굴을 보며 정의성은 송영숙이 한개 공장의 기사장이기 전에 그 누군가의 안해이며 또 어머니이고 한가정의 주부이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였다.

그는 송영숙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한번 만나보고싶어졌다.

손전화기를 통하여 말을 주고받는 태도며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부부의 사랑과 정이 남다르다는것을 느꼈던것이다.

송영숙이 남편에게 추운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오히려 안해의 건강상태를 념려하여 무엇인가 거듭거듭 당부하는것같았다. 송영숙의 얼굴은 더욱 붉어지였다.

그는 명심하고 일하겠다면서 인차 통화를 끝냈다.

송영숙은 손전화기를 끄고 다시 정의성의쪽으로 돌아섰다.

순간 그의 얼굴은 또다시 파르스름해지였다. 분홍빛의 리트머스종이가 다시 알카리와 반응하여 신속히 파릿해지듯이. …

《자동차가 래일 아침 떠난다지요?》

이윽고 그 얼굴에 어울리는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그는 책상우에 펼쳐진 책이며 자료묶음들을 정돈하며 말했다.

《대소한은 지났지만 아직 날씨가 찬데 준비를 잘해가지구 떠나세요. 한주일에 한번씩 수송차와 함께 들어와야 한다는걸 잊지 말구요.》

그의 말은 여전히 랭정하고 실무적이였다. 방금전 출장을 떠나는 남편에게 하던것과는 너무도 색갈이 달랐다.

《무슨… 부탁할게 있어요?》

송영숙은 말없이 서있는 정의성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정의성은 획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부탁할건 없습니다.》

그는 곧 기사장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

《떠나잡니까?》

정의성이 자동차곁에 다가오자 운전사가 물었다.

정의성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적재함을 올려다보았다.

《다 실었소?》

《예, 다 실었습니다.》

《그럼 떠나기요.》

정의성이 운전칸에 오르자 자동차는 부르릉- 발동을 걸며 차체를 움씰하였다. 드디여 소금밭이끼를 만재한 화물자동차는 공장을 향하여 질풍같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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