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6
(1)
송영숙은 어머니의 생일 다음날 언니와 아저씨 그리고 남편과 함께 호수가로 나갔다.
언니와 아저씨에게 공장구경도 시키고 또 호수가에서 점심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도록 하고싶었다. 먹성인자연구를 시작하기 바쁘게 귀중한 시간을 잃는것이 몹시 안타까왔지만 다음날부터 기어이 봉창하려고 속다짐을 한 그였다.
송영숙은 어머니에게 아이들도 모두 데리고 나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문춘실은 늙은이와 아이들은 짐이 된다면서 눈을 꾹 감고 어서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백상익과 조광문은 자전거를 타고 한발 앞서 호수가로 나갔다. 그들의 자전거바구니들에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가득 담겨져있었다. 아침시간에 백상익은 안해에게 점심식사에 오리훈제와 송화란을 빼놓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남편들이 자전거를 타고 호수가로 떠난 다음 송영숙은 언니와 나란히 집을 나섰다.
6월의 하늘은 더없이 맑고 청신하였다.
도시생활이 몸에 배인 은숙은 차림새에 무척 마음을 썼다. 그는 검누런 눈보호안경에 미색의 커다란 리봉이 달린 해가림모자를 쓰고 나섰다.
문춘실은 작은딸에게도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지만 송영숙은 그냥 푸른색샤쯔차림을 하였다.
송영숙은 언니와 나란히 걸으면서 공장의 규모와 생산능력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은숙은 동생의 말을 들으며 닭공장에 비하여 오리공장이 비할바없이 크고 그 력사 또한 간단치 않은데 대하여 감탄하였다. 한편으로 이렇게 큰 공장의 생산과 기술을 책임진 동생이 한없이 미더웁고 돋보이였다.
그는 동생의 얼굴이며 몸차림에 대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다.
몸차림에 별로 관심을 돌리지 않았지만 처녀시절보다 몸이 나고 성격도 활발한 동생은 어느모로 보나 큰 공장의 일군답게 품위있고 세련미가 풍기고있었다.
연하게 화장을 한 그의 얼굴은 언제봐야 정숙하면서도 우아해보이였다. 젊음과 건강의 표징인 숱이 많고 윤기흐르는 검은 머리는 그의 아름다움을 더욱 북돋아주었다.
은숙은 정찬 눈길로 그를 건너다보며 감심한 어조로 말했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공장을 돌아보니 네가 더 돋보여. 아마 이런 큰 공장에서 기사장으로 일하는 녀성은 몇명 안될거야. 오늘과 같은 정보산업시대에 실력가형의 녀성기사장이 어디 쉽니? 그래서 난 네 일이 더 잘되기를 바라게 되누나.》
문득 어머니의 생일날에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때 집식구들은 온다간다 소리없이 사라진 동생때문에 모두가 불만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였었다.
《도대체 어데 갔을가? 도무지 집생각은 안중에도 없다니까.》
어머니까지도 눈살을 찌프리고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백상익만은 안해의 바쁘고 힘든 사업에 대하여 그들에게 리해시키면서 집안분위기를 호전시키려고 애썼다.
《이제 들어오겠지요. 오죽 바쁘면 어머니생일이란것두 잊겠나요?》
은숙은 백상익을 류다른 눈길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남편과 비교해보았다.
그의 남편 조광문은 무척 섬세하고 살뜰한 반면에 가정생활에서 자기본위주의가 무척 강한 사람이였다. 그는 세대주의 사업에 안해가 철저히 복종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또 그렇게 요구하고 복종시키군 하였다. 그리하여 은숙은 지금도 남편의 표정 하나, 말투며 음조에까지 마음쓰면서 남편의 마음이 상할세라 보살피고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가정생활에서 무한정 자유분방하였다.
근심스러운것은 동생이 바쁜 사업을 구실대면서 모든것을 어머니에게 밀어버리고 순간이나마 남편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주지 않을가 하는것이였다.
친정어머니의 말대로 아들 하나 낳아주지 못하면서도 남편의 보살핌과 리해만을 바라고 도리여 자기에게 관심해주기만을 원한다면 백상익은 얼마나 서운하고 허전할텐가.
그 서운한 마음이 쌓이고쌓여서 행복한 가정에 실금이라도 간다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남편에게 성의를 다해라. 가정생활과 부부생활에 충실한것도 훌륭한 녀성의 품성이란다.》
은숙은 어린 동생을 타이르듯 조용히 말해주었다.
《부부간이라고 해서 사랑의 감정이 절로 지속되는건 아니더구나. 사랑의 기초가 아무리 든든해두 서로가 사랑을 받기만 하고 그걸 소홀히 여기면 거기엔 꼭 금이 가게 되는 법이야. …》
송영숙은 언니의 진정이 담겨진 말을 가슴속깊이에 간수하였다.
《사랑철학》을 가르치는 언니의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때문이였다. 그 마음 역시 사랑이 아니던가. 동생의 영원한 행복을 바라는 다심한 사랑…
어느덧 그들은 호수가에 이르렀다. 자전거를 타고 먼저 나와 기다리는 남편들을 만난 은숙과 송영숙은 함께 호수가방뚝에 올라섰다.
그들의 눈앞에는 황홀경이 펼쳐졌다. 드넓은 호수가 물면이 아침해빛을 받아 은구슬을 뿌린듯 눈부시게 반짝이는데 호수건너편 메고치의 푸른 솔숲에는 수백마리의 백로가 내려앉아 마치도 흰눈이 내린듯 새하얗게 보였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백로살이터가 있는 메고치의 솔숲에는 해마다 수백마리의 백로들이 날아와 호수의 물과 고기를 먹으며 봄과 여름을 보내다가 가을이 오면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군 하였다.
정결함과 아름다움의 세계를 펼쳐놓은 호수가를 둘러보며 은숙과 조광문은 감탄을 터뜨렸다.
어느덧 그들은 발동선에 올랐다. 유람선마냥 화려하게 꾸밈한 발동선에 오른 그들은 다같이 감개무량한 눈길로 호수가를 둘러보았다.
푸른 물결우에 두둥실 떠실려 흰파도를 일으키는 발동선우에 백로 두마리가 날아와 손님들을 반기듯 끼륵끼륵거렸다.
《멋있어! 정말 기막힌 경치거던. …》
조광문은 몇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이윽고 배에서 내린 그들은 메고치의 솔숲길을 따라 한동안 내려가다가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반쯤 누워있는 옆에 자리를 잡았다.
호기심이 남다른 조광문은 호수가물속에 뿌리를 박고 실실이 푸른 가지를 물결우에 드리운 그 버드나무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어떻게 물속에 뿌리를 내렸을가? 신기하기란 참…》
그의 말을 들으며 백상익은 빙긋이 웃었다. 그는 조광문에게 버드나무에 깃든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전쟁이 끝난 그해 가을 물새들의 울음소리 처량하던 이른새벽, 여기 호수가에 찾아오셨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