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9
(1)
송영숙은 다급히 울리는 문기척소리에 눈길을 들었다.
응답소리와 동시에 문이 벌컥 열리며 서정관이 들어섰다.
《이거 야단났습니다!》
《?!》
《종금1직장 자동차가 호수에 빠졌답니다. 방금전에 배합먹이를 싣고가다가 …》
어지간히 당황한듯 서정관은 말의 순서까지 뒤바꾸었다.
콤퓨터를 마주하고 앉았던 송영숙은 튕겨나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빨리 총동원해야지요. 사무실성원들부터 비상소집하세요.》
그는 눈앞에서 배합먹이마대들이 얼음구멍으로 막 빠져드는것만 같아 다급히 말하였다.
서정관은 방에서 뛰쳐나가다싶이 하였다.
송영숙이도 뒤따라 방에서 나왔다.
이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다시 방에 들어가 송수화기를 드니 종금1직장장 임광일이 걸어온 전화였다. 임광일은 덤벼치듯 말까지 더듬으며 사람들을 빨리 호수가로 내보내달라고 하였다.
《알겠어요. 지금 막 나가는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요.》
송수화기를 놓고 마당에 나오니 사무실성원들이 정문앞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여기 이러구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호수가에 나가지 않구…》
송영숙은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제먼저 자전거를 끌어낸 다음 호수가로 내달렸다.
발디디개에 힘을 주며 내달렸더니 솜옷입은 잔등에 땀발이 서는것같았다. 2월 중순치고는 무척 따스한 날씨였다.
호수가에 이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주위에 모여있었다. 자동차는 다행히도 메고치쪽으로 빠져있었다. 그리고 운전칸 앞코숭이를 물속에 잠그고있어서 배합먹이마대는 두세개밖에 물에 빠뜨리지 않았었다.
송영숙은 자전거를 기슭에 세워두고 얼음판우를 걸어 자동차쪽으로 다가갔다.
《주의하십시오. 얼음판에 미끄러질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새 서정관이 곁으로 다가서서 주의를 주었다.
마음속은 어떻든 겉으로 표현되는 그의 친절성은 감탄스러운것이였다.
송영숙은 아무 대꾸없이 자동차가 빠진 곳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임광일이 내의바람으로 적재함우에 올라서서 배합먹이마대를 한개씩 안아서 내리우고있었다.
아래에서는 종금직장 종업원들과 호수가에 감탕파기나왔던 사람들이 임광일이 안아서 내려보내는 배합먹이마대를 하나씩 메거나 썰매에 실어서 기슭에 세워둔 소달구지쪽으로 날라들이고있었다.
송영숙은 팔을 걷고 그들을 도와나섰다.
기사장의 뒤를 따라 달려나온 사무실성원들까지 합세하니 자동차에 실었던 사료마대들은 삽시에 기슭으로 옮겨졌다.
호수건너편에 위치한 이곳 종금1직장에서는 지금처럼 얼음이 풀리는 시기와 장마철에 배합먹이를 운반하는것이 제일 난문제였다.
여느때는 배로 실어나르기도 하고 두텁게 얼음이 졌을 때에는 자동차나 소달구지로도 나를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때에는 멀리 에돌아야 했던것이다.
그런데 성미급한 운전사들이 모험을 하다가 이런 사고를 내는 일이 드문했다.
어느덧 배합먹이마대들이 모두 기슭으로 옮겨진것을 본 송영숙은 그제야 약간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문제는 얼음물속에 코박은 자동차였다.
자동차를 끌어내자면 얼음을 까고 물속에서 자동차를 밀어야 한다. 사람들이 주저하는 눈치가 보이자 임광일은 사람들에게 곡괭이든 지레대를 가지고나와서 얼음을 까자고 소리쳤다.
《얼음이 풀릴 때까지 그냥 서있자우? 젠장! 눈치도 없이…》
그는 어디서 났는지 통나무등걸로 얼음을 까기 시작했다. 검실하고 네모난 그의 얼굴은 울기가 뻗쳐올라 수수떡이 되였다.
젊은 운전사도 도끼를 휘두르며 얼음을 깠다. 지난해에 제대된 그는 자기의 모험심이 이처럼 대소동을 일으킬줄 몰랐을것이다. 그는 눈길 한번 들지 않고 한치한치 얼음을 까나갔다.
잠시후 골방고치쪽에서도 함마며 곡괭이를 둘러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온 호수가가 얼음까는 소리로 들썩하였다. 이제는 물속에서 자동차를 밀고나와야 한다.
직장장 임광일은 두말없이 허리치는 물속에 첨버덩 뛰여들었다. 그는 먼저 자동차앞코숭이에 바줄을 건 다음 량끝을 기슭으로 내던졌다.
젊은 청년들 열댓명이 첨벙첨벙 경쟁하듯 물속에 들어서서 바퀴에 어깨를 들이밀거나 적재함뒤에 서서 자동차를 밀었다. 누군가 요란스레 재채기를 하였다. 가벼운 웃음이 터지다가 장소가 장소인것만큼 자기할바에 열중했다.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녀인들과 나이많은 축들은 기슭에서 바줄을 잡고 두줄로 늘어섰다.
송영숙도 녀인들속에 끼여서서 바줄을 잡았다.
사람들은 임광일의 구령에 따라 호흡을 맞추며 바줄을 당기였다.
《하나, 둘-》
《영- 차!》
《하나, 둘-》
《영-차!》
사람들의 기세는 자동차가 아니라 산이라도 떠옮길것같았다. 자동차앞바퀴에 실팍한 어깨를 들여민 임광일은 두눈이 튀여나올듯 뚝 부릅뜨고 힘껏 구령을 치였다.
《하나, 둘-》
《영-차!》
자동차가 움씰하며 몸체를 들썩하였다. 하더니 사람들의 기세에 항복한듯 순순히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여 자동차가 기슭에 올라서자 썰매를 타면서 놀고있던 조무래기들이 어른들의 마음까지 합쳐서 《야! -》하고 환성을 질렀다.
기슭에 섰던 사람들도 아이들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다. 물속에서 나온 젊은이들도 추위에 얼어든 퍼릿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싱글벙글하였다.
사람들은 기슭에 지펴놓은 모닥불곁으로 모여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힝힝 코웃음을 쳤다.
《언제 불쪼이구있을새 있소? 빨리 집에 가야지.》
《저 령감 일하러 나올 땐 벌벌 기더니 집에 가라니까 막 뜁네다.》
《말 못하는 황소두 집에 가라문 뛰여가는데 내가 왜 안뛰갔소? 그저 녀편네옆이 제일이라니까.》
우등불곁에서 와하- 웃음소리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