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8
(1)
《뭐요? 시험호동에서 사고났다구?》
정의성은 차수정의 여윈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도 사고의 원인이 그에게 있기라도 한듯 무섭게 쏘아보았다. 정의성이 첨가제생산실옆에 있는 원료창고에 소금밭이끼를 부리운 다음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차수정이였다.
예약했던 도서를 가지고 유상훈박사를 찾아왔다가 돌아가던 수정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정의성에게 며칠전에 있었던 무리페사소식을 알려주었던것이다.
《그게 언제요?》
정의성은 성급하게 물었다.
《이젠 한주일이 되였어요. 어제 사고심의가 끝났으니까요.》
《사고심의?》
정의성은 또다시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수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사고심의에서 방역대의 주사약제조공과 방역대장이 한달동안 처벌을 받았어요.》
수정은 이번 사고때 기사장이 발벗고나서서 뛰여다닌 덕에 문제가 빨리 결속지어졌다고 덧붙였다.
정의성은 거기에 대해서는 들은척 하지 않았다.
머리속에는 오직 시험호동에서 무리페사라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되였다는 불쾌감만이 자리잡고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철수해 들어왔어요?》
수정은 정의성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정의성은 수송계획을 전부 끝내고 아주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수고많았군요. 이젠 집에 들어가도 될거예요. 지배인방에 일군들이 모여서 월생산총화를 하더군요.》
수정의 말에 그는 뚝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수정과 헤여진 정의성은 곧장 시험호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뜻밖에도 시험호동의 사고소식을 들은 그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첨가제때문이 아니라 해도 시험호동에서 주사약소동이 났다는것이 어쩐지 불길하고 운수사납게 생각되였다.
(새해 첫 시험오리부터 잘 키워보자고 했더랬는데…)
호수가쪽에서 찬바람이 후욱 불어왔다. 정의성은 솜옷자락을 여미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시험호동에는 리봄순이 혼자 있었다. 처녀는 그 어떤 죄의식을 느꼈는지 눈건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왜 혼자 있소?》
정의성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옥동문 감탕파기 나갔어요. 우린 이틀에 한번씩 교대합니다.》
처녀는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정의성은 침울한 얼굴로 호동안을 둘러보았다.
몇마리 남지 않은 오리들이 한군데 몰켜있는 호동안은 여느때없이 썰렁하였다. 먹이그릇도 들여다보고 먹이조리실에도 들어가보니 일반오리먹이를 주고있었다.
지금 남은 오리들은 이미 시험용이 아니라 그저 생산물이였다.
정의성은 더욱더 손맥이 풀리는것을 느꼈다. 누구에게든 불만을 터뜨리고나면 무거워진 마음도 가벼워질것같았다.
그러나 누구에게 감정을 터놓으랴. 안해가 곁에 있다면 그에게라도 화풀이를 하련만 그는 지금 호수가에 나가 감탕파기를 하고있었다. 오리마리수가 절반으로 줄었으니 관리공 한명을 작업동원시키는것도 당연하지만 정의성에게는 그것도 불만스러웠다.
《기사장은 자주 나오군 하오?》
그는 옹색한 마음으로 서있는 리봄순을 돌아보았다.
처녀는 기여드는 목소리로 《요즘엔 안나와요.》하며 머리를 저었다.
정의성은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시험오리가 없는데야 무엇때문에 나오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험호동일에 등을 돌려댄것같아서 그 역시 마음 허전하였다.
정의성은 저도 모르게 문을 후려닫고 호동을 나섰다.
머리를 짓수굿하고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그는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서정관이였다.
정의성은 이런 때 처남을 만난것도 반갑지 않았다. 그는 씁쓸한 얼굴로 알은체 하였다.
《언제 왔소?》
서정관은 곁으로 다가오며 친근하게 물었다.
공장에 들어선지 두어시간 된다는 대답에 그는 《시험호동엔 들려봤소?》하고 다시 물었다.
정의성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의 얼굴에 씌여진 착잡하고 불쾌한 심리를 재빨리 읽어본 서정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문득 소금밭이끼수송을 떠나기 전날 누이동생과 함께 병문안을 왔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서정관은 처남의 자격으로 첨가제연구니 뭐니 하면서 시간과 품을 랑비하면서 공장사람들을 들볶지 말고 자기 가정에나 성실할것을 권고했었다.
(공장에 흔한 부산물을 퍼주면 곱다랗게 앉아서도 수입첨가제를 받을수 있는데 뭣때문에 자기도 고생하면서 남들한테까지 불편을 주는가. 제아무리 날구뛴들 수입첨가제보다 더 나은걸 만들수는 없지 않는가. …)
이것이 서정관의 변함없는 속생각이였다.
그때에도 정의성은 만만치 않은 태도로 도전하였다. 하여 서정관은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채 허옇게 되고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불쾌하고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상대방과 절대로 얼굴을 붉히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는 서정관이다.
오히려 웃는 얼굴로 아량을 보이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눙쳐주는것이 그의 남다른 장끼였다.
그는 시험호동에서 사고가 났을 때에도 남먼저 그곳으로 달려갔었다.
죽은 오리들이 더미로 쌓여있는것을 보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첨가제연구를 그만두라고 듣기 좋게 말할 땐 들은척 않더니…)
그는 눈물을 머금은채 오락가락하는 누이동생에게 한마디 말도 걸지 않았다. 오직 괘씸한 생각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