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6

(4)

 

…송익필형제는 좌의정 로수신의 사노비였다. 그들은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노비였으니 어느 조상때부터 남의 집 종살이를 시작하였는지도 몰랐다.

전라도에는 로수신의 큰 목화농장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기서 뼈도 굳기전에 고역을 치르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병으로 죽고 아버지와 함께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불쌍하게 살았다. 더구나 아버지는 목화짐을 싣고 나르는 배사공노비여서 어린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하고 늘 바다에 나가있었다.

두 어린 형제는 돌아간 어머니가 그리워 울고 바다에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울고 목화밭에서 일을 하다가 배가 고파 울며 자랐다. 그들이 13살, 15살이 되여서는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지 않으면 안되였다. 노비라는 신분도 세습되고 그들이 하는 일도 세습되였기때문이다.

당시에 조정의 권세있는 량반관리들은 수많은 땅과 노비를 소유하고있었다. 그들은 땅이라도 전라도와 충청도의 비옥한 땅을 골라 사기협잡의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독차지하고 노비를 마소처럼 부려먹었다.

그때문에 국가의 토지는 점점 줄어들고 나라에 바치는 조세도 줄어들고 군량미도 줄어들어 군사도 유지하기 어렵게 되였다. 국고가 비여 나라형편이 몹시 힘들게 번져가고있었지만 량반관료배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로수신은 초겨울이면 목화를 산더미처럼 배에 실어다가 목화가 나지 않는 서북면에 팔아먹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서 서북면보다 더 추운 마천령이북 관북지방에 팔아서 폭리를 챙겼다. 그는 전라도, 충청도의 목화를 있는대로 사들이고 장사를 하여 돈낟가리를 쌓았다.

송익필형제는 이 목화짐을 나르면서 마천령을 여러번 넘나들었다.

어느해 초겨울이였다. 송익필형제는 아버지와 함께 전라도 목주포구에서 목화짐을 실은 배에 올라 돛을 올리였다. 목주에서 바다길로 한강까지, 거기서 한강을 거슬러올라 세포까지, 세포에서는 인마를 동원하여 마천령을 넘어야 했다. 세포고을에서 인마를 동원하는것은 그때 좌의정이였던 로수신이 세포고을원에게 관권으로 지시하면 되였다.

《북방백성들이 추운 때를 당하여 솜옷이라도 입혀야 하리라.》하고 자기의 장사행위를 공사로 뒤집어놓는것이다.

꾀바른 고을원은 이를 모를수 없지만 속는체하고 로수신의 지시를 공손히 받아들일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벼슬자리가 바람만난 초불처럼 흔들리기때문이다.

아버지는 한강배길을 향해 배를 몰았다. 강화도앞바다까지는 순풍이 불어서 살같이 달리였다. 하지만 갑자기 날씨가 사나와지더니 풍랑이 세차졌다. 아버지는 키를 잡고 집채같은 파도를 뚫고나갔다. 배는 물결우에 까마득히 떠올랐다가 떨어져내리군 하였다. 11월초의 바다물은 얼음처럼 차거웠다. 아버지는 파도속에서 있는 힘껏 웨쳤다.

《키가 부러졌다. 아- 다들 솜짝 하나씩 붙잡고 바다에 뛰여들어라. 아- 배가 뒤집히기 전에-》

아버지와 송익필형제와 배군 다섯이 솜퉁구리 하나씩 붙잡고 바다에 뛰여들었다. 그들은 거세찬 바다의 광란속에서 죽다가 남은 목숨을 겨우 건져낼수 있었다. 배는 큰 파도에 산산이 깨여졌다.

로수신은 《이놈들, 그게 어떤 배인데다 부서먹고 네놈들만 살아왔느냐. 네놈들을 다 팔아도 그 솜퉁구리 하나도 못산다. 이 죽일 놈들같으니-》하고 도끼로 나무패듯하였다.

아버지는 형틀에 올라 매를 맞았다. 그는 배의 선장이였던것이다. 곤장이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그의 온몸의 살점을 떼내고 뼈를 부스러뜨리였다.

《오냐 이놈들아, 어서 때려죽여라. 사지판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위로해줄 대신에 오히려 죽이려드는 악귀들아. 백성들을 죽이는 놈들이 정승대감이더냐. 내 임금께 상소하여 네놈을 릉지처참하도록 하겠다. 두고봐라. 내 죽은 뒤에 넋이라도 상소하겠다.》

《저놈을 매우 쳐라. 다시는 주둥아리를 벌리지 못하도록 해라.》

로수신은 길길이 뛰고 아버지는 그자리에서 숨졌다.

송익필형제도 죽도록 매를 맞고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대문밖에 내던져졌다. 어느 인정많은 의원이 그들을 안아다 병구완을 해준 덕에 살아날수 있었다.

송익필형제는 늘 아버지의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내 죽어서라도 임금께 상소하겠다는 목소리,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그 소원을, 마디마디 피가 쏟아지는 그 웨침을 임금이 듣게 할가.

나라법에는 노비들은 상소할수 없다고 되여있었다. 그러면 누구에게 부탁하여 임금이 백성들의 가련한 신세를 아시도록 상소를 올리게 하겠는가.

그들형제는 백성들을 위한다는 량반선비를 찾아다니며 간절히 호소하여 보았다.

《이놈들, 너희놈들이 무엇을 안다고 미친소리를 하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가.》

《무엇이 어찌구 어째? 네놈들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안다더냐. 네놈들이 지어낸 말이지? 이실직고해라. 류언비어를 꾸며내서 태평성대를 허물자고 하는구나.》

량반관리들은 송익필형제를 오히려 죄인취급을 해서 내쫓아버리군 하였다. 그러나 량반선비중에는 그들의 호소를 귀담아들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너희들의 말대로 상소를 올리려면 그 사실을 확인해보고 증인도 찾아내야 하리라. 그러자면 먼 한성천리길을 가야 하고 길량식과 로자도 있어야 하니 누가 제 쌀을 지고 제 돈을 내고 고생을 사서 하겠느냐. 또 그렇게 품을 들여 상소를 올렸다 한들 좌의정 로수신이 그 상소문대로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벼슬자리를 내놓을것 같으냐.

로수신은 로수신대로 상소내용이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차자를 올려 오히려 상소를 낸 사람을 거꾸로 뒤집어메칠수 있느니라. 좌의정이 수하관리들에게 무엇을 조금씩 먹이고 또 은근히 자기 편을 들지 않으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암시하면 그들은 상소의 부당성을 렬거하여 임금께 올릴수 있느니라.

이런 일은 매우 복잡하고 조심해야 하는게다. 참말이지 이런 일은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제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야 할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재목이 못돼. 다만 한사람이 있으니 공주교수 조헌이란 사람을 찾아가 뵈워라.》

이리하여 송익필형제는 전라도에서 공주까지 몇백리를 걸어서 조헌을 찾아오게 되였다고 하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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