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3

(2)

 

조헌은 초롱불을 든 로인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가보니 아닌게아니라 삼녀가 기겁하여 비명을 지를만 하였다. 말여물을 끓이는 넓은 아궁이안에 로파와 어린 계집애가 자고있었는데 아궁이밖으로 머리만 내놓고 몸뚱이는 아궁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몸은 장작개비처럼 다 불타버리고 머리만 아궁이밖에 남아있는것같았다. 숯검댕이칠이 여기저기 얼룩진 얼굴들에 눈도 감을 힘이 없어서인지 반쯤 떠있고 입도 다물 힘이 없어서 로파나 계집애도 하 벌리고있었다.

조헌은 이 처참한 광경앞에서 《이 어찌된 일이냐?》 하고 아궁이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앉았다. 역졸로인이 초롱불을 비쳐주었다.

조헌은 잠간 할머니와 계집애의 숨결을 가늠해보고 살아있는것이 확실하자 할머니와 계집애의 볼을 가볍게 다독이였다.

《할머니, 깨여나시오다. 얘야, 너도 깨여나거라.》

그렇게 몇번 다독이고 불러서야 할머니도 계집애도 깨여났다. 할머니는 잠시 누운채로 무슨 일인가 하듯이 조헌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갑자기 두입술을 호물거렸다.

《방울이 애비냐? 네가 인제야 왔구나. 방금 꿈에 네가 집마당으로 훨훨 날아오더니 정말 네가 왔구나.》 하고 몸을 뒤틀어 아궁이밖으로 나오려고 했으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얼마나 애타게 아들을 기다렸던지 죽을지경에 이른 이 시각, 이 순간조차 《방울이 애비야-》 하고 부르는것이였다.

조헌은 눈물을 머금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예 어머니, 인제야 왔소이다. 방울이 애비오이다.》 하고 로파의 겨드랑이에 두손을 넣어 조심히 끌어내였다.

방울이라는 계집애는 《아빠야, 아빠야.》 하고 재무지속에서 기여나와 새까맣게 된 두손으로 조헌의 목을 와락 그러안았다. 계집애도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초롱불이 어두워서 자기 아버지인지 아닌지를 분간할수 없었던것이다.

《오 그래, 너의 아빠다. 자 할머니, 어서 방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조헌은 한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방울이를 닁큼 안아 가슴에 안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완기와 해동이도 눈물을 흘리며 그뒤를 따랐다. 조헌은 할머니와 계집애가 자기 아들이 아니고 자기 아빠가 아니라는것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것인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기는듯 아파왔다. 이를 어찌하면 좋으랴. 이 불쌍한 할머니의 아들이 되여주고 이 계집애의 아빠가 되여줄수는 없는가. 자리에 누웠던 신씨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부인, 이 할머니와 어린애에게 갈아입힐 옷이 좀 없소?》

조헌이 안해에게 갈린 목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신씨는 《찾아보겠소이다.》 하고 삼녀를 돌아보았다.

《삼녀야, 옷보짐속에 있는 옷가지들을 있는대로 다 내놓아라.》

《네에, 소녀에게두 한두가지가 있소이다.》

삼녀는 가볍게 일어나 옷짐을 펼쳤다.

《할머니와 애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완기와 해동이는 얼른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방을 덥히고 밥도 덥혀야겠구나. 할머니랑 배가 얼마나 고프겠느냐.》

신씨는 숨이 차서 헐떡이며 나직이 분부하였다.

삼녀는 제 옷보따리에서 옷가지를 꺼내놓고 또 수건을 집어들고 완기와 해동이를 따라 부엌으로 나갔다. 잠간사이에 젖은 수건을 들고 다시 들어와 할머니와 계집애의 얼굴을 닦아주고 손을 씻어주었다.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할머니와 계집애는 조헌이가 자기 아들이 아니고 자기의 아빠가 아닌줄 그때에야 알고서 한동안 조헌을 어리둥절히 바라보더니 그만에야 방울이는 제 할머니품에 얼굴을 묻고 섫게 울었다. 우리 아빠가 아니야- 하고.

