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0 회)

제 5 장

사랑의 힘

7

(1)

 

《영숙아! 영숙아!》

수정은 앞서걷는 송영숙을 소리쳐 불렀다. 했으나 송영숙은 한번 뒤를 돌아보며 빙긋이 웃고는 그냥 산비탈로 올라갔다.

아름드리나무등걸에 발이 걸채이고 풀덤불이 우거진 산길은 험하기 그지없다.

(왜 하필 이런델 왔을가? …)

수정은 앞서가는 송영숙을 원망스럽게 흘겨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를 불렀다.

《영숙아! 같이 가자!》

하지만 아예 들은척 하지 않고 그냥 산으로 오르기만 하는 영숙이…

수정은 너무도 힘들어 풀썩 앉아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뽀얀 안개발이 펼쳐지면서 송영숙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수정은 덜컥 겁이 났다.

《영숙아! - 영숙아! -》

그는 또다시 손나팔을 불며 찾고 또 찾았다.

한동안 여기저기 헤매다가 보니 눈앞이 탁 트이면서 드넓은 꽃밭이 나타났다. 송영숙은 그 꽃밭 한가운데 있었다. 그는 여기저기 오가면서 한송이 두송이 꽃을 꺾고있었다.

《야! 장미꽃!》

수정은 아름다운 빨간 장미꽃을 보고 환성을 질렀다.

그는 송영숙에게 다가갔다.

《너 여기서 혼자 꽃을 꺾댔니?》

그런데 송영숙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다.

《너 왜 그러니? 고운 꽃을 꺾으면서 왜 울어, 응?》

그러자 송영숙은 눈굽을 닦으며 말했다.

《내가 이 꽃을 꺾으려구 얼마나 애썼는지 아니? 벌써 몇년째 이 산판을 헤맸단다. 넌 다 모르지?》

수정은 송영숙의 몸을 살펴보았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도 쇠약했다.

《그러니 이 꽃밭을 찾느라 몸이 이 지경이 됐단 말이야?》

수정이 묻자 그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수정은 송영숙이 꺾은 꽃송이들을 만져보았다. 그런데 그의 손이 닿자마자 꽃송이들은 가루처럼 부서지는것이였다.

《영숙아! 이게 왜 이럴가? 왜 다치면 이렇게 다 부서질가? 이건 꽃이 아니구나. 다 버려! 어서!》

그러나 송영숙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야, 이건 귀중한거야. 절대로 버리면 안돼.》

송영숙은 부서진 꽃송이들을 손바닥에 주어담았다.

하는수없이 수정이도 꽃송이들을 손바닥에 주어담기 시작했다.

한동안 오락가락하다가 살펴보니 또다시 송영숙이 없어졌다. 수정은 목놓아 불렀다.

《영숙아! 영숙아!》

그런데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가지 않는다. …

목이 터져라 부르며 태질하던 수정은 남편이 자기를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깨여나보니 꿈이였다.

(무슨 꿈이 이럴가? …)

수정은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으나 꿈에서 본 송영숙의 수척해진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라 잠들수 없었다.

문득 며칠전에 만났을 때 보았던 송영숙의 상한 얼굴이 생각났다.

(혹시 영숙이가 앓아누운게 아니야? …)

수정은 자기가 살림을 꾸린 다음에는 송영숙이네 집에 발걸음이 떠졌다는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잊지 말고 꼭 찾아가야겠어. 경아 할머니가 몹시 섭섭해할거야. 영숙이한테 다른 일이 없어야겠는데…)

그날 아침 문춘실은 문가에 서서 출근하는 딸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머리수건을 눌러쓴 딸의 모습은 그의 눈뿌리를 아프게 찔러주었다.

(머리칼이 빠지는건 무슨 병일가? … 젊은 나이에 무슨 몹쓸병에 걸려서 머리칼이 다 빠질가? … 재귀열때도 머리칼이 빠진다고 하던데…)

그는 딸대신 진료소에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두 손녀를 탁아소와 유치원에 데려다준 문춘실은 그길로 진료소에 찾아갔다. 진료소에는 간호원처녀 혼자 있었다. 의사선생은 약품을 받아오려고 군의약품관리소에 갔다는것이다.

문춘실은 그냥 돌아설수 없었다.

《간호원! 내 하나 좀 묻자구. 지금두 재귀열이란게 있나?》

그의 물음에 처녀간호원은 호호 소리내여 웃었다.

《할머니, 재귀열이란건 발진티브스나 장티브스를 달리 부르는 말인데 지금은 그런 병이 아예 없어졌어요.》

《그럼 머리칼이 몽땅 빠지는건 무슨 병이요?》

《글쎄… 탈모현상도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던데…》

간호원처녀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환자의 호소 한마디를 듣고도 진단을 척척 내리고 치료해주지 못하는 자기가 미안한지 얼굴까지 붉혔다.

《저녁에 의사선생님이 오면 물어보세요. 난 잘 모르겠어요.》

문춘실은 뭔가 또 물으려다가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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