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1

(3)

 

조헌은 귀양살이 괴로움보다 나라걱정이 더 무겁게 가슴을 괴롭혀서 자기도 짬짬이 무술을 련마하고 완기와 해동이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바랐던것이다.

《알겠소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아버님대신 소자가 역참에 나가겠소이다. 아버님이 동상을 입을가봐…》
 완기는 이렇게 아버지를 만류하고 마당굽을 나섰다. 이때 해동이 그를 막아나섰다.

《형님, 소인이 나리님을 대신해 먼저 나가겠다고 했는데 도중에 가로채서 나가겠다고 하시니 일의 순서가 바뀌지 않았소이까. 활쏘기와 칼쓰기를 소인보다 형님이 못하시니 오늘은 수련을 더하는것이 좋겠소이다. 하하하.》

해동이는 언제부터인지 완기를 도련님이라 부르지 않고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모두 그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좋게 여겨주었다.

《어허, 이것봐라. 해동이 능갈치기가 제법이다. 엊그제 사냥에서 누가 화살로 노루를 쏘아잡았나? 지난 가을에 누가 창을 던져 메돼지를 잡았구? 그런데 자기보다 못하다?! 하하하.》

완기는 즐겁게 해동이를 눌러놓으면서 발걸음을 떼였다. 조헌은 완기가 해동이보다 무술이 조금 나은편이라고 여겼으나 해동이가 이 추운 날에 제가 대신 역참으로 나가기 위해 애쓰는 그 마음이 대견하여 그를 미덥게 바라보았다.

《무술로 말하면 둘이 다 수련이 모자라니라. 왜놈들은 노루나 메돼지와는 다르지. 악착스럽고 교활한데다가 무기를 가졌거던. 그놈들과 싸워이기자면 무예를 더 닦아야 한다. 너희들은 이제 곧 말을 타고 활쏘기, 창던지기를 열심히 익혀라.》 하고 완기를 되돌려세우고 역참을 향해 발걸음을 떼였다.

허나 몇걸음 못가서 우뚝 섰다. 어떤 사람이 말방울소리를 울리면서 급히 말을 달려오는것이였다. 그뒤를 말을 탄 사람들이 잇달렸다. 분명 자기를 찾아오는것이 틀림없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보니 선전관의 관복을 입고있는것이 뚜렷이 보였다. 선전관이란 임금의 어지를 전달하고 그 집행을 감독하는 직무를 맡는다. 죄인에게 선전관이 오는것은 매우 좋지 않다. 이런 때는 대개 죄인의 목을 치기 위해 오는것이다.

그를 보는 조헌의 심중은 복잡하였다.

(나를 어쩌자는것인가. 나를 더 깊은 산골로 옮겨서 가시울타리속에 가두어놓으려는것인가. 아니면 목을 치려는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무슨 일로 눈보라 사나운 이른아침에 이리도 급하게 달려오는것인가.)

그는 불안한 마음을 눌러 참으며 꿋꿋이, 태연스럽게 기다리였다.

완기와 해동이는 조헌을 보호하듯 옆으로 다가왔다.

마침내 선전관이 흰거품을 문 말을 멈춰세우면서 뛰여내렸다. 얼굴과 온몸에 흰 눈가루와 성에가 하얗게 불리고 수염에는 가느다란 고드름까지 달렸다. 밤새워 먼길을 달려온것이 헨둥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선전관이 《중봉(조헌의 호)!》 하고 성큼성큼 다가와 두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자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려고 역말을 갈아타면서 천리길을 달려왔네. 나야. 호조 좌랑청에 함께 있던 옛친구 안세희일세!》

《아니, 이게 누군가? 청수(안세희의 호)가 아닌가. 응?!》

조헌은 너무나 반가와 눈이 얹혀있는 그의 어깨를 꽉 그러안았다.

조헌은 그와 함께 호조좌랑벼슬을 지낼 때 친분을 두터이하였었다.

청렴강직한 성미라든가 곧고 고지식하고 일에 열중하는 성품이 하나같아서 뗄래야 뗄수 없는 형제와 다름없이 지냈었다. 날과 달이 흐르는 속에 서로 벼슬자리가 달라지고 도임지가 각각이였지만 그들의 친분은 더욱 굳어지고 깊어졌다. 안세희는 근래에 와서 선전관의 직분을 맡게 되였었다.

그는 비로소 조헌의 손을 놓고 웃음을 거두면서 정식으로 낯빛을 엄숙히 하였다.

《령동역참 역졸 조헌은 전하의 어지를 받으라.》

조헌은 안세희앞에 무릎을 꿇고 언땅에 맨손을 내짚으면서 부복하였다. 꿩깃이 달린 역졸벙거지를 쓴 머리와 얼굴에 눈가루를 들씌우며 눈바람이 불었다.

안세희를 따라온 고을원과 찰방도 옷깃을 바로잡으며 황공히 머리를 숙이였다.

안세희는 두손으로 어지를 펼쳐들었다.

《조헌에게 내리는 상감마마의 어지는 다음같으니 명심해들을지어다.》 하고는 위엄스럽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어지를 내리읽었다.

《조헌을 용서하여 귀양을 풀어주노라. 너는 고향으로 돌아가 차후 지시를 기다릴지어다. 조헌은 앞으로 언행을 조심하고 극히 삼가할지어다.》

조헌은 황공히 일어났다가 다시 부복하여 절을 하였다.

《황공무지로소이다. 백골이 진토된들 이 은총을 어이 잊으리까.》

그는 엎드린채 어깨를 떨면서 흐느껴울었다. 손등에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금시에 얼어들고 또 얼어붙건만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였다.

(임금이 이 사람을 귀양지로 쫓아보내고 잊지 않으셨구나. 앞으로 언행을 조심하고 극히 삼가하라 하심은 이몸에 다시는 죄인의 멍에가 메워지지 않게 하려는 상감마마의 하해같은 은혜로구나.)

그는 감격에 목이 꽉 메여 오래도록 일어설줄 몰랐다.

신씨는 방안에서 남편의 귀양을 풀어주는 어지가 내렸다는 말을 가려듣고 꿈만 같아 앓는 몸이지만 화닥닥 일어나 맨 버선발로 허둥지둥 달려나왔다. 그러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꺼꾸러졌다. 그는 가까스로 머리를 쳐들고 《이게 정말이오이까.》 하고는 그자리에 까무라쳤다. 너무나 큰 기쁨과 흥분에 견디여내지 못한것이다.

어머님!》

완기가 깜짝 놀라 달려가고 해동이가 달려가고 부엌문앞에서 기쁨의 눈물을 머금고 서있던 삼녀가 《마님, 웬일이시오이까?》 하고 신씨를 그러안았다.

땅에 부복한채 흐느끼던 조헌이 급히 일어나 사랑하는 안해곁으로 다가가 의식을 잃은 안해를 잠간 살피더니 늘 몸에 지니고다니는 침통에서 침을 골라 안해의 인중에 여러번 잽싸게 침을 놓았다.

잠시후에 신씨는 숨을 가느다랗게 내쉬면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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