그 모양을 보던 삼녀는 《으흐흑-》 하고 가만히 흐느끼면서 돌아앉아 어깨를 떨었다. 가엾은 방울이 모습은 어렸을 때 자기의 모습이였던것이다. 그때에도 조헌나리님은 나를 데려다 이날까지 키워주지 않았던가. 정말 나리님과 마님은 불쌍한 사람들의 부모같은 생각이 나서 우는것이다.

이윽하여 구들도 더워오고 밥도 김이 무럭무럭 오르게 데워져 모두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밥은 조와 보리 상반밥이다. 도시락에는 조찰떡도 무드기 담겨있고 바가지에는 삶은 닭알도 담겨있었다. 이 음식들은 귀양지에서 떠나올 때 그곳 동네사람들이 성의껏 마련해준것이다.

《할머니, 천천히 많이 드시우.》

신씨가 밥그릇을 가까이 밀어주고 조헌이 방울에게 닭알을 집어주면서 《배고팠다가 급히 먹으면 얹히기 쉽다. 천천히 먹어라.》 하고 빙그레 웃었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분네도 있을줄 몰랐소이다. 저… 어르신님이 먼저 드셔야 우리도 먹지오다.》

할머니가 송구스럽게 례절차림하는것을 보고 조헌은 가슴이 뭉클해왔다. 이처럼 슬픔에 가슴이 무너지고 기한에 피골이 상접한 처지에 놓였어도 지킬것은 다 지키고 알것은 다 아는 우리 백성들이야말로 얼마나 착한 마음씨를 지니고있는가. 그런데 이런 백성들을 소중히 아끼고 돌봐줄 사람들이 없는것이다.

《자, 그럼 할머니 우리 함께 듭시다.》

조헌은 조찰떡을 저가락으로 꿰여 할머니에게도 주고 방울이에게도 주고 자기도 들었다.

밥을 먹은 뒤에 조헌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방울이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에 가고 할머니가 방울이를 데리고 다니시오?》

《몇해전에 이 애 할아버지가 북쪽에 성을 쌓는 부역에 나갔다가 돌에 치워죽구 그대신 이 애 애비가 또 성쌓기에 나갔다가 다리가 잘리워서 돌아왔소이다.》

할머니는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였다.

밖에서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꿰여진 창호지구멍으로 눈가루가 뿌려들고 문풍지가 붕붕 울었다. 할머니는 구슬픈 문풍지 우는 소리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할머니와 방울이 어머니는 손끝에 피가 나도록 농사를 지었다.

방울이 아버지는 다리 하나가 없어서 집에 남아 새끼를 꼬고 낫이랑 갈아주는 일밖에 할수 없었다. 한해농사를 지어도 해마다 농량을 댈수 없었다. 어떤 해는 땅을 태우는 가물이 들고 어떤 해는 긴 장마가 들어서 빈 쭉정이 한섬도 거두어들이지 못하였다. 어느해 봄에 온 가족이 굶어서 쓰러져있는데 관가의 호방이 라졸들을 달고 달려들었다.

《이 집에서는 어찌 해마다 조세를 바치지 않느냐?》

호방이 눈을 부릅뜨고 을러메였다.

《바칠것이 있으면 오죽이나 좋으리까. 이렇게 모두 굶어서 죽어가고있는걸 보소이다.》

《일하기 싫어서 자빠져 딩구는 놈의 말을 누가 듣겠느냐. 여봐라, 부엌에 들어가 가마뚜껑을 열어봐라.》

라졸 두엇이 달려들어가 가마뚜껑을 열어보았다. 가마밑창에 녹이 새빨갛게 내돋아있었다. 부뚜막에는 사발이 두세개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이발이 빠지고 때가 낀 사발안에는 먼지만 가득히 올라있고 천정에서 떨어졌는지 노래기 한놈이 사발가장자리로 기여오르다가는 미끄러져내리고 또 오르다가는 또 미끄러져내리고있었다.

