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3

(1)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눈보라길을 앞서가는 조헌과 안세희는 그들대로 나누는 이야기가 많았다.

《중봉, 자네가 귀양길에서 빨리 돌아가게 된것은 전라도선비 정암수와 여러 선비들이 련명으로 임금께 상소를 드렸구 충청도 공주에 사는 자네의 제자들이 상소를 올려서 놓여나오게 된걸세. 그 선비들은 다 중봉 자네가 앞일을 내다볼줄 알기때문에 왜놈들의 침략이 반드시 있을것이라고 하였으며 관리들의 뢰물아첨행위가 성행하여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는것이 가슴아파 상소를 올렸는데 귀양을 보내는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었네.》

조헌은 감동되여 두눈을 슴벅이였다.

《참말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네. 그 선비들이야 내가 잘 알고있네. 그들도 나를 잘 알구.》

전라도 정암수는 조헌이 전라도 도사로 있을 때 사귄 사람이다.

그들은 서로 만나면 남쪽바다가로는 왜오랑캐들이, 북쪽변방으로는 북방오랑캐들이 자주 침범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나가겠는가를 론한적도 있고 공주에 사는 선비들은 김질, 김약, 리유, 김경백들로서 조헌이 사랑하는 제자들이다.

조헌은 선비란 글을 읽고 실천이 없으면 선비가 아니요, 벼슬자리만 탐내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선비가 아니요, 제 리욕만 채우면서 백성을 걱정하지 않으면 선비가 아니요, 《인자무적》의 리치를 깨닫고 그 리치대로 살지 않으면 선비가 아니다라고 늘 제자들을 가르치였었다.

벼슬자리에 있건 백면선비로 살건 어느때나 제손으로 밭을 갈고 청빈하게 살아가는 조헌의 청렴결백성과 대쪽같은 성미,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그의 굳센 지조를 제자들은 따라배웠다. 그들은 자기 스승을 공경하였다. 이들이 아니라면 누가 조헌을 위해 목숨을 내대고 임금께 상소하랴.

세찬 눈보라질에 눈은 평지도 웅뎅이도 모두 두터운 이불을 펴놓은듯이 일매지게 반듯이 되여버려서 행길을 분별할수 없는 곳이 많았다. 이럴 때면 썰매에 누워있는 신씨를 돌볼 삼녀만 남고 모두가 떨쳐나 길을 찾았다. 이렇게 가자니 길이 더디였다. 어느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에는 해가 벌써 높이 떠올랐다.

조헌은 말을 멈춰세우고 고마운 정이 한껏 젖어든 목소리로 안세희를 바라보았다.

《청주, 인제는 우리끼리 갈테니 걱정말게. 우리때문에 공무를 지체해서야 되겠나. 어서 먼저 떠나게.》

안세희도 헤여지기가 아쉬운듯 한동안 말이 없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내가 어명을 받고 오가는 길이여서 자네와 먼길을 함께 가지 못하는것이 한스럽네. 부디 몸성히 돌아가게. 임금님께서 차후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으니 벼슬을 다시 내릴것 같네. 그러면 자네가 조정에 올라올것이고 그때 자네와 만날것이니 오늘은 헤여져야 하겠네.

내 먼저 상경하면서 고을들에 말해두겠으니 도움을 받으며 가게. 자는거랑, 먹는거랑.》

안세희는 썰매곁으로 가서 신씨에게 작별인사를 각근히 하고 또 완기를 굳게 포옹하고는 다시 말에 올라 급히 박차를 가해 말을 달리였다.

길은 멀고 험하였다. 조헌일행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찾아드는 때에 겨우 떠나온 령동역참에서 첫 역참인 개주역참에 닿았다.

령동에서 개주까지는 60리인데 조헌이 역졸로서 말을 몰아 오가던 곳이다. 그때 왕복 120리를 반달음치듯 하군 하였으니 고달픔이란 헤아릴수 없었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서려드는 때에 이런 고역을 하루도 쉬는 일없이 치르었지만 그는 묵묵히 감당해내였었다. 그때문인지 몰라도 개주역참의 역졸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조헌이 몰아오는 말에게 마초도 좋은것을 골라 먹여주고 다른 말에게도 아끼던 보리와 귀밀도 먹여주면서 지성껏 돌봐주군 하였다. 그것은 조헌을 존대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개주역참의 늙은 역졸 하나가 조헌일행을 성심성의로 맞아들이였다. 오늘 낮에 찰방이 령동역참 역졸로 귀양살이를 하던 조헌이 귀양이 풀리여 돌아가니 여기에 들리면 잠자리를 돌봐주라고 미리 말해두었던것이다.

