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 회)
제 5 장
사랑의 힘
11
(1)
송영숙은 군인민병원에 입원하여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진결과 지나친 중독증상과 과로로 하여 일시적인 탈모현상이 생겼을뿐 다른 장기들이 손상되거나 질병이 생긴것은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며칠 더 시간을 보냈다면 돌이킬수 없는 위험을 산생시켰을것이라고 하였다.
의사협의회에서는 인체에 퍼진 중독증상을 제거하기 위한 해독치료와 함께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를 요구하였다. 다행이였다.
검진결과가 공장에 전해지자 종업원들은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송영숙이 군인민병원에 입원하여 사흘째되는 날 김춘근은 지배인과 함께 아침일찍 군인민병원에 찾아갔다.
수건을 쓰고 앉아있는 기사장의 수척해진 얼굴을 본 당비서는 가슴한복판이 쿡 쑤시는듯한 아픔을 느끼였다. 그는 저려드는 아픔을 애써 감추며 적어도 두달동안은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숙은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두달이 뭡니까? 이젠 실험이 다 끝났기때문에 일없습니다.》
그의 대답에 김춘근당비서는 벌컥 성을 내였다.
《그럼 지금처럼 계속 수건을 쓰구 다니겠습니까? 예?》
뭉틀하게 내뱉는 그의 목소리엔 괴로움을 참는 신음소리가 담겨져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차수정은 이틀이 멀다하게 찾아왔다. 남편과 함께 오기도 하고 군출판물보급소에 들렸다가도 오고 문춘실을 휘동하여 경아와 은아까지 모두 데리고 찾아오기도 하였다.
찾아와서는 간호원도 무색할 정도로 약은 제 시간에 먹었는가, 체온은 어떤가, 무엇이 먹고싶은가고 시시콜콜 물었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어라, 빨래감을 내놔라 하며 송영숙을 한바탕 달구다가 돌아갔다.
진철이와 봄순이도 함께 찾아왔다.
새각시답게 얌전한 봄순은 기사장의 두손을 꼭잡고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는 하얀색, 연보라색들꽃묶음을 꽃병에 꽂아넣으며 빨리 병을 털고 일어나라고 한마디 하였다.
방인화도 리윤옥이와 함께 몇번이고 찾아왔다.
그들은 송영숙이 좋아하는 풋절이김치를 맛있게 담그어가지고 왔다.
임광일과 최금천, 서정관도 함께 왔고 생산2직장장 윤흥식도 안해와 함께 두번씩이나 왔다갔다.
농업대학에 초빙강의 나갔던 유상훈박사도 돌아가는 길에 병원에 들렸다.
《기사장동무! 난 요즈음 기사장동무앞에 나를 비춰봅니다. 그리구 기사장동무처럼 살지 못한 나를 채찍질하군 합니다.》
박사는 의미깊은 눈길로 송영숙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송영숙은 활딱 얼굴을 붉혔다.
《그만하십시오, 소장동지! 제가 무슨 큰일을 했다고… 앞으로도 저의 일을 많이 도와주십시오.》
기사장의 소박한 말은 박사를 더욱 감동시켰다.
박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사장동무! 우리 정기사동문 첨가제를 훌륭히 완성할겁니다. 난 그 동무를 믿습니다.》
확신이 담겨진 그의 말에 송영숙은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그럼 됩니다. 나도 그걸 믿어요.》
직장장들과 함께 자재과장도 저녁시간을 내여 군인민병원에 찾아왔다.
《기사장동지! 난 이거 죄송스러워서 견딜수 없습니다. 나때문에 기사장동지가 이렇게…》
자재과장은 기와집지붕같은 입술을 우무리며 옹색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했다.
송영숙은 악의없이 그를 흘겨보았다.
