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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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잠시후 송은숙과 송영숙 두 자매는 다정히 마주앉아 콩나물과 버섯을 손질하며 즐겁게 소곤거리였다.
한개 구역의 보건부장과 큰 공장의 기사장이라는 쉽지 않은 사회적직위를 가진 그들이지만 아래방에 마주앉으니 그지없이 평범하고 소박한 녀인들이였다.
생김새나 성격이 조용하고 목소리까지 찹차분한 은숙은 이따금 젖먹이 은아를 껴안고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바빠두 6개월동안은 꼭 젖시간을 지켜라. 뭐니뭐니해두 엄마젖 이상 없단다. 엄마젖에는 영양성분만이 아니라 소아질병을 미리 막는 항체라는 성분이 있기때문에 그걸 먹어야 아이가 건강하단다.》
은숙은 오랜 의료일군이며 자기 산하에 탁아소를 두고 보육원들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보건부장답게 어린이보육과 영양관리, 위생학에 대하여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그는 이따금 품에 안긴 아이를 내려다보며 정겨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겨우 넉달 잡힌 아이는 순한데다가 잠도 잘 자고 방긋방긋 잘도 웃는것이 여간 이쁘지 않았다.
두 아들을 키워 맏이는 콤퓨터대학으로, 둘째는 인민군대에 내보낸 은숙은 어머니와 동생만 승인한다면 경아든 은아든 두 아이중에서 한애라도 데려다가 키우고싶었다.
한동안 가정생활이며 공장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던 은숙은 얼마후 심중해진 눈길을 들었다.
《영숙아! 나 오늘 그 사람 봤어.》
별스레 긴장해진 눈빛으로 웃방쪽을 쳐다보며 속삭이듯 말하는 언니를 보고 송영숙은 의아해졌다.
《그 사람이라니? 누구 말이예요?》
《그 사람 말이야, 정의성이라구… 헌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을가? …》
유순해보이는 그 얼굴에 불안까지 비낀것을 보고 송영숙은 빙긋 웃었다.
《그렇게 됐어요. 내가 공장에 오니 벌써 여기에 와있더군요. 지금은 기술준비소에서 일하구있어요.》
송영숙은 무척 례사롭게 말했다. 그럴수록 은숙의 눈은 더욱 커졌다.
《기술준비소?》
은숙은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히 물었다.
《경아 아버진 그 사람을 모를테지?》
그는 제발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목소리까지 죽여가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경아 아버진 그 사람을 이미전부터 알고있어요. 나에게 그의 일을 잘 도와주라고 고무해주는데요 뭐.》
동생의 대답에 은숙은 곧 아연해졌다.
그는 동생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윽고 눈길을 떨구고 쌔근쌔근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았다. 그에게는 동생이 자기의 개인생활에 대하여 경솔하게 남편앞에 터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감정을 너무도 무시하는게 아닐가 하는 우려감도 들었다.
한동안 은숙은 말없이 버섯을 다듬었다. 마음속으로는 하많은 말들이 울리였다. 잠시후 다시 말꼭지를 떼였다.
《영숙아! 난 그 사람때문에 너의 부부간에 조금이라도 간격이 생길가봐 걱정이구나. … 어떻든 사소하게나마 남편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매사에 주의해라.》
그의 어조는 자못 간절하였다.
언니의 말에 송영숙은 여전히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언니! 우리 경아 아버진 그렇게 옹졸하구 편협한 사람이 아니예요.》
그는 남편의 인간됨을 확신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하지만 은숙은 교훈적인 사랑철학을 또다시 강조하였다.
《장담하지 말아. 사랑과 질투는 쌍둥이형제라구 하지 않니?》
언니의 진지한 충고에 송영숙의 얼굴은 그제야 심중해졌다.
《걱정말아요, 언니! 내 맘속에서 그 사람은 허울만 남았어요.》
침착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눈가에서 예리한것이 번쩍했다.
은숙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너두 보통 독하지 않은 녀자구나. … 내 그런걸 괜히…)
은숙은 동생의 진속도 모르면서 그의 오래적상처를 건드렸다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수정이까지 찾아와 집안의 분위기는 더욱더 흥성거리였다.
수정은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은숙을 부둥켜안고 돌아갔다.
저녁부터는 아예 부엌을 독차지하고앉아 집안식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다. 몸이 가볍고 손기빠른 그는 제법 대가정의 맏며느리처럼 열심히 생일음식을 만들기도 하였다.
다음날은 문춘실의 생일 일혼돐이였다.
초여름의 무더운 날씨였지만 간밤에 소나기로 말쑥하게 목욕을 한 대기는 여느때없이 맑고 청신하였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건강과 장수를 축복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였다.
점심시간에는 옆집에서 사는 할머니와 진료소의사인 리윤옥이 그리고 지배인의 안해와 뒤집에서 사는 전 공장탁아소 소장이 문춘실의 초청을 받고 그의 집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