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5
(4)
한기남이는 목이 꽉 메여 멈추었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한기남은 두손을 뒤로 묶이운채 감영으로 압송되였다. 그의 앞뒤로 맹영달과 옥리가 호송하였다.
이렇게 가고가는 사흘째되는 날에 한기남이 붙잡히였던 어느 마을의 시내가에 이르렀다.
기남이는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와 징검돌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독사에게 물렸던 처녀가 눈에 삼삼히 어려오고 《어디서 사는 오빠인지 고맙소이다. … 오빠, 오빠… 가지 마오.》 하고 호곡하던 처녀의 목소리가 시내물을 타고 흐르는것만같았다. 그리고 시내가의 어느 집에선가 처녀가 뛰쳐나오면서 자기를 향해 《오빠, 가지 마오.》 하고 부르며 찾으며 달려올것만같이 생각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처녀를 애틋이 그려보았다.
꺽다리 맹영달은 시내를 건너가면서 짚검부레기같은 시꺼먼 수염을 슬슬 쓰다듬었다.
《이녀석, 여기는 네가 내 손에 잡혔던 그 시내로다. 징검다리도 있구. 히히- 네가 잡힐줄 알면서두 처녀를 구원하였지만 그게 다 쓸데없는 노릇이야. 봐라, 네가 죽음을 당하려고 감영에 가는데 그 처녀가 나와보기나 하나?
너의 은혜를 잊지 못해 삶은 통닭이랑 술이랑 안고 나왔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여기서 시원히 몸도 씻고 고기안주에 술을 먹어볼게 아니냐. 히히히.》
한기남은 증오가 끓는 눈길로 꺽다리 맹영달을 쏘아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리고말았다. 짐승만도 못한것과 무슨 말을 하랴.
마침내 그들은 시내를 건너 행길에 올라섰다. 이윽하여 뒤에 남은 시내도 보이지 않고 마을도 멀리 사라져버리였다.
6월의 뙤약볕이 대기를 달구었다. 때로 길가에 보게 되는 밭들에서는 조잎들과 수수잎사귀들이 가물과 더위에 오그라들고 풀잎들은 끓는 물에 데쳐낸것처럼 흠썩 시들어버렸다.
맹영달과 옥리는 땀에 젖어 헐떡이였다. 불어오는 바람도 뜨거운 열기를 몰아오는것같았다.
한기남은 얼굴에 흐르는 땀이 눈에 흘러들어 쓰렸지만 손으로 씻을수 없어서 참기 어려웠다. 두손이 뒤로 묶여져있었던것이다. 어느덧 정신이 몽롱해지고 온몸이 깊은 나락으로 잦아드는감이 들었다.
바로 이때 맹영달이 반가운듯 소리쳤다.
《저기 시내가 보인다. 버드나무그늘아래 사람들이 앉아서 술을 먹구있어. 그거 좋겠다. 우리가 가면 저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거야. 불쌍한 총각이 죽으러 가는 길이니 먹을것을 좀 주시우 하구 청하면 어서 그럽시다 하지 않을라구. 이녀석, 어서 가자.》
드디여 시내가에 닿았다. 시원한 버드나무그늘아래 음식들을 펼쳐놓고 젊은이 두사람이 마주앉아 술을 마시는데 천렵놀이를 하는것같았다.
《금방 잡은 고기로 어죽을 끓이니 맛이 천하일미로군. 하하하.》
《자, 어서 들게. 어죽에 술맛 또한 천하일미일세. 하하하.》
젊은이들이 이렇게 즐겁게 술을 마시며 하는 소리가 맹영달의 귀에 들려왔다. 맹영달은 목젖이 넘어가는것만같아 참아낼수 없었다.
《여보게 젊은이들, 여길 좀 보게나. 여기에 목을 잘리우러 감영으로 가는 어린 죄인이 있네. 이 염천속에 몇백리를 왔는데 이제 또 몇백리를 가야 하네. 이 불쌍한 총각에게 먹을것을 좀 주겠나?》
《아니, 어린 총각이 목을 잘리우러 가다니? 이런 변이 있나.》
《어서 이리로 데려오구려. 어죽도 있고 통닭도 있구 떡도 다 있소이다.》
두 젊은이는 총각이 불쌍한듯이 성큼성큼 일어나 시내건너편을 바라보며 손짓하였다.
이리하여 맹영달이와 옥리는 한기남을 옆에 있는 나무에 묶어놓고 시내를 건너와서 저들만 술판에 마주앉았다.
《아니, 어린 죄인을 먹여달라더니 이게 무슨짓이요. 안되겠수다. 물러가시오.》
젊은이 하나가 어죽과 통닭을 한옆으로 돌려놓았다.
《여보시오, 총각죄인을 어서 데려오시우.》
또한 젊은이가 맹영달과 옥리를 떠밀었다.
《그래야지, 그렇구 말구.》
맹영달이 어느 사이 술그릇을 끄당겨 꿀꺽꿀꺽 마시며 하는 소리다. 젊은이들은 술그릇을 빼앗고 눈총을 쏘았다.
《총각을 데려오지 않으면 술도 어죽도 못먹을줄 아시우.》
《그래그래, 데려오구 말구, 인제 한사발씩 더 마시구 데려올게.》
옥리도 맹영달만큼이나 술도깨비인지라 손을 쑥 내밀었다.
젊은이들은 못견디는척 하고 껄껄 웃었다.
《그렇다면 한사발씩 더 하구려.》 하고 술방구리를 내놓았다.
《벌써 그랬어야지.》
맹영달과 옥리는 술에 젖은 수염을 쑥 문다지고 술사발을 기울이고 또 기울이였다. 그리고는 통닭다리를 뚝뚝 떼여 입으로 가져가다가 그자리에 쓰러져 코를 골았다. 술에 잠자는 약이 들어있었기때문이였다.
젊은이들은 술그릇들을 깨끗이 치우고 급히 나무에 묶이여있는 한기남을 빼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