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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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늘 호동에서 살다싶이하면서 오리를 돌보았고 정의성의 요구라면 어길수 없는 법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배합먹이며 보충먹이를 다루는걸 보면 다소 무질서하고 정돈되지 않은 약점도 있었다. 사실 여느 사람에게는 그러한것이 조금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을것이다. 지나친 정돈과 규칙적인 생활이며 질서를 바라는 정의성에게는 그것이 눈에 거슬리였다.

어느날 정의성은 처녀에게 말을 꺼냈다.

《정옥동무! 동문 녀자의 장점이 뭔지 아오?》

삭임돌에 섞여있던 티검불을 주어내던 처녀의 손이 멎었다.

그는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뭔가 말할듯말듯 하다가 방긋 웃음지으며 머리를 젓는것이였다.

처녀의 웃음어린 얼굴을 바라보면서 정의성은 물건을 제자리에 놓을줄 아는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서 이 말은 어느 철학가의 말인데 시험호동 관리공은 이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무질서가 초래하는 후과는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것이라는것도 강조하였다.

그때 정의성은 처녀의 귀뿌리며 목덜미까지 붉어지는것을 보았다.

다음날부터 시험호동안은 완전히 달라졌다.

휴계실과 소독실은 물론이거니와 먹이조리실의 소금밭이끼며 배합먹이들, 보충먹이들이 질서정연하게 쌓여지고 조리도구와 소독기구들은 언제봐도 정해진 제자리에 놓여있게 되였다. 눈치빠르고 령리한 처녀는 정의성의 눈빛이나 행동 그리고 말투까지 세심하게 가려보면서 그의 의도를 깨닫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였다.

시험오리들을 관찰하려고 놀이장앞에 앉아있던 정의성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였다. 어릴 때부터 속탈로 자주 고생하던 그여서 몸이 차지면 항상 배가 아팠던것이다. 그렇다고 따끈하게 불을 때는 휴계실에만 들어가있을수 없었다.

다음날도 그는 칸막이를 한 놀이장앞에 앉아서 다시금 오리들의 생육상태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런데 따뜻한 온돌방에 폭신한 담요를 깔고앉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늘 앉군 하던 나무의자같았지만 일어나 보니 불에 달군 블로크우에 짚이 깔려있었다.

《?!》

저켠에 서서 방그스름히 웃고있는 처녀를 보고서야 그는 모든것을 깨달았다. 처녀는 겨울동안 내내 블로크를 달구어 정의성의 몸을 따뜻이 덥혀주었다. 그리고 매일 따끈하게 끓인물을 보온병에 넣어두고 그것을 마시도록 해주었다. 공장합숙에서 생활하는 그를 위해 찬거리도 마련해주고 색다른 음식이 생겨도 꼭꼭 가져다주군 하였다.

어느날 정의성은 처녀에게 자기는 이런 성의를 받을 자격이 없노라고 말했다.

처녀의 눈은 커졌다.

《왜 자격이 없나요? 고기생산을 많이 하려구 대학연구소에서 우리 공장으로 내려온 기사동지가 아니나요?》

어느모로 보나 처녀의 마음속엔 정의성에 대한 존경심과 헌신성으로 가득차있었다. 사심없는 그 헌신성에 정의성의 마음은 점점 끌리게 되였다. 귀전에는 연구소의 한 친구가 하던 말이 종종 울리군 했다.

《가정생활을 관찰해보니…》

그 친구는 연구사답게 《관찰》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가정생활에 대한 자기의 일가견을 터놓았다.

《안해에게 있어서 남편은 반드시 존경의 대상이 돼야 하오. 그래야 남편을 위해 자기를 깡그리 다 바칠수 있지.

반대로 남편에게 있어서 안해는 그저 사랑의 대상이면 그만이요.

속담에 있는것처럼 현명한 사람에게는 분별있는 안해면 충분하거던. 두고보라니까. …》

서른살을 넘기도록 사업에만 몰두해온 로총각에게는 서정옥이야말로 헌신적이고 분별있는 안해가 될수 있다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전 공장지배인의 막내딸로 태여나 온 가정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난 그 처녀가 결혼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짐작할수 없었다.

더우기 공장에서 제노라 뽐내는 서정옥의 오빠 서정관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은근히 마음이 조여들었다.

며칠후 시험오리들을 모두 판매에 넘기고 퇴근길에 올랐던 정의성은 곁에서 걸음을 옮기는 처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정옥동무! 내 동무에게 한가지 묻고싶은게 있는데 숨기지 말구 솔직히 대답해주겠소?》

그의 말에 처녀는 명랑하게 웃었다.

《아이참, 기사동지도… 내가 언제 솔직하지 않은적 있나요?》

정의성은 약간 무안해졌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내 말하지. 난 사실 동무와 일생을 같이하고싶은 생각이요. 성실하구 알뜰한 동무와 말이요. 헌데… 동무의 생각은 어떤지…》

그는 주저없이 단숨에 자기의 생각을 터놓은 다음 직팡 처녀의 의향을 물었다. 그리고는 사색적이면서도 관찰하는듯한 눈길로 처녀를 지켜보았다.

정의성의 물음과 눈빛은 너무도 례사로왔다.

인생의 중대사를 이렇게도 무심히 터놓는 자기 자신이 이상하기도 하였다. 더우기 정옥에게서도 열띤 흥분이라든가 수집음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것이였다. 감정은 역시 호상성을 가지는것인가?

처녀는 다만 약간 놀랄뿐이였다.

《예에? 저하구 말이예요? 어쩌면… 제가 어떻게 기사동지와…》

서정옥은 말꼬리를 흐리였다. 자기를 항상 보잘것없는 처녀로 생각하고있던 그에게는 정의성의 말이 롱담처럼 들렸을것이다.

정의성에게는 바로 그 순진성과 소박성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 생산과장으로 사업하던 서정관은 누이동생의 말을 듣고 그달음으로 유상훈박사를 찾아갔다.

박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머리를 끄덕이였다고 한다.

《보기 드문 수재구 보배덩이요. 어느모로 보나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지. 난 찬성이요.》

그때로부터 두달후 정의성과 서정옥은 온 공장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하였다. 막내며느리를 맞이한 정의성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그들의 결혼을 기꺼이 축하해주었다.

신혼생활을 시작한 어느날 정의성은 안해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그때 내가 마음에 들었소?》

남편의 물음에 정옥은 머리를 저었다.

《마음에 든게 아니라 그저 존경했으니까요.》

《그저 존경했기때문에 산다? 그것뿐이요?》

뭔가 부족한것을 느낀 정의성은 지꿎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정옥은 할끔 눈을 흘겼다.

《아이참! 인간생활이 아니나요?》

지금도 정의성은 안해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안해의 말대로 인간생활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끝없이 변화무쌍한것이다. 그리고 인간생활에는 공식이 따로 없으며 사람마다 자기식으로 기쁨과 행복을 창조하고 또 향유하는것이다.

정의성은 저켠에 서서 봄순이와 함께 크레놀소독수를 타고있는 안해를 생각깊은 눈길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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