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회)

제 3 장

봄의 의미

7

(1)

 

박금월은 갑자기 집안에 들어온 손님들앞에서 이불을 미처 거두지 못한것이 민망스러운듯 웃구석으로 둘둘 말아 밀어놓은 이부자리를 등으로 가리고 불안스럽게 앉아있었다. 출입문을 등지고 서있는것은 정치위원이 분명한데 자기앞에 앉아계시는 젊으신분은 난생처음 뵙는분이였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퍽 낯이 익고 늘 뵙던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디서 뵈왔을가 하고 옴한 생각을 하느라면 종당에는 하나의 상상에 가닿는데 그때마다 설마하고 도리머리를 흔들면서도 다시 눈을 들어 뵈오면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지워버릴수 없었다.

방안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는 세심한 시선, 환자의 아픔을 념려하시듯 몹시 상심하신 기색이 완연한데도 밝은 빛이 끝없이 발산하는 준수하신 존안, 아까 문을 열고 들어서며 병문안을 왔노라고 하실 때 온 방안이 둥둥 떠가는것같이 느껴지던 부드럽고 우렁우렁한 음성

박금월은 이분이 혹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편이 조용히 이야기해주던 당중앙위원회의 김정일동지가 아니실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활랑거렸다. 근 한달동안이나 집을 나갔던 남편이 어제그제 들어와 이제는 그분을 떳떳이 만나뵙게 되였다고 기뻐하며 평양으로 갈 준비를 서두르는것까지 보고 정신을 잃었댔는데 남편은 어디 가고 또 이분은 어떻게 우리 집에 오신것일가. 박금월은 많은것을 알수 없었다.

자기앞에 앉아계시는분이 바로 영명하신 김정일동지이시며 그이께서 바로 자기때문에 평양으로 떠나려는 남편을 역전에서 멈춰세우도록 하시고 직접 천금같은 시간을 내여 진포에 내려오셨다는것을. …

그러나 그이의 전화를 받은 임철정치위원이 역전에 나갔을 때 리철봉은 이미 사령관과 함께 평양으로 출발한 뒤였다. 그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당중앙위원회에 전화를 거니 김정일동지께서도 이미 진포를 향해 떠나셨다는 소식이 왔다. 임철은 다시 역전으로 나와 꼬박 두시간을 기다려 그이를 마중하였다. 화물렬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임철정치위원으로부터 리철봉이 벌써 떠났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러면 왔던김에 병원에 가보자고 하시였다. 그러나 철봉의 안해는 병원에 없었다. 구급치료를 받고 정신을 차린 환자가 큰 병도 아닌데 침대에만 누워있을수 없다고 하면서 억지다짐으로 퇴원했다는것이였다. 임철정치위원은 너무 송구스러워서 어쩔바를 몰라했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발 늦었다고 하시며 이번에는 집까지 가보자고 재촉하시였다.

그이의 한초한초가 어떤것인가를 잘 알고있는 임철은 그 녀인이 집에까지 없으면 어쩌나 하고 바늘방석우에 앉아 여기까지 왔다.

다행히도 녀인은 집에 누워있었다.

넓다란 방안은 몹시 썰렁하였다. 초여름에 들어섰는데도 거풍을 하지 못해 그런지 약간 눅눅한 곰팡이냄새까지 나는것같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피기가 싹 가셔진것같은 녀인의 얼굴을 근심스럽게 들여다보시였다. 마흔도 못넘긴 얼굴에 다문다문 퍼지기 시작한 연한 검버섯이며 거실거실하게 껍질이 일어난 입술이며를 가까이에서 보니 하루이틀 앓은 몸이 아니다. 자신께서 알고계시기엔 리철봉의 안해가 무척 깔끔하고 알뜰한 녀인이였는데 장판지모서리들이 군데군데 들고일어나 똘똘 말린것을 보아도 그래, 상보를 덮은 밥상이 웃목에 그대로 밀려나있는것을 보아도 그래, 방안에는 가정주부의 닥달질이 얼마 깃들지 못했다.

금방 아래목에 치워놓은듯싶은 약봉투들을 끄당겨 겉에 붙은 명표를 들여다보시던 그이께서는 박금월에게 조용히 물으시였다.

