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 회)

제 4 장

붉은 단풍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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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아와 그의 어머니는 이전날의 머슴이였고 첩살이를 했다는데로부터 그들과 한부류로 치지는 않았으나 어느한 심심산골의 막바지로 옮겨앉게 되였다. 세월이 흘러 설아가 14살이 되던 해에 《특별구역》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나온 라한방이 그들이 살고있던 산골에 나타났다.

《난 대만으로 들어가겠어. 하지만 빈털터리로 갈수야 없지. 딸년을 내놔! 이년이라두 밑천삼아 한살림 꾸려야겠다.》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항거하였다. 강약이 부동이라 녀인은 라한방의 주먹질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라지주의 우악스러운 손이 설아의 연약한 팔목을 으스러지게 그러쥐였다. 그 순간 징그럽게 번뜩이던 라한방의 거적눈에 펑끗 불찌가 일더니 피줄이 쫙 돋아올랐다가 맥을 잃었다. 밑둥잘린 통나무처럼 방바닥에 털썩 넘어진 《아버지》의 뒤에 피묻은 식칼을 틀어쥐고 입술을 앙다문 어머니가 서있었다.

어머니는 설아에게 자기가 살아온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던 한생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고나서 딸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네 친아버지를 찾아 조선으로 가거라. 너의 아버진 살아있으면 분명 조선에 있을게다.》

《어머니두 같이 가시자요. 나 혼자선 싫어요.》

《아니다. 내가 지금껏 너를 붙들고있은건 먼길을 떠나보내기엔 너무 어렸기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떠나야 한다.》

어머니는 아직도 숨이 붙어 꿈틀거리는 라한방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무섭게 말했다.

《난 너의 아버지앞에 죄를 지었으니 여기서 이놈과 결판을 짓고 전생의 죄를 씻으련다. 어서 가거라! 어서!》

피묻은 칼날과 함께 시퍼런 불이 번뜩이는 어머니의 기상에 쫓기워 설아는 넋을 잃고 산으로 올랐다. 설아가 산봉우리우에 올라섰을 때 골짜기아래서는 삼단같은 불길과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로일수는 정영묵의 흐릿한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물었다.

《그런데 설아동무의 문건에는 왜 그런 사연이 하나도 없소? 그리고 일이 그렇게 되였다면 무엇때문에 량남지도원을 피해 달아났는가 말이요. 그에게 무슨 죄가 있소?》

정영묵은 어깨를 움츠리며 힘겹게 대답하였다.

《물론 그 애에겐 죄가 없지만 후날 일이 불거지면 그것을 누가 증명하겠습니까. 이것은 계급적원칙과 관련되는 문제이기때문에…》

《증명?!》

로일수의 커다란 주먹이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동무는 혹시 이 세상 사람들을 모두 어떤 줄간속에 칸칸이 세워놓고 들여다보는게 아니요? 자기 조카도 증명할수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책임지겠소?》

로일수의 마지막말은 정영묵에게 천둥소리처럼 들리였다.

로일수의 이야기를 주의깊에 듣고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쓰린 마음으로 깊은 사색에 잠기시였다.

리력기만…

도피…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일이지만 어째서 우리 사람들속에서 아직도 이런 일이 생겨나는것인가.

우리 당은 창건된 때로부터 근 25년동안 계급적원쑤들과의 끊임없는 대결을 벌려오면서도 개별적사람들의 운명을 출신성분이나 가정환경을 가지고 결정한적이 없었다.

아니, 그것은 25년전 해방산기슭에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멀리 백두산시절부터, 아니면 그보다 더 멀리 《ㅌ. ㄷ》에서부터 시작된 우리 수령님의 인간철학이였다.

수령님의 가까운 동지들속에서는 종교인도 있었고 대지주의 아들도 있었으며 적기관에서 복무하던 사람도 있었다. 과거 종파에 가담했던 사람도, 완고한 봉건가문의 후손도 있었다. 해방후에도 당과 정부의 주요직책에는 결코 자서전에 붉은색이 꽉 들어찬 사람들만 임명된것이 아니였다.

반공일선에 섰던 사람들, 공산주의를 달가와하지 않는 민족주의자들, 일명 량면파라고 부르던 지식인들…

그들모두에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의 마음 하나만 보고 혁명투쟁의 길에 한사람한사람 들여세우시였다. 수령님의 그 열렬한 조국애, 인간애가 우리 당의 군중로선의 핵으로 되였다.

이것은 결코 책우에 글자로 씌여진것이 아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희생까지도 동반하는 실천으로 그것을 지켜오시였고 이 땅에 현실로 꽃피우시였다.

몇해전 수령님께서 대수술을 받으시던 때의 일이 떠오르시였다.

그때 수술집도자로 선정된 한 의사는 친자식이 남반부에서 괴뢰군장성을 하는 사람이였다. 그런 사람에게 누구도 수술칼을 맡기자고 하지 않았다. 맡길수가 없었다. 오직 어버이수령님께서만이 그에게 자신의 생명을 통채로 내맡기시였다.

우리가 지식인들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때에 몸을 사리면 그것이 무슨 믿음인가. 나는 꼭 그 동무에게 수술을 받겠다. …

이렇게 흘러온 믿음의 력사, 이렇게 흘러온 인간사랑의 력사가 아직도 모자란단 말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난날 우리 당의 군중로선을 그릇되게 집행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준 반당종파분자들과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소행이 사람들에게 아직도 그런 의식을 남겨놓은것이라고 가슴아프게 돌이켜보시였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가 더는 문건속의 출신성분이나 가정환경이 되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오직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으로만 일관되여야 한다. 어떠한 편견과 오해도 이제 더는 사람의 운명을 마구 해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구스러운 기색으로 침묵하고있는 로일수에게 이제는 그 녀배우를 어떻게 하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제가 당장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인민군협주단에 인재가 모자라는 형편인데 전문교육을 받은 성악가를 철도승무대에서 써클이나 하라고 내버려둘수야 없지 않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이것은 결코 협주단의 대렬보충과 관련된 문제도 아니고 어떤 인재문제도 아닙니다. 내 생각에는 이 일에 부국장동무가 나서는것보다 김량남동무가 직접 가서 데려오는것이 더 나을것같습니다.》

로일수는 활짝 밝아진 얼굴로 그게 정말 좋겠다고 말씀올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께서 이제 집단체조시연회에 참가했다가 당대회참가자들의 숙소에 들려보고 곧장 진포쪽으로 나가야 하니 로동무는 김량남지도원을 찾아 급히 모란봉경기장으로 보내달라고 이르시고나서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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