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1 회)

제 5 장

사랑의 힘

7

(2)

 

그날 저녁 차수정이 찾아왔다. 자기가 만든 남새빵을 경아와 은아에게 주려고 찾아온것이다.

수정을 본 문춘실은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내 지금 봄순 에밀 찾아가려던 참이였네.》

그는 당장 울음을 터뜨릴것같은 얼굴이였다.

수정의 가슴은 그 어떤 불길한 예감으로 철렁 내려앉았다.

《왜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큰엄마 왔다고 깡충거리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힌 그는 다우쳐물었다.

문춘실은 움쭉 일어나 웃방에 올라가더니 종이꾸레미를 가지고 내려왔다. 종이에 쌓여있는 머리카락을 내려다본 수정은 영문을 몰라 눈길을 들었다.

《이게 아에미 머리칼일세. 오늘 아침에 이렇게 다 빠지지 않겠나?》

《?!》

수정은 깜짝 놀라며 문춘실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문득 새벽에 꿈에서 보았던 송영숙의 피골이 상접한 얼굴이 떠올랐다.

차수정은 문춘실에게 송영숙이 언제 퇴근하는가고 물었다.

《매일 자정이 지나서야 들어오네. 거 무슨 첨가제연구를 돕는다구 저러질 않겠나?》

《첨가제연구를 돕는다구요?》

수정이 되묻자 문춘실은 아이처럼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수정의 생각은 예민해졌다. 언제인가 송영숙이 하던 말이 상기되였다. 자기가 지금껏 연구하던것을 정의성에게 넘겨주고 첨가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겠다던 그의 말이 쟁쟁히 들려오는것같았다.

결국 정의성의 첨가제연구를 돕기 위해 자기의 몸을 깡그리 혹사시키는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밤늦도록 어디에 가있대요?》

수정은 눈길을 들었다.

《글쎄 어드멘지… 매일 밤 전화는 오더라만…》

문춘실은 또다시 울상을 지었다.

이때 수정의 무릎에 앉아 동생과 발장난을 하던 경아가 《난 알아. 엄마있는데…》하였다.

《정말 엄마있는델 알아?》

수정은 아이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경아는 머리를 까딱까딱했다. 하더니 냉큼 일어나 뽀르르 전화기앞으로 다가가 오동통한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아버지가 전화하는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전화번호를 수자로가 아니라 수자판의 음향과 순서로 기억하고있는 령리한 경아였다.

신호음이 울리다가 상대편이 송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나자 그 애는 채롱채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우리 집에 큰엄마 왔다.》

분명 송영숙이 전화를 받았음을 깨달은 수정은 경아가 들고있는 송수화기를 나꾸어채듯 하였다. 그는 대바람 큰소리로 물었다.

《영숙아! 너 지금 어디 있니. 응? … 운수직장안에? …》

수정은 더 말하지 않고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튕겨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내 가보구 오겠어요.》

문춘실이 뒤따라 일어설 때 수정은 이미 문밖을 나서고있었다.

큰길에 나선 수정은 운수직장으로 내달렸다.

어느새 그는 운수직장앞에 이르렀다. 경비실안으로 쑥 들어선 그는 다짜고짜 기사장이 어디 있는가고 물었다.

늙수그레한 경비원은 웬일인지 성난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기사장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경비실에서 나온 수정은 불빛이 비치는 창고쪽으로 총총걸음을 놓았다. 온 겨울과 봄내, 여름내 이곳에서 밤을 새웠을 송영숙의 수고가 헤아려져 가슴이 저려들었다.

(지금껏 그가 하는 일도 모르고있었으니 난 정말 한심해. 그러면서도 무슨 동무라고…)

실험실앞에 이른 그는 인기척도 없이 열려진 문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때 수건을 눌러쓴 송영숙은 창문쪽에 그린듯이 앉아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수정은 성난듯 큰소리로 불렀다.

《영숙아!》

그의 부름에 송영숙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가엔 맑은것이 함초롬히 고여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손에 쥔것을 내보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정아! 이걸 봐! 이게 뭔지 아니? 베타인이야. 오리의 먹성을 높이는 베타인 말이야.》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속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수정은 그가 내보이는 하얀색의 결정체가루엔 눈길을 주지 않고 야속함과 원망어린 눈길로 말없이 쏘아보기만 하였다.

이윽고 성난 얼굴로 다가서며 와락 머리수건을 벗기였다.

머리카락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머리가 눈굽을 쿡 찌르며 안겨들었다.

《영숙아!》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수정의 눈가에도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수정아!》

두 녀인은 그만에야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들은 한동안 기쁨과 우정에 겨워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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