《아이는 어디 갔습니까? 아들애가 있다는 말을 들은것같은데.》

박금월은 흐트러져내린 머리카락을 비다듬어올리며 혀아래소리로 대답을 올리였다.

《제 몸이 부실해서 친정에 보냈습니다.》

그러니 어린 아들과도 헤여져서 산다는 말이다. 이렇게 가정을 풍겨놓고 주인이라는 사람은 일이 바쁘답시고 뛰여다니겠지.

그이께서는 가정일에 무관심한 리철봉의 또 다른 한 측면을 몹시 서운하게 여기시며 박금월에게 다시 물으시였다.

《병원에 입원했었다는데 어째서 집에 나왔습니까? 치료를 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녀인은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소리는 무척 낮았으나 녀인의 체소한 몸이 졸지에 녹아내리는것같은 한숨이였다.

《일때문에 가뜩이나 바쁜 남편이 제가 병원에 누워있으면 무슨 큰 병을 앓는줄 알겁니다. 전 그저 늘 이렇습니다.》

집안일에 통 무관심한 남편, 앓는 안해를 병원에 두고 평양으로 떠난 몰인정한 남편인데도 불평 한마디없이 오히려 그를 위하는 녀인의 마음에 가슴이 어릿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손에 드시였던 약봉투들을 내려놓으며 썰렁한 방안을 다시 둘러보시였다.

《이렇게 앓을 때는 곁에 앉아 물을 떠다줄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건데… 세대주도 없이 혼자서 얼마나 고독하겠습니까.》

임철은 제꺽 그이의 등뒤에 무릎을 꺾고 다가앉으며 오늘밤중으로 군의소 간호원을 한명 내려보내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어린 간호원보다 이런 때에는 좀 나이가 든 어머니 한분이 와계시는것이 나은데…》

임철정치위원이 자기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집사람이 아직 이사를 오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어왔다고 말씀올리고나서 부참모장네 집에 나이든 가시어머니 한분이 와서 사는데 이제 당장 가서 부탁해보겠다고 하였다. 박금월은 어깨를 솟구며 손을 내저었다.

《그만두십시오. 옆사람들한테까지 부담을 주고싶지 않습니다.》

박금월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정치위원을 만류하려들자 그이께서는 녀인을 가볍게 눌러앉히시였다.

《뭘 그럽니까. 어려울 때는 도움도 받을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고독하면 병이 더 깊어지는 법입니다.》

박금월은 무슨 설음이 북받치는지 살이 쑥 빠진 손으로 입을 가리웠다. 정치위원이 부참모장네 집으로 가고 방안이 조용해지자 녀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혹시 당중앙위원회에 계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말끝을 흐리며 눈길을 내리까는 녀인의 모습을 띄여보시고 반색을 지으시였다.

《예, 제가 김정일입니다. 어떻게 저를 알아보셨습니까?》

녀인은 그이의 존함을 듣자 무릎을 모으고 꿇어앉으며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였다.

《아까 집안에 들어서실 때 꼭 어버이수령님을 뵈옵는것만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혹시나 하고… 죄송합니다. 귀한분이 오셨는데 이렇게 인사불성이 되여 정말

김정일동지께서는 무릎을 꿇고앉은 녀인에게 그러지 말고 편히 앉으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아주머니에게 죄를 진것같습니다. 철봉동무에게 기대가 크고 믿음이 크다나니 줄곧 일만 시키면서 집안에 이런 일이 있는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앓고있는건 옆집에서두 모르는 일인데 큰일을 보시는분들이 어떻게… 우리 남편두 그렇게 신칙을 하지만 저두 신상의 작은 일로 나라일을 하는 남자들의 발목을 붙잡는건 내인들의 도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탈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한다 하는 장령의 안해가 무슨 그런 봉건냄새가 나는 말을 다 합니까? 군인가족들은 옛날 남편들의 시중이나 들던 아낙네가 아니라 혁명의 길을 함께 가야 할 가장 가까운 동지입니다.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관계이지 누구를 희생해서 누구를 내세우는 그런 관계가 아니란 말입니다. 아주머니 병이 이렇게 심해지도록 정치위원동지랑 왜 여적 모르고있었는지 이젠 알만합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