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13
(1)
송영숙은 점심시간이 되기 바쁘게 운수직장으로 향했다.
그의 온몸은 땀에 떠있었다. 1년중 어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지만 요즈음처럼 바쁜 때도 쉽지 않았다.
설전까지 군안의 협동농장들에서 받게 되여있는 계획분 배합먹이를 전량 집중수송해야 하였다. 생산지휘를 하면서도 주변농장들에 나가 수송에 대해 알아보고 공장에 들여온 알곡사료를 보관하기 위한 전투를 하느라 눈코뜰새가 없었다.
배합먹이수송뿐이 아니였다. 오리깔개짚도 이 계절에 마련해놓아야 한다. 농장들과 계약된대로 오리배설물을 거름용으로 넘겨주고 대신 오리깔개짚을 들여오게 되여있지만 그것도 계획대로 잘 진척되지 않았다.
불비한 운수수단때문에 속이 까맣게 타서 뛰여다니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송영숙은 어느 하루도 먹이유인제를 찾기 위한 연구를 중단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점심시간을 리용해서 실험실로 가는 길이였다.
배합먹이직장의 창고를 돌아보고 운수직장으로 향하던 송영숙은 멀리에서 자전거를 타고오는 정의성을 띄여보았다.
요즈음엔 시험호동에 나가보지 못하여 망간토를 찾았다는 소식도 남편과 유상훈박사를 통해 전해듣다보니 정의성을 만나본지도 퍼그나 되였다.
《…사람이 괜찮더구만. 지성인답게 점잖은데다가 정열도 있구… 어떻든 힘을 합쳐서 첨가제를 꼭 성공시키오. 집생각을 아예 말구.》
출장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정의성을 만나본 남편은 이렇게 말하면서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송영숙은 남편의 말을 새겨보며 망간토를 찾아낸 그를 축하해주고 신심을 주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큰길을 따라 달려오던 정의성의 자전거는 가공직장옆길로 쑥 들어가버리는것이였다.
송영숙은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의성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과학과 기술앞에 성실한 그였다.
송영숙은 생활에서 눈물이 없는 녀성과 눈물이 헤픈 남성을 싫어하였다.
녀성은 녀성답게 자애롭고 다심해야 하고 남성은 남성답게 억세고 웅심깊어야 한다는것이다.
그는 또한 직위의 높이를 인간의 높이로 생각하면서 무턱대고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낮추는 사람도 경멸하였다.
송영숙의 마음속 기준으로 볼 때 정의성은 결코 사나이답게 활달하거나 호탕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까다롭고 매정스러웠지만 자기의 리상과 목표가 뚜렷하고 명백하였으며 생활에서도 시시하거나 잡스럽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해도 쪼물짝하고 쬐쬐하지도 않았다.
그의 인간됨에 대하여 되새겨보던 송영숙은 멀리로 사라져가는 정의성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정의성동무! 망간토를 찾아낸 동무를 축하해요. 그리고 동무의 연구가 더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래요.》
이윽고 송영숙은 운수직장안으로 들어갔다.
실험실에 들어선 그는 창문과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은 다음 선풍기의 스위치를 넣었다. 위잉- 소리를 내며 선풍기가 바람을 일구었다. 순식간에 실험실안에 찬바람이 휘몰아치며 모든것을 랭랭하게 얼구었다.
송영숙은 저도 모르게 몸을 옹송그리며 솜옷자락을 여미였다. 그러나 선풍기를 끄고 문을 닫을수는 없다. 페설물의 독성을 조금이라도 제거하기 위해서는 실험 전기간 배풍상태를 소홀히 하면 안되였다.
송영숙은 목수건을 풀고 마스크를 낀 다음 페설물이 담겨진 유리용기를 교반기쪽으로 날라왔다.
그는 스위치를 넣은 교반기에 페설물을 조금씩 넣었다.
잠시후엔 가성소다용액도 넣으며 반응상태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교반기가 뚝 멎어버렸다. 기승스럽게 바람을 일구던 선풍기도 암전해졌다.
(정전이구나! …)
송영숙은 이마살을 찌프리며 어깨를 떨구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연구조건은 점점 어려워졌다. 우선 추위를 이겨내기가 제일 힘겨웠다.
그러나 더 어려운것은 정전이 되여 설비가 멈춰서는것이였다.
(빨리 전기가 와야겠는데…)
그렇다고 앉아서 기다릴수는 없었다. 송영숙은 와락와락 솜옷을 벗은 다음 세타를 입은 오른팔을 높이 걷어올렸다.
그다음 교반기앞으로 다가가 그안에 손을 쑥 밀어넣었다. 페설물에 가성소다용액을 넣은 걸쭉한 액체가 피부에 닿는 순간 송영숙은 자라목처럼 몸을 옹송그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입술을 옥물고 교반기의 날개를 잡은 다음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얼마쯤 지나니 피부의 감각이 마비되였는지 차거운 느낌은 사라지고 대신 뼈마디가 욱신욱신 저려들면서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교반기의 날개를 놓지 않고 그냥 돌리였다.
한동안 페설물의 반응상태를 살펴보며 교반기를 돌리던 그는 문가에서 들려오는 당비서 김춘근의 목소리에 눈길을 들었다.
《날씨가 찬데 문은 왜 열구있습니까! 아이구! 이 추운 날씨에 팔까지 걷어올리고…》
당비서는 예상 못했던 광경앞에서 눈이 커진채 굳어지였다.
송영숙은 열적은짓을 하다가 들키운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며 황황히 일어났다. 그가 서둘러 찬물에 팔을 씻고 팔소매를 내리는것을 지켜보던 김춘근당비서는 아낙네들처럼 끌끌 혀를 차기까지 했다.
송영숙이 솜옷을 입고 목도리까지 두르는것을 보고서야 당비서는 실험실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낯익은 점심밥꾸레미가 들려있었다. 당비서는 그 꾸레미를 실험탁우에 올려놓고 말없이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이때 전기가 왔는지 멈춰섰던 선풍기가 다시금 윙- 소리를 내며 바람을 일으켰다. 교반기도 여봐란듯 빙빙 돌기 시작했다.
송영숙은 당황한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쪽저쪽 스위치를 끈 다음 의자를 내놓았다.
《여기 앉으십시오.》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당비서는 자기와 눈길을 마주하기 저어하는 기사장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무척 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점심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집에서 나오다가 경아 할머니를 만났기에 내가 가져다주겠다구 했지요. 그런데 늘 이렇게 추운 방에서 점심식사를 하구 밤늦게까지 연구를 합니까?》
그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다시금 실험실안을 둘러보았다.
그는 송영숙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사장이 지금 남모르게 무슨 큰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애써 숨기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