늙은 역졸은 말여물을 끓이는 방에 조헌이네를 들게 하였다. 역참에 객방이 있기는 하였으나 추웠다. 그대신 여물 끓이는 방은 조금 더웠다.

역참늙은이가 송구스럽게 죄지은 사람처럼 중얼거리였다. 《참으로 죄송하오이다. 찰방이 잘 돌봐주라고 하였지만 일이 많아서 방을 거두지 못하였소이다.》

《원 별말씀을 하시오이다. 제가 엊그제까지 역졸노릇을 하면서 여기를 노상 북바디 드나들듯하였는데 뭘 그러시오이까.》

조헌은 흠없이 늙은이를 안심시키고 신씨를 안아다가 아래목에 눕히였다. 방바닥은 그런대로 미지근한 온기가 있었다. 방 한구석에 놓인 방등대에서 등잔불이 가물가물 타면서 방을 어스크레 비쳐주었다. 로상에서 맵짠 추위를 겪다가 여물 끓이는 방에라도 들게 되였으니 혹한을 면할수 있었다. 앓는 안해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삼녀는 신씨의 얼어든 손발을 주물러주고 입김을 불어 녹여주면서 살뜰하게 속삭이였다.

《마님, 어떻소이까? 몸이 얼어서… 꽤 견디여낼만 하오이까?》

《괜찮다. 네 정성에 감복해서 추위도 달아난것 같구나.》

신씨는 삼녀의 손을 꼭 잡아쥐고 쓸어주었다.

《너는 얼지 않았느냐?》

《네에- 마님, 조금만 참으시오이다. 쇤네가 부엌에 나가 불도 땔겸 약도 달여오겠나이다.》

조헌과 완기가 마구간에 말을 들여세우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완기는 어머니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삼녀를 보고 《그저 우리 삼녀가 제일이구나.》 하고 벙긋 웃었다.

《〈일수백확〉이라고 나무 하나를 심어 백가지 리득을 본다더니 우리는 삼녀 하나를 키워 백가지 효도를 받는구나.》

조헌이 이렇게 만족히 말하며 웃으니 모두 몸이 훈훈하도록 따라웃었다. 삼녀는 《제가 뭐 백가지 해를 끼치면 끼쳤지 어찌 백가지 리득을 주리까, 호호호.》 하고 수집게 웃으며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마님, 나리님이랑 배가 고프실텐데 가지고온 밥이랑 덥히고 약도 데울겸 부엌에 나가 불을 살리겠나이다.》 하고 가볍게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허지만 이내 부엌에서 《악-》 하고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뒤따라 공포에 질린 삼녀가 방안으로 달려들었다.

《웬일이냐?》

《왜 그러니?》

조헌이와 완기가 깜짝 놀라서 급히 삼녀를 바라보았다.

《부엌아궁이에 사람인지, 귀신인지…》

《그래?! 내 나간다.》

완기는 성큼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도련님, 해동오빠와 함께…》

《걱정말아라, 사람이면 어떻구 귀신이면 어떻단 말이냐.》

완기는 자기의 무술을 믿었다. 이때 해동이는 말에게 여물을 주고 늙은 역졸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오고있었다.

《형님, 무슨 일루 밖에 나가시우? 말여물도 다 주었는데.》

해동이는 밖으로 나가는 완기에게 물었다.

《헛참, 삼녀가 부엌에 나갔다가…》

완기가 이렇게 말하면서 늙은 역졸을 돌아보았다. 로인이 부엌의 형편을 알리라고 여겼던것이다.

《원참, 아까 돌려보냈던 할미와 손녀아이가 또 찾아온것 같구만, 불쌍도 하지.

나리님, 글쎄 저녁무렵에 밥빌어먹는 할미가 대여섯살난 계집애를 데리고 이집저집 헤매이던끝에 여기로 찾아왔댔소이다. 이 추운 오동지섣달에 맨살이 드러난 누더기를 입고 굶주린 배를 움켜잡구 오늘밤 여기서 자고가자구 하길래 여기서는 못잔다고, 조금 있으면 나리님네가 오신다구 하였댔소이다. 좀 멀지만 우리 집에 가라고 가리켜주었는데 거기까지 가내지 못하고 여기로 돌아와 부엌으로 들어온것같소이다. 얼어죽지 않으려구…》

늙은 역졸이 이같이 하소하며 초롱불을 앞세우고 부엌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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