《왜요? 난 항상 과장동무를 고맙게 생각하는데요. 그리구 이제부터는 더 수고해야 합니다. 페설물을 계속 실어와야 하니까요.》
그의 말에 자재과장은 펄쩍 뛰였다. 두번다시 기사장을 이 지경으로 만들면 온 공장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는다면서 두손을 내저었다.
송영숙은 그에게 이제부터는 기술공정대로 안전하게 먹성인자를 생산할수 있다고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랬어도 자재과장은 잘 믿어지지 않는지 머리를 기웃기웃하였다.
서정옥은 사람들이 기사장의 병문안을 가는것을 보고 은근히 초조감과 불안같은것을 느꼈다.
(기사장동지가 우릴 얼마나 욕할가? 은혜도 도리도 모른다고 얼마나 원망할가? … 이틀후엔 꼭…)
그는 휴식날만 기다렸다.
《여보!》
휴식전날 서정옥은 밤늦게 퇴근해 들어온 남편을 조용히 불렀다.
《래일은 휴식날인데 같이 병원에 가보자요.》
《?!》
《우리야 남들보다 먼저 병원에 갔어야 하는데… 내가 잘 준비할테니 래일은 꼭 시간을 내보세요. 그렇게 하지요? 예?》
서정옥의 눈빛은 간절하였다.
정의성은 얼핏 안해를 쳐다보았다. 그는 곧 돌아앉아 잡지를 펼쳐들며 잘라 말했다.
《당신 혼자 가보오. 난 시간이 없소.》
그의 말은 무척 매정하게 들렸다.
정옥은 억이 콱 막혔다. 그의 눈가엔 원망이 담겨졌다.
《여보! 당신은 원래 그렇게도 무정한 사람이나요? 예?》
그는 설분을 터뜨렸다.
《당신은 그래 기사장이 누구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는지 모른단 말이예요? 어쩌문… 어쩌문 당신은…》
정옥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어깨를 떨었다.
그는 온몸으로 남편의 무정함을 타매하는것같았다.
(너무해요! 너무해요! …)
다음순간 정옥의 귀전에 남편의 성난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만하지 못하겠소?》
그 목소리는 순간에 집안공기를 짱!- 얼구었다.
웬간해서 큰소리를 치지 않는 정의성이지만 더이상 괴로움을 견딜수 없었다.
할수만 있다면 높은 령마루에 치달아올라 목이 터져라 《아! 아!》 소리를 치면 괴로움에 졸아든 가슴이 활 열릴것만 같았다.
이윽고 그는 심호흡을 하며 안해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나두 지금 병원에 가고싶소. 늦게나마 그에게 치료를 잘 받으라고 말이라도 하고싶소. 난 지금껏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난 하루도 연구를 중단해선 안되오. 영숙동문 지금도 그걸 바라구있소. 난 첨가제를 하루빨리 완성해서 기사장의 이름으로 박사론문을 내려구 생각하고있단 말이요. 그러니…》
정의성의 목소리에는 깊은 자책과 함께 새로운 결심이 스며있었다.
남편의 말에 정옥은 머리를 끄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마음이 그렇다면 나 혼자 가겠어요. 난 기사장동지에게 사죄해야 해요. 하지만 기사장이 나를 용서할가요? 난 기사장의 마음을 너무도 아프게 해주었으니까요. …》
다음날 아침 정옥은 혼자서 군인민병원으로 갔다.
그가 조심히 호실문을 열고 입원실에 들어서니 수건을 눌러쓴 기사장은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있었다.
문열리는 소리에 눈길을 든 그의 얼굴엔 반가운 웃음이 확 피여났다.
《이게 누구예요? 정옥동무까지 왔군요. 바쁠텐데… 어서 들어와요. 자! 어서요.》
송영숙은 그의 손을 이끌어 자기의 침대에 앉혀주었다.
기사장의 다정한 눈길앞에서 정옥은 대번에 눈물을 쏟았다.
《기사장동지! …》
외마디부름과 함께 눈굽을 적시는 그를 보며 송영숙은 빙긋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