호방은 라졸들을 부추겨 밥가마를 뽑아가지고 돌아가면서 래일까지 조세를 바치지 않으면 관가감옥에 가두어넣고 형장을 치겠다고 하였다.

방울이 아버지는 가마를 뽑아가도 가만히 있었다. 가마는 해서 무엇하겠는가. 끓일것이 있어야 소용되지 않겠는가.

《여보, 가마가 있어야 풀뿌리라도 삶아먹지 않겠수. 이제라도 사정사정해서 찾아와야지요.》

만삭이 된 방울이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였다. 임신부는 먹고싶은것을 먹어야 하지만 먹을것이 없어서 얼굴이 해골처럼 되였다. 방울이 아버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바로 이때였다. 이번에는 병방이 군사를 달고 방울이네 집에 달려들었다.

《왜 이 집에서는 군포를 바치지 않느냐. 이 집은 군적에 올라있는 사람이 셋이다. 그러니 무명 여섯필을 당장 내놔라.》

방울이 아버지는 너무나 기막혀서 하늘에 대고 《허허허.》 하고 웃었다.

《우리 집은 남자는 나 하나뿐인데 셋이라고 하니 너무나 우습구려.》

《이놈봐라, 이 집 할애비는 어쩌구, 네 녀편네가 만삭이니 인차 아이를 낳을거구. 그러면 너를 합쳐서 셋이 아니구 뭐란말이냐?》

《우리 아버님은 성쌓기부역에 나갔다가 돌에 치워 돌아가신지가 몇해가 지났구 우리 처가 아직 낳지도 않은 애를 사내인지 계집애인지 어떻게 알구 군적에 올렸단 말이요? 산모가 먹을것도 못먹구 굶어서 사는데… 아이낳을 힘도 없구… 아이구,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냐.》

방울이 아버지는 지팽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오냐, 우리 집식구를 다 죽여라. 다 죽여라! 이놈들아, 네놈들도 사람이냐? 방금 호방이 조세를 안바친다고 가마를 뽑아가구 너희놈들은 죽은 사람과 태여나지도 않은 아이에게까지도 군포를 내라고 호통질이로구나.

이놈들, 날 죽여라, 원쑤같은 이놈의 세상 망하지 않나 두고보자!》

방울이 아버지는 마지막힘을 다 모아 이렇게 대들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군사들이 달려들어 의식을 잃은 방울이 아버지를 묶어서 개끌듯 관가로 끌어갔다. 방울이 어머니는 그날저녁 락태를 하였는데 피를 많이 쏟고 그날밤으로 죽었다. 다음날에는 방울이 아버지가 곤장 몇대에 목숨을 잃었다. …

방울이 할머니의 피눈물이 배인 이야기를 듣고 조헌과 신씨, 완기, 해동이, 삼녀모두가 눈물을 흘리였다.

조헌은 할머니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해줄수 없었다. 임금은 아첨을 일삼는 간신무리들에게 둘러싸여 귀맛좋은 소리만 듣고 민심이 어떤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나라를 잘 다스려 늘 태평성대가 펼쳐지고있다고 만족해하는 모양이였다.

눈물이 고여오르는 두눈을 꾹꾹 눌러 씻으며 늙은 역졸이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우리 역참구간에 얼어죽은 사람이 두구가 있었소이다. 그걸 우리 역참사람들이 거두어주었소이다. 나리님. , 돌아가시면 임금께 백성들이 굶어죽고 얼어죽고있으니 굽어살펴주십사 말씀올려주시오이다.》

조헌은 늙은이의 말을 들으면서 불현듯 《언행을 조심하고 극히 삼가할지라.》 한 임금의 어지가 떠올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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