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회)
제 3 장
봄의 의미
7
(1)
박금월은 갑자기 집안에 들어온 손님들앞에서 이불을 미처 거두지 못한것이 민망스러운듯 웃구석으로 둘둘 말아 밀어놓은 이부자리를 등으로 가리고
불안스럽게 앉아있었다. 출입문을 등지고 서있는것은 정치위원이 분명한데 자기앞에 앉아계시는
어디서 뵈왔을가 하고 옴한 생각을 하느라면 종당에는 하나의 상상에 가닿는데 그때마다 설마하고 도리머리를 흔들면서도 다시 눈을 들어 뵈오면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지워버릴수 없었다.
방안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는 세심한 시선, 환자의 아픔을 념려하시듯 몹시 상심하신 기색이 완연한데도 밝은 빛이 끝없이 발산하는 준수하신 존안, 아까 문을 열고 들어서며 병문안을 왔노라고 하실 때 온 방안이 둥둥 떠가는것같이 느껴지던 부드럽고 우렁우렁한 음성…
박금월은 이분이 혹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편이 조용히 이야기해주던 당중앙위원회의
자기앞에 앉아계시는분이 바로 영명하신
그러나
다행히도 녀인은 집에 누워있었다.
넓다란 방안은 몹시 썰렁하였다. 초여름에 들어섰는데도 거풍을 하지 못해 그런지 약간 눅눅한 곰팡이냄새까지 나는것같았다.
금방 아래목에 치워놓은듯싶은 약봉투들을 끄당겨 겉에 붙은 명표를 들여다보시던
《아이는 어디 갔습니까? 아들애가 있다는 말을 들은것같은데.》
박금월은 흐트러져내린 머리카락을 비다듬어올리며 혀아래소리로 대답을 올리였다.
《제 몸이 부실해서 친정에 보냈습니다.》
그러니 어린 아들과도 헤여져서 산다는 말이다. 이렇게 가정을 풍겨놓고 주인이라는 사람은 일이 바쁘답시고 뛰여다니겠지.
《병원에 입원했었다는데 어째서 집에 나왔습니까? 치료를 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녀인은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소리는 무척 낮았으나 녀인의 체소한 몸이 졸지에 녹아내리는것같은 한숨이였다.
《일때문에 가뜩이나 바쁜 남편이 제가 병원에 누워있으면 무슨 큰 병을 앓는줄 알겁니다. 전 그저 늘 이렇습니다.》
집안일에 통 무관심한 남편, 앓는 안해를 병원에 두고 평양으로 떠난 몰인정한 남편인데도 불평 한마디없이 오히려 그를 위하는 녀인의 마음에
가슴이 어릿해나시였다.
《이렇게 앓을 때는 곁에 앉아 물을 떠다줄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건데… 세대주도 없이 혼자서 얼마나 고독하겠습니까.》
임철은 제꺽
《어린 간호원보다 이런 때에는 좀 나이가 든 어머니 한분이 와계시는것이 나은데…》
임철정치위원이 자기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집사람이 아직 이사를 오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어왔다고 말씀올리고나서 부참모장네 집에 나이든 가시어머니 한분이 와서 사는데 이제 당장 가서 부탁해보겠다고 하였다. 박금월은 어깨를 솟구며 손을 내저었다.
《그만두십시오. 옆사람들한테까지 부담을 주고싶지 않습니다.》
박금월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정치위원을 만류하려들자
《뭘 그럽니까. 어려울 때는 도움도 받을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고독하면 병이 더 깊어지는 법입니다.》
박금월은 무슨 설음이 북받치는지 살이 쑥 빠진 손으로 입을 가리웠다. 정치위원이 부참모장네 집으로 가고 방안이 조용해지자 녀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혹시 당중앙위원회에 계시는…》
《예, 제가
녀인은
《아까 집안에 들어서실 때 꼭
《우리가 아주머니에게 죄를 진것같습니다. 철봉동무에게 기대가 크고 믿음이 크다나니 줄곧 일만 시키면서 집안에 이런 일이 있는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앓고있는건 옆집에서두 모르는 일인데 큰일을 보시는분들이 어떻게… 우리 남편두 그렇게 신칙을 하지만 저두 신상의 작은 일로 나라일을 하는 남자들의 발목을 붙잡는건 내인들의 도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한다 하는 장령의 안해가 무슨 그런 봉건냄새가 나는 말을 다 합니까? 군인가족들은 옛날 남편들의 시중이나 들던 아낙네가 아니라 혁명의 길을 함께 가야 할 가장 가까운 동지입니다.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관계이지 누구를 희생해서 누구를 내세우는 그런 관계가 아니란 말입니다. 아주머니 병이 이렇게 심해지도록 정치위원동지랑 왜 여적 모르고있었는지 이젠 알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