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2
(9)
…두달이 지나서 조완기와 박설향은 한쌍의 원앙새같은 부부가 되였다. 설향은 몸종들을 지참품처럼 데리고 옥천시집에 내려와 살았다. 완기는 며칠안에 다시 한성으로 올라가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럴즈음에 대호군 박표는 임금의 신임을 더욱 사서 벼슬이 더 올라가게 되였다. 그는 임금이 총애하는 후비 김빈의 오빠 김공량의 《덕》을 입었던것이다.
당시에 김공량은 제 누이동생을 등대고 대궐을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제 하고싶은것은 무엇이나 꺼리낌이 없었다. 그것은 관리들을 추천, 임명하는 리조판서의 자리에 리산해를 올려놓은것만 보아도 잘 알수 있었다.
재상으로서 리산해는 재주가 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재주있는 사람이 나쁜 길에 들어서면 재주없는 사람보다 더 나라에 해를 끼치는 법이다. 그 재주는 백성을 위한 재주가 아니라 자기의 영달을 위한 재주로 되고 임금의 눈을 가리우고 귀를 멀게 하는 아첨으로 된다.
김공량이 자기에게 아부아첨하는자들을 높이 내세우는 바람에 조정이 구새먹은 나무처럼 썩어들기 시작하고 나라의 기강이 물먹은 흙담벽처럼 무너져갔다. 비법, 불법이 도깨비처럼 성행하고 례의도덕이 지는 해처럼 기울어져갔다. 나라의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나라밖의 왜적이 이 기회를 노리고 준동하였다.
조헌은 이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나라를 좀먹는 간신무리들을 용서할수 없었다. 의분이 펄펄 끓어올랐다. 김공량과 리산해, 그와 한짝이 된 조정의 벼슬아치들(그중에는 박표도 있었다.)을 내몰아야 했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설수 있었다.
허지만 자기의 사돈을 규탄배격하는 상소문을 어찌 낼수 있으랴. 조헌은 박표에게 편지를 내여 몇번 극진히 충고하였다. 박표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시골에 묻혀있는 사람이 사돈집에 감놓아라. 배놓아라 웬 참견질이냐. 오히려 불쾌히 여겼다.
완기는 자기의 가시아버지가 조정을 어지럽히는 간신무리들과 한배를 탈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참다못해 박표앞에 무릎을 꿇고 여쭈었다.
《
하지만 박표는 리산해와 함께 더 자주 하늘소를 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김공량을 찾아다니였고 김공량도 리산해의 집을 찾아와 주찬에 나앉아 놀았는데 그자리에 박표도 무엇인가 들고와 황송히 마주앉군 하였다.
조헌은 사돈이라고 인정사정에 막혀 우물쭈물할수 없다는것을 뉘우쳤다. 사사는 사사이고 공사는 공사가 아닌가. 그리하여 간신무리들을 규탄배격하는 날카로운 상소문에 박표의 이름도 올리였다. 온 조정이 불을 만난 벌둥지처럼 되였다.
옥천의 시집에서 살던 완기의 안해 설향이는 본가집
《
《네가 집에 돌아오기를 잘했다. 며느리가 탈가한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앞으로 뉘우치고 돌아오리라 생각한다. 그러면야 오죽 좋겠느냐.》
《안해가
설향이는 한성에 돌아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위로에 마음이 놓여져서 시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약 부모들이 엄히 꾸짖었다면 시집으로 돌아올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이랴, 쩌- 쩌-》
호기있게 말을 몰아가는 해동이의 웨침소리에 문득 쓰거운 추억에서 깨난 완기는 썰매옆을 스쳐지나는 나무들과 바위들, 눈속에 파묻혀있는 수수대와 곡식짚무지들, 끝없이 뒤에 남아 사라지는 두줄기 썰매자국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가도가도 합쳐지지 않는 그 두줄기 썰매자국처럼 자기와 설향이는 그렇게 인생길을 가리라고 생각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