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6
(3)
《림꺽정》네들이 눈사태를 일으키며 산비탈을 와르르 내려왔다. 그들은 눈깜빡할사이에 조헌의 일행을 둘러쌌다.
두령이 조헌에게 한걸음 나와서며 조용히 으르렁거리였다.
《우리는 죄없는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살겠거든 말과 재물을 모두 두고가라.》
《나는 말공부를 하지 말자고 하였다. 너희들의 칼재주를 보여다오. 네가 림꺽정이라면 너의 부하 다섯을 데리고 우리 사람 하나와 맞서보아라. 너희네는 다 칼을 들어라. 우리 사람은 맨주먹으로 나서게 하겠다.》
《
완기가 태연히 조헌이 앞으로 성큼성큼 나왔다.
그러나 그 순간에 두령은 눈을 크게 뜨고 조헌을 바라보고있었다. 그의 다박수염과 맑은 눈, 곧은 성미를 말해주듯 곧게 날이 선 코마루, 우뚝 큰키에 부처님처럼 큰 귀…
두령은 어리둥절하였다. 하더니 혀가 굳어진듯 떠듬거리였다.
《혹, 혹시 충청도 공주계신 조헌나리님이 아니시오이까?》
《으응?! 내가 조헌이요, 거기는 누구요?》
《아니, 나리님이 틀림없으시구려. 나리님, 용서하옵소서. 제가 바로 송익필이나이다.》
《송익필?》
조헌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듯 두령의 너부죽한 얼굴과 두툼한 입술을 더듬었다.
송익필은 조헌이앞에 풀썩 무릎을 꿇으며 부복하여 큰절을 드리였다.
《나리님, 이 어찌된 일이오니까? 반갑소이다. 죄송하오이다.》 하고는 고개를 돌려 자기 동생을 찾았다.
《한필아, 조헌나리님이시다. 어서 이리 와 절을 드려라.》
《아니, 조헌나리님이시라구요?》
동생이라는 한필이 허둥지둥 조헌의 앞으로 나아가 《나리님-》 하고 오래간만에 제 부모를 만난듯이 목메인 소리로 나직이 부르며 엎드려 절을 하였다.
송익필은 자기 사람들에게 또 소리쳐불렀다.
《형제들, 다들 여기로 오우. 내가 늘 말하던 조헌나리님께 용서를 비우.》
《림꺽정》패들이 《뭐, 그래?! 우리가 큰일 칠번 했네그려.》, 《빨리 가서 조헌나리님께 용서를 빌자구.》 하면서 모두 달려와 조헌이앞에 일제히 절을 하였다.
《아니, 이러지 마소. 내가 그대들을 위해 한 일이 없는데 절은 무슨 절들이요. 자, 어서들 일어서우.》
조헌이 그들을 손잡아 일으켜주었다.
완기와 해동이, 덕보와 삼녀도 그 광경을 바라보며 눈굽을 적시였다.
《어른께서 늘 인자무적을 외우시더니 일은 바로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신씨가 혼자소리를 하면서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송익필은 조헌이앞에 머리를 깊이 숙이고 아뢰였다.
《저희 형제는 좌의정 로수신의 종으로 있던 송익필, 송한필이나이다. 세해전에 나리님이 공주교수로 계실 때 찾아뵙고 우리 형제의 억울한 사정과 아울러 불쌍하고 가련한 백성들의 형편을 나라님이 아시도록 상소를 올려달라던 노비형제이옵니다.》
조헌은 그때에야 송익필형제를 알아보고 크게 놀랐다.
그때 그들은 자기들이 남의 집 사노비들이라 감히 임금께 상소를 올리지 못하는 짐승과 같은 처지이고 글을 모르는 까막눈이여서 찾아왔다고 눈물을 흘리며 뼈에 사무친 원한을 다 쏟아놓았었다.
《아, 그랬었지. 그런 일이 있었지. 너희 형제를 이런데서 이렇게 만날줄은 몰랐구나. 응, 이 사람들아-》
조헌은 그들을 한꺼번에 꽉 안아주었다.
《내 너희들과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고싶지만 지금은 급한 일이 생겨서 빨리 인가를 찾아야 하겠네. 우리 집사람이 위급해서 그러니 어서 떠나야 하겠네. 이야기는 차차로 하자구.》
《예, 마님이? 이를 어쩌면 좋을가. 형제들, 빨리 길을 열어드리라구. 이런줄을 모르구 길을 지체시켰으니… 저희들이 드나드는 인가가 가까운곳에 있소이다. 거기로 가시오이다.》
《그러면 그렇게 해야지.》
《림꺽정》패들이 길우에 가로놓인 소나무를 재빨리 치웠다.
날은 각일각 어두워지고있었다. 눈바람이 차겁게 불어쳤다.
《형제들, 임자네들은 더 어둡기 전에 웅거지로 돌아가게. 나는 나리님을 모시고갔다가 래일 새벽에 돌아가겠소. 한필아, 너는 우리가 건사해두었던 사향과 곰열을 가지고 안골 할아버지집으로 급히 와야겠다.》
《알았수다.》
한필이와 《림꺽정》이들은 급히 어데론가 사라져버렸다. 이들은 량반부자들, 악질관리들을 치는 싸움을 벌리기도 하고 깊은 산중에서 사냥도 하고 산삼도 캐서 시장에 내다팔았다. 사향과 곰열도 그렇게 마련해두었던것이다.
조헌의 일행은 날이 어두워져서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마천령일대를 손금처럼 꿰들고있는데다가 부엉이처럼 밤눈이 밝은 송익필이 길잡이를 잘하여 그가 아는 할아버지집에 들어설수 있었다.
방은 단칸방이지만 몇사람이 발을 펴고 누울수 있을만큼 넓었다. 무슨 짐승의 기름을 내서 불심지를 만들었는지 방등불이 밝았다. 방도 더웠다.
이 집 주인할아버지는 아직 기력이 정정하여 사냥도 하고 화전도 일쿠어 살아가는 로인이다. 젊었을 때 관가의 등쌀에 못이겨 깊은 산속에 들어와 살아온지가 오래되였다고 한다.
신씨는 뜨끈한 아래목에서 급한 고비를 넘기고 솔곳이 잠들었다.
자정이 됨직할 때에 송익필의 동생 한필이 곰열과 사향을 가지고왔다. 모두 한시름 놓았다.
조헌은 송익필형제가 참으로 고마왔다. 몇해전에 자기를 찾아왔던 때와는 판판다르게 번져진 그 모습들을 보니 그때 그들이 하던 이야기가 생생히 기억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