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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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ㅎ시 구역인민위원회 보건부장 송은숙은 남편과 함께 친정어머니를 찾아왔다. 일흔돐생일을 맞는 어머니를 축하해주기 위해 며칠간 휴가를 받은것이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 맏딸, 맏사위는 응당 맏아들의 구실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동생에게 어머니를 부양시키고있는것이 언제나 마음에 걸린다면서 이번 어머니의 생일은 자기네가 전적으로 맡아서 축하연을 마련하겠다고 결심한 송은숙이다.

사실 친정어머니는 처음 그들이 모시고 살았었다. 그러나 막내딸이 지배인사업으로 늘쌍 나가살다싶이 한다고 걱정하던 어머니가 집이라도 봐주고 막내사위의 때식이라도 보장해주겠다고 이곳으로 온것이다.

젊은 시절 군인가족생활을 하면서 부업을 많이 해온 어머니여서 늘그막에도 땅냄새를 맡으면서 제 손으로 터밭도 가꾸고 집짐승도 기르고싶어서였다.

은숙은 이번걸음에 친정어머니는 물론 동생과 동생남편에게 단단히 인사차림하려고 마음먹었다.

도소재지의 어느 편직공장 기사로 일하는 그의 남편 조광문도 안해와 꼭같은 마음으로 처가집 걸음에 나섰다.

그들이 탄 차는 점심시간이 지날무렵 오리공장구역에 들어섰다.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차를 세우고 봉사시설이 분명한 옆의 건물로 들어가 기사장네 집이 어딘가고 물으려고 다가갔다. 이때 마침 그곳에서 잡지묶음을 든 젊은이가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은숙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저, 미안하지만 오리공장 기사장네 집이 어딘지 좀 알려주실수 없습니까?》

현숙한 부인의 점잖은 물음에 그 사람은 눈길을 돌리였다.

다음순간 은숙은 상대방이 자기를 보고 놀라는것을 느끼였다. 그제야 그도 상대방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보았을가? … 분명 인상깊은 얼굴인데… 넓은 이마랑 사색적인 눈길이라든가…)

생각을 더듬는데 그 사람은 조금 서두르는 기색으로 문화회관뒤켠으로 돌아가면 기사장네 집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인사말에 건성 대답하고는 곧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의 뒤모습을 지켜보던 은숙은 앞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걸어가는 그가 다름아닌 정의성임을 상기하였다. 순간 은숙은 다시금 놀랐다.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왔을가? …)

불안한 생각에 잠겼던 그는 남편의 부름소리를 듣고서야 돌아섰다.

《저기 문화회관뒤켠으로 가자요.》

그날 송영숙의 집은 명절분위기로 흥성거렸다.

맏딸, 맏사위를 맞이한 문춘실은 춤이라도 출듯 어깨바람이 나서 방안과 부엌을 오락가락하였다.

차짐칸에서 언니가 꺼내주는 지함이며 트렁크, 배낭들을 받아 집안으로 날라들이는 송영숙이도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그들은 모두 집안으로 들어갔다.

백상익은 오래간만에 찾아온 처형네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친형제라도 만난듯 조광문의 두손을 잡고 그냥 싱글벙글하였다.

키는 별로 크지 않지만 몸이 실하고 희여멀끔한 조광문은 백상익에게 자기대신 가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수고한다는 말을 몇번이고 곱씹었다. 처제인 송영숙을 보고는 《우리 기사장님》이라고 정을 담아 불렀다.

어느덧 떠들썩한 인사말과 함께 점심식사를 마치자 집안식구들은 아래웃방에 갈라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백상익과 조광문은 웃방에 마주앉아 최근 국내외정세며 사업상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주로 조광문이 말을 하고 백상익은 재미나게 들으며 이따금 한마디씩 소감을 끼워넣었다.

조광문은 10여년만에 2. 8비날론련합기업소에서 비날론을 생산하였는데 그 기쁨과 환희의 물결이 자기네 편직공장에도 흘러들어 기대마다 만가동되고 여러가지 편직물들이 많이 생산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이젠 우리 공장제품이 상점들에서 판을 치게 됐디요.》

평안남도태생인 조광문은 ㅈ를 ㄷ로 발음하면서 신이 나서 말했다. 이따금 엄지손가락을 내들고 시틋한 표정을 지으며 오래지 않아 모든 지방산업공장들이 활성화될것이라고 뻐기듯이 말하였다.

남편들이 웃방에서 자기들이 관심하는 문제들을 화제에 올릴 때 아래방에서는 은숙이 지함이며 트렁크며를 헤쳐놓고 어머니와 동생에게 이것저것 나누어주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송영숙은 언니가 준 공작색의 세타와 두 딸애의 나리옷이며 남편의 양복천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문춘실은 맏딸이 품들여 마련했다는 커다란 함박꽃문양이 새겨진 두툼하고 폭신한 담요를 펼쳐보며 끌끌 혀를 찼다.

은숙은 연보라색바탕에 은실로 꽃수를 놓은 치마저고리를 어머니앞에 내놓으며 한번 입어보라고 말했다.

《생일날에나 입지 오늘이야 뭘…》

문춘실은 손사래를 치며 물러앉았다. 그러나 두 딸이 저저마다 치마와 저고리를 펼쳐들고 일어나 어머니를 단장시켰다.

은숙은 지함속에서 굽이 낮으면서도 고급해보이는 밤색구두까지 꺼내신겨준 다음 거울앞에 내세워주었다.

거울에 비쳐진 자기의 모습에 문춘실은 한동안 어리둥절하였다가 인츰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황황히 옷을 벗으려던 그는 딸들의 고집에 떠밀려 사위들앞에 나섰다.

백상익과 조광문은 박수라도 칠듯 기뻐하였다.

《이자 보니 우리 어머니 젊었을적엔 수태 고왔겠소. 지금두 새색시처럼 환하지 않소. 내 말이 틀리우?》

조광문의 말에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백상익도 치마저고리를 입은 가시어머니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싱글벙글하였다.

온 집안에 웃음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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