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 회)
제 3 장
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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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또다시 설아 생각이 갈마들었다. 지금쯤 어디에 가있는지. …
석도공사만 끝나면 온 나라를 다 뒤져서라도 기어이 찾아낼테다.
최진성이 이런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내려오고있을 때 작업장에서는 석철룡과 정치지도원이 서로 팔을 붙들고 버틸내기를 하고있었다.
《정 못비키겠소? 이건 내가 할 일이란 말이요!》
석철룡이 어성을 높이자 정치지도원이 겁난듯이 아래쪽을 내려다보고는 마주잡은 팔에서 손맥을 늦추었다.
《좀 조용히 말합시다. 그래 부중대장동무는 이 정치지도원의 하급이 아닌줄 압니까? 난 명령하겠습니다.》
석철룡은 코웃음을 쳤다.
《무섭지 않소. 내가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 처벌을 하든 비판을 하든 마음대로 하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들어가야 하오.》
《부중대장동지!》
정치지도원이 나직이 부르짖었다.
《저 천막에서 지금 누가 기다리고있는지 모릅니까? 부중대장동진 오후에 석박골로 떠나야 한단 말입니다. 이거야 중대장동지랑 결정한 문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쨌단 말이요? 누가 뭐 죽으러 들어가겠다오? 장약은 내가 했기때문에 내가 더 잘 아오. 난 실수없이 할수 있소.》
《폭약은 사정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바로 그 혹시를 위해서라도 내가 들어가야 하오. 알겠소? 이 중대엔 석철룡이보다 동무가 더 필요해! 이건 진심이요.》
석철룡이 돌아서려 했으나 정치지도원은 끝내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겉보기엔 약골같아보이는 사람이 어떻게나 필사적으로 붙드는지 용빼는 수가 없었다. 석철룡은 한걸음 물러났다.
《좋소. 그럼 우리 저기 앉아서 좀 차근차근 판을 가르기요, 여기에 서있는건 위험하니까. …》
석철룡이 반대쪽으로 걸음을 떼려고 발을 떼는 순간 정치지도원이 그의 허리를 감아안더니 두어걸음앞에 있는 경사지에 콱 밀쳐버렸다. 한순간 몸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던 석철룡이 끝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버럭더미아래로 굴러내렸다.
군인들을 데리고 식당천막에 들어서려던 최진성은 작업현장쪽에서 무엇이 와르르 허물어져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공사장앞에 쌓인 버럭경사에서 뽀얀 먼지가 일면서 사람이 굴러내리는 광경이 보이였다.
순간 이상한 륙감에 머리카락이 쭈볏하게 일어섰다.
얼마간 통나무처럼 굴러내리다가 멈춰선 먼지투성이의 형체가 정신없이 웃쪽으로 기여오르며 무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정치지도원동무! 안되오!》
분명히 석철룡의 목소리다. 무엇이 안된다는것인가?!
아까 정치지도원이 일곱개의 손가락을 내흔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손가락이, 그의 눈이 떨고있었지.
내가 여섯번이라고 센것을 그들 둘이서 짜고든것처럼 일곱번이라고 우겼지. 잔치준비를 토론한다고? 아니다. 그들은 분명 나를 업어넘기고 불발된 폭약을 해제하러 들어갔구나!
최진성은 두주먹을 부르쥐고 달렸다. 중대장의 거동에서 이상한것을 느낀 중대군인들이 우당탕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섰다.
그러나 그들이 현장에 미처 닿기도 전에 무서운 폭음이 울렸다. 발파가스와 먼지가 채 빠지지 않은 속으로 맨 먼저 뛰여든 석철룡이 피투성이가 되여 레루우에 쓰러진 정치지도원을 둘쳐업고 나왔다. 그렇게 단정하던 머리카락은 쥐여뜯은듯이 흐트러지고 군관혁띠의 멜띠가 끊어져 맥없이 흔들리였다. 평퍼짐한 바위에 그를 눕히였을 때 정치지도원은 돌파편에 찢겨진 손을 허공에 쳐들고 무엇인가를 더듬었다. 안경을 찾는것같았다. 최진성은 머리맡에 흘러떨어진 안경을 그대로 쥐여주려다가 손수건으로 정히 닦아 그의 눈에 얹어주었다. 그제서야 꺼멓게 질린 정치지도원의 얼굴에 알릴듯말듯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다 보이누만. 동무들 얼굴이 잘… 보여…》
목소리가 이전같지 않다. 무엇이 목안에서 끓는지 늙은이의 말소리처럼 그렁그렁하게 들린다.
왜 이러는가? 어째서 목소리가 이런가?
최진성은 정치지도원의 손을 꼭 그러쥐고 제발! 제발! 하고 마음속으로 끝없이 부르짖었다.
정치지도원의 손을 그러쥔 최진성의 손에 지긋한 힘이 마쳐왔다.
진성은 그것이 정치지도원의 마지막힘이라는것을 알수 없었다.
꺼져가는 심장의 박동이 마지막으로 뿜어낸 힘이 진성의 손을, 사랑하는 동지들의 어깨를 하나하나 억세게 포옹하고있다는것을!
《부중…대장…동…무…》
정치지도원이 숨소리같은 가냘픈 목소리로 석철룡을 불렀다.
한절반 제정신이 아닌듯한 석철룡이 정치지도원의 곁에 무릎을 꿇고앉았으나 《쁠류스안경》은 초점을 잃고 한참동안이나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쁜숨이 차오르는듯 괴롭게 가슴을 톺던 정치지도원이 푸 하고 긴숨을 내그었다.
《석발골에 가서… 약혼식을 잘…》
진성의 손을 아프게 조이던 힘이 끊어져나간것처럼 탁 풀리였다.
튀여나올듯이 활랑거리던 진성의 심장도 가슴천정 어디엔가 매달았던 끈이 떨어진듯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치지도원의 숨이 멎은것이다. 그가 죽은것이다.
방금전에도 병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던 그가 이렇게 죽다니!
항상 우리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던 그 밝은 눈을 이렇게 감아버리다니! 눈을 뜨라! 일어나라!
당신이 그처럼 사랑하던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고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당신은 그처럼 태연하게 누워서 보고만 있을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제 정치위원동지에게 무엇이라고 보고하란 말인가?!
당신을 이곳으로 떠밀어보내신 김정일동지께 무슨 말씀을 올리란 말인가!
이 무정한 《쁠류스안경》! 일어나라! 일어나라!
진성은 단 한마디도 입밖으로 터져나오지 못하는 이 웨침을 두손에 그러쥐고 자갈투성이의 땅바닥을 깨지라고 두드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더운 피가 끓던 심장이 멎고 사랑과 정이 흘러넘치던 두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잃는것인가.
그래 이제 우리가 자기 몸의 한부분과도 같은 전우를 제 손으로 땅에 묻어야 한단 말인가?! 그것으로 한 인간의 생이 영영 끝난단 말인가?!
아니다!
최진성은 소스라치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마음속으로 웨쳤다.
자기
《김철환!》하고 최진성은 평시에 별로 불러보지 못한 중대정치지도원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짖었다.
이제는 묘비에밖에 새길수 없게 된 그 이름을 자기의 심장속에 깊이깊이 쪼아박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