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11
(1)
《봄순이 잔치날을 참 잘 받았지요?》
봄순이 잔치날 아침 서정옥은 가을해빛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녀학생처럼 기쁨에 넘쳐 말했다.
(류달리 맑고 따뜻한 이 날씨도 신랑신부의 행복을 축복해주는게 아닐가?…)
봄순의 친언니가 되여 첫날 이불도 꾸며주고 하늘나라 선녀들의 날개옷과 같은 분홍빛치마저고리를 밤을 새워가며 손질해준 서정옥이다.
정옥이만이 아니였다.
잔치를 주관하는 방인화의 지령에 따라 방송화와 방옥화도 두팔걷고 나섰다. 걸싼 일솜씨로 소문난 방옥화는 부엌에 틀고앉아 이래라저래라 훈시질을 하면서 료리솜씨를 자랑하였다.
방송화는 방송화대로 신부를 단장시키느라 있는 재간을 다 발휘하였다.
워낙 본판이 고운데다가 방송화의 손에 닥달된 봄순이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다 입을 딱 벌리게 했다.
《저 푸른 호수가 안아올린
자칭 봄순의 큰아버지라고 하는 종금2직장장은 봄순이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녀인들은 봄순이를 보고 금강산팔선녀가 울고가겠다며 입을 모아 혀를 찼다.
공장사람들은 일 잘하고 마음씨 고운데다가 친어머니를 일찍 잃은 봄순이가 보급원인 새 어머니의 손에서 공장총각에게 시집을 간다는 여러가지 뜻깊은 사연들을 모두 합쳐서 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집과 마당에는 신랑신부를 축하하려고 찾아온 사람들로 흥성거렸다. 집안과 마당가에 풍기는 잔치음식의 맛스러운 냄새며 푸짐한 식탁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더 들뜨게 했다.
누구나 얼굴이 벌깃해졌고 즐겁게 목소리를 높였다.
부엌에서는 동네녀인들의 웃음소리로 들썩했다. 온 동네가 잔치바람에 들떠서 색시구경하느라 분주히 오락가락하는것같았다.
동네아이들도 모두 모여와 어른들의 짬새를 누비며 좋아라 깔깔거리였다. 무슨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잔치상에 놓인 큰 물고기를 가리키며 박제품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잔치상은 마당 한켠 대추나무아래에 갈노전을 깔고 그우에 차리였다.
잔치구경을 왔던 녀인들은 큰상을 보더니 닭대신 오리를 놓았다고 속살거렸다. 그들의 말을 엿들은 방인화는 《오리 키우는 사람이야 잔치상에두 제 기르는 오리를 놓아야지 아무렴 닭을 놓갔소?》하고 한마디 툭 내던졌다.
그의 말에 녀인들도 머리를 끄덕거렸다.
호수건너편에서 사는 신랑 진철이 배를 타고 종금1직장장 임광일과 그 직장에서 수리공으로 일하는 사촌형과 함께 신부네 집에 도착한것은 점심시간이 가까와올무렵이였다.
종금2직장장이 벌깃한 얼굴로 1직장장의 왕림을 축하한다면서 어떻게 둘러리자격을 땄는가고 롱조로 물었다.
《일 잘하는 관리공이 우리 마을로 시집온다기에 오늘부터 아예 우리 직장사람으로 만들자구 왔네. 무슨 의견 있나?》
임광일이 무슨 큰 횡재라도 한듯 뻐기면서 물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임광일은 신랑과 신부네 잔치상을 대비해보겠다면서 큰상앞에 다가가 뒤짐을 턱 짚고 섰다. 그는 살찐 오리를 올려놓은거랑 어쩌면 신랑네와 꼭 같은가고 하며 네모진 얼굴을 건듯 쳐들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또다시 즐겁게 웃었다.
이윽고 신랑 진철이 봄순이와 함께 큰상을 받았다.
백상익이 내놓은 옷감으로 양복을 해입은 리병우는 사람들에게 끌려 마당가로 나왔다.
진철은 봄순이와 나란히 서서 첫잔을 정히 부어 봄순의 아버지에게 드리였다. 딸과 사위의 잔을 받는 리병우의 손은 가늘게 떨리였다. 그는 저만이 알게 뭐라고 말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잔을 입에 가져갔다.
사람들은 그가 분명 《행복하거라. 부디…》하고 말했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봄순이가 흑- 하며 어깨를 떨었다.
잔치구경으로 들썩하던 사람들은 리병우와 봄순이를 보며 눈을 슴뻑거렸다. 녀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저마다 눈굽을 찍었다.
방인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다들 왜 그러나? 응? 이 좋은 날에… 봄순아! 웃어라! 봄순이 아버지도 웃으라구요. 이 기쁜 날에 웃지 않으문 언제 웃갔소?》
그러나 방인화의 눈가에도 맑은것이 그렁그렁 고여있었다. 그는 손등으로 량볼을 슥슥 문대며 말했다.
《봄순아! 이번엔 어머니에게 잔을 드려라. 어서!》
푸른빛바탕에 연분홍꽃무늬가 있는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차수정이 상기된 얼굴로 그들앞에 나섰다. 녀인들은 어머니와 딸이 자매같다고 속살거리다가 방인화가 눈을 흘기는통에 어깨를 움츠렸다.
봄순이와 진철이는 또다시 맑은 잔에 술을 부어 수정에게도 드리였다.
《어머니!…》
봄순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으나 끝내 뒤말은 잇지 못했다.
잔을 받은 수정이도 달아오른 얼굴로 머리를 끄덕끄덕하다가 그만에야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사람들의 뒤켠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정의성은 목이 꺽꺽 막히는 감을 느끼였다. 옆에 선 안해도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인간들의 정이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것인가. 사람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봄순이네 온 가정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