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8 회)

제 5 장

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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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송영숙은 그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수정이도 오래지 않아 엄마가 되겠구나. … 어머니가 된다는건 녀성으로서 제일 큰 행복이지. … 오늘은 정말 기쁨도 크고 생각도 많아지는 날이구나. … 사랑과 행복, 행복과 사랑…)

그는 홀로 빙긋이 웃었다.

잠시후 그는 시험호동에 들려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수정의 말대로 몇달째 그곳에 가보지 않았으니 정옥이랑 모두들 서운해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성이 지금 큰단백풀시험포전건설에 동원되고있어서 그동안 거기에서 어떻게 일하고있는지도 궁금하였다.

시험포전건설이 끝나면 망간토운반도 조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는 어지럼증때문에 다시 주저앉았다.

(내가 왜 이럴가? 이러다가 정말 쓰러지지 않을가? …)

수정이만이 아니라 요즈음엔 만나는 사람마다 그저 몰라보게 수척해졌다는것이 인사였다.

어머니도 남편도 벌써 몇번이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었다. 그때마다 송영숙은 시간을 내보겠노라고 대답하군 했다.

사실 그는 자기의 몸이 허약해지는 원인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해를 넘기며 진행되는 실험으로 그의 육체는 나날이 더 쇠약해졌던것이다. 이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이러다가 혹시…)

다음순간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지난 겨울에는 추위때문에 가끔 배풍상태에 무관심했는데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의 경험에 기초하여 실험과 연구를 치밀하게 조직하면 더이상 다른 일이 없을거라고 자기자신을 위안했다.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천천히 시험호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험호동은 여느때없이 조용하였다. 둘러보니 새로 온 관리공처녀는 놀이장 한켠에 앉아 수채를 가셔내고있었다.

놀이장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송영숙은 가느다란 흐느낌소리와 함께 서정옥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목소리는 문을 닫은 먹이조리실안에서 울리고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

정의성은 오늘도 시험포전에 나가있을텐데 누구와 설분을 토하고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뇌리를 쳤다.

그는 조심히 먹이조리실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오빠! 그게 거짓말이 아니지요? 기사장동지가 오빠를 창고작업반으로 내보내고 우리 일철이 아버지도 시험포전에 내보냈다는거 말이예요. …》

《?!》

송영숙은 힘껏 귀뺨을 맞은것처럼 흠칫 몸을 떨었다. 하면서도 온몸이 긴장해지는것을 느끼였다. 정옥이와 마주앉은 사람은 서정관이 분명했다.

송영숙은 며칠전에 행정처벌을 받은 서정관이 누이동생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고싶었다.

《됐다. 그만하라는데… 누가 처벌 주었든 내가 잘못한거야 사실이 아니냐? 그런데 뭘 자꾸…》

서정관이 무척 리해성있게 말했으나 정옥은 어거지 센 아이처럼 도리질을 해댔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이건 앙갚음이예요. 형님이 말하지 않았나요? 기사장동진 지금 우리 일철이 아버지와 오빠한테 앙갚음을 하구있다구요.》

《?!》

송영숙은 또다시 흠칫 몸을 떨었다.

(앙갚음이라니? 도대체 무슨 앙갚음이란 말인가? …)

그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의혹에 찬 물음에 대답하듯 정옥은 말을 이었다.

《오빠도 말하지 않았나요? 기사장이 전국보여주기에 나서게 된 우리 일철이 아버지의 뒤다리를 잡았다구요. 그뿐이나요? 일철이 아버지가 하는 첨가제연구까지 가로채구있지요? 실험실까지 따로 꾸려놓구요.

하면서도 망간토운반은 뒤전에 미루고 남편을 또 시험포전건설에 내보냈으니 세상에 이렇게 분한 일이 어디에 있나요? 예? 그러고도 모자라서 오늘은 오빠까지…》

서정옥은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가며 말했다.

오해나 억측에도 나름의 론리가 있었다.

송영숙은 그만 눈을 꼭 감았다. 너무도 억울하고 분해서 심장이 와짝 저려들었다. (오해란 이렇게 무서운것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정옥의 오해는 결국 오빠를 배합먹이직장으로 내보낸것을 계기로 폭발한것이다.

안에서는 서정옥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그냥 울리고있었다.

《난 기사장동지를 꼭 만나겠어요. 만나서 다 말하겠어요. 오늘 저녁에라도 찾아갈테야요. …》

송영숙의 가슴에서 울컥 분기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문앞으로 다가가 문기척소리를 크게 낸 다음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조리실에 들어서는 기사장을 본 서정관의 얼굴은 금시 새하얗게 되였다. 엉거주춤 일어선 그는 눈건사를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지 몰라 허둥거렸다.

당장이라도 기사장을 찾아갈듯 하던 정옥이도 땅속에서 불쑥 솟구친듯 눈앞에 서있는 송영숙을 보고 우뜰 놀라더니 창문쪽으로 반쯤 돌아섰다.

송영숙은 여유작작한 자세로 구석쪽에 놓인 의자를 끌어당겨 정옥을 향해 앉았다.

《정옥동무! 수고스럽게 찾아다닐 필요는 없게 됐군요, 이렇게 내 발로 찾아왔으니까요. 그러니 어서 내앞에서 다 말해봐요. 어서요.》

그는 침착한 눈길로 정옥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동무가 어쩌면 나를 그렇게 오해할수 있어요? 난 조금도 동무를 나쁘게 생각지 않는데 동문 어쩌면 그렇게도 나를…)

서정옥이와 직접 마주서고보니 문밖에서와는 달리 그에 대한 친근감이 살아났고 마음도 한결 평온해지였다. 그리고 오해속에서 몸부림치고있는 그가 측은해졌다.

서정관이 없다면 친동생처럼 껴안아주면서 눈물도 씻어주고 오해를 풀도록 따뜻이 위로해주고싶었다. 하지만 구차하게 자기 변명은 하고싶지 않았다. 오해를 푸는 열쇠는 말이 아니라 시간과 생활이 해독제가 아니던가.

정옥이도 송영숙을 보자 제나름의 설음이 북받쳤는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동실한 어깨를 떨었다. 방안엔 그의 흐느낌소리만 들렸다.

그럴수록 서정관은 더욱더 따분하여 쩔쩔매였다.

《더 할 말이 없다면 난 돌아가겠어요.》

잠시후 송영숙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나에 대한 평가는 정옥동무한테 다 맡기겠어요.

하지만 이것만은 명심하세요. 나쁜 생각은 품고있는 사람에게 더 해롭다는걸 말이예요.》

송영숙은 들어올 때처럼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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