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회)

제 4 장

붉은 단풍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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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일수는 배우들과 헤여지는길로 협주단단장과 정치부장을 다시 만나 정설아가 평양철도국에 가게 된 사연부터 알아보았다.

《본인이 거기에 가있는데다… 평양철도국 정치부장동지가 하도 간청하기때문에…》

정치부장의 맥없는 대답이였다.

《그런데 본인이 왜 협주단에서 나가겠다고 했는지는 알아봤소? 리유가 있을게 아니겠소?》

《그에 대해선 우리도 잘 모르겠습니다. 리유가 불명확하기때문에 우리도 제대신청을 부결했댔는데 본인이 말도 없이 사라지는통에… 우리도 평양철도국에서 문건을 요구해서야 거기 가있는줄 알았습니다.》

로일수는 쓴입을 다시며 돌아섰다.

그들을 탓할것이 없다. 모든것은 아래단위에 대한 지도사업을 겉발림식으로 해온 자기의 결함이였다.

사람이 없어진것도 모르고있다니!

로일수가 착잡한 마음으로 협주단을 나서려는데 마주오던 김량남이 그를 붙들어세웠다.

《아니, 부국장동무가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한소나기 퍼부을 기색입니까?》

로일수는 김량남의 얼굴을 보자 아까 배우들이 하던 말이 생각나서 급하게 물었다.

《량남동무, 언제인가 무대직일을 서던 배우동무가 생각나오? 왜, 그때 어딘가 낯이 익다고 하지 않았소?》

량남은 고개를 기웃하더니 《아, 그 동무!》하고 이마전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 동무 이야기는 왜 갑자기? 참, 요즘은 그 동무 얼굴이 안보이더군요.》

그러니 결국 량남지도원도 처음 듣는 모양이였다.

《협주단에서 나갔다오. 무슨 감투끈인지 배우들은 그 동무가 량남지도원이 무서워서 나갔다고 하오.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김량남의 얼굴에 심각한 기색이 어리더니 한참만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동무가… 동북에서 왔다고 했지요? 그러니 그 처녀가…》

로일수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고 다우쳐물었다.

《이전에 내가 낯이 익다고 한것은 어렸을 때 머슴살던 지주집의 녀주인과 얼굴이 신통히 같았기때문이였습니다. 그 집에도 어린 딸이 있었지요. 아마 지금 살아있으면 그 처녀만큼…》

《그렇다면?…》

《하지만 그가 그 지주집 딸이 옳다고 해도 날 알아봤을리야 없지 않습니까? 내가 그 집을 나올 때 그 애는 겨우 세살이였는데요.》

로일수는 무엇인가 섬찍한것을 느끼며 신음소리같은것을 내뿜었다.

《됐소. 그건 내가 따로 알아볼데가 있소.》

그날 저녁 로일수는 정영묵상좌를 찾아갔다,

《정동무, 한가지 묻기요. 인민군협주단의 정설아동무를 알겠지?》

정영묵의 두눈이 한곳에서 굳어졌다.

《동무가 그의 삼촌이라고 하던데… 옳소?》

《예… 촌수로 보면… 하지만 별로 상대를…》

《어째서? 그가 지주의 딸이기때문이요?》

무섭게 쏘아보는 부국장의 눈길앞에서 정영묵은 허둥거리면서도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는 지주의 딸이 아닙니다. 다만 그의 어머니가…》

《어떻게 된것인지 솔직히 말하오. 난 다 알아야겠소. 정설아가 왜 협주단에서 나갔소? 무엇때문인가?》

정영묵은 고개를 푹 떨구고 10여년전 설아가 자기를 찾아 처음 나타났던 이야기며 그에게서 들은 자초지종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설아 어머니의 이름은 한소영이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소영은 13살부터 지주 라한방의 집에서 부엌데기로 일하였다. 청춘의 아름다움이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차례지는것이여서 하루 세끼 보리밥밖에 먹는것이 없는 소영이도 어느덧 아름답고 싱싱한 처녀로 자라났다. 허줄한 토스레옷도 처녀의 온몸에 부풀어오르는 봄물은 감추지 못했다. 소영이가 16살에 잡히자 라지주의 징그러운 눈길이 그의 몸에 걸탐스럽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눈치챈 행랑어미가 한마을에 살던 정영묵의 형 정영식과 몰래 짝을 지어주었다. 라지주는 주인도 모르게 벼락잔치를 한 소영에게 별의별 악담을 다 퍼부었지만 억대우같은 정영식이 무서워서 감히 손은 대지 못하였다. 얼마 안있어 소영에게는 태기가 생겼다. 그러나 그때 정영식은 우연히 유격대를 찾아간다는 청년들을 산속에서 만나 동생 정영묵과 함께 집을 떠났다. 갓 결혼한 소영에게 남긴것은 자기를 꼭 기다려달라는 한마디 말뿐이였다. 정영식의 형제가 산으로 들어간 그날부터 라지주는 소영에게 이제라도 자기의 첩으로 들어오라고 매일같이 치근거렸다. 그러나 소영의 몸에서는 이미 정영식이 남기고간 피줄이 숨쉬고있었다. 얼마후 설아가 태여나자 라지주는 아이의 목숨을 걸고 소영을 위협했다.

《우리 마을에 일본군대가 들어온걸 알지? 그들은 이 애가 혁명군을 찾아간 반일분자의 새끼라는것만 알면 당장 달려와 릉지처참을 하자고 할거야. 아직 젊디젊은 임자는 붙들어다 볼장을 볼거구… 그런즉 내 사람이 되면 아이도 그렇고…》

소영은 딸애를 둘쳐업고 야밤도주를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미리 예견하고 대문을 지키고있던 라지주의 졸개들에게 끝내 덜미를 붙잡혔다.

성이 독같이 오른 라한방은 씹어뱉듯이 뇌까렸다.

《내 이때까지 좋게 말했어. 네가 그렇게 독을 먹겠다면 나도 정을 돌보지 않겠다. 여봐라! 일본어른들에게 여기에 반일분자의 녀편네와 새끼가 있다고 어서 알려라!》

설아의 어머니는 어푸러지듯 라지주의 바지가랭이를 붙들었다.

그 자리에서 문설주에 이마를 쫏고 목숨을 끊고싶었으나 그의 등에서는 피덩이같은 어린 생명이, 결혼식도 못하고 정을 나눈채 나라를 찾으면 꼭 다시 오마 막막한 약속을 남기고 떠나간 남편의 일점혈육이 애처롭게 울고있었다. 녀인은 자기가 어떤 굴욕과 수치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아이만은 꼭 살려서 아버지에게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

일제가 패망하고 조국이 해방되였으나 정영식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때 정영식은 유격대를 찾지 못하고 온 동북땅을 헤매이다가 해방과 함께 조국으로 나와 뒤늦게라도 장군님군대가 된다고 하면서 보안간부훈련소에 들어갔고 정영묵은 입대나이가 채 못되여 고아들을 키우는 학원에 들어갔다. 보안간부학교졸업후 군관이 된 정영식은 기회가 생기면 동북으로 가서 처자를 데리고오겠다고 몇번이나 마음먹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채 조국해방전쟁시기 락동강에서 전사하였다. 그러나 수천리 이역땅에서 살고있던 설아의 모녀는 그 모든 사연을 알수 없었다.

한편 한소영이 작은댁으로 들어가 죽지 못해 살아가던 라지주의 집은 중국국내전쟁의 종결로 국민당이 망하자 하루아침에 풍지박산이 되였다. 라지주와 그의 일가식속들은 모두 《특별구역》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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