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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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다음날 새벽에 한성장안에 파루가 장중하게 울려퍼지였다. 그 소리는 마치도 《일어나라, 새날이 밝았도다.》 하듯이 산천초목을 깨우고 임금과 신하들을 깨우고 온 나라를 깨웠다. 오늘에 있게 될 그 어떤 일을 예고하듯 긴 메아리를 남기고 멀리멀리 사라져가는 종소리, 그 종소리가 안아온것과 같은 사람 하나가 대궐문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조헌이다.

그는 품속에서 상소문을 꺼내여 당직승지에게 바쳤다. 그리고 대궐을 향해 네번을 절하고 부복하였다. 하회를 기다리려는것이다. 하회가 언제 있을지 알수 없다. 맵짠 추위속에서 부복해있다가 얼어죽을수도 있었다.

승지는 대궐객사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허나 나라가 각일각 기울어져가는데 어찌 더운 방에 들어가 제 한몸을 돌보면서 기다리고있겠는가. 임금께서 상소문을 보시고 깊은 잠에서 깨여나신다면 이 자리에 한덩이 얼음으로 굳어진대도 좋았다.

이 상소는 왜적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느냐 마느냐 하는것이고 작게는 조헌이 죽느냐 사느냐, 온 가족식솔이 남의 종이 되여 뿔뿔이 흩어져가느냐 마느냐 하는 운명적인 일이였다. 그러나 조헌은 그 모든것을 각오하였기에 끄떡없이 침착하게 기다리였다.

해가 락타봉우리에 반쯤 내밀었다가 장바 한기장만큼 솟아오를 때까지는 몰랐었는데 두어발 더 올라온 뒤에는 추워오기 시작하였다. 언땅에 깐 거적우에 두손을 내짚고 두무릎을 붙이고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는데 어찌 춥지 않으랴. 오동지섣달 찬바람이 그의 온몸을 얼쿠어버릴듯 불어왔다. 얼마전에 겪었던 마천령의 추위보다 더 엄혹한것같았다. 그때는 그래도 온몸을 움직이면서 추위를 이겨낼수 있었지만 지금은 꼼짝 못하고 부동하여 추위를 겪으니 당해낼수 없었다. 눈가루가 얼굴에, 온몸에 들씌워지고 또 들씌워지군 하였다.

한낮이 되였을 때에는 그의 손과 발이 얼음덩이처럼 얼어들고 저녁무렵에는 온몸이 돌덩이처럼 되였다. 그래도 대궐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궁담 한쪽옆에서 해종일 눈물겹게 아버님을 바라보고 서있던 완기는 눈물을 뿌리며 조헌이한테로 달려갔다.

아버님, 인제는 돌아가옵시다. 예. 아버님?》하고 조헌을 잡아일으키는데 눈에 얼어붙은 무릎이 떨어지지 않았다.

《인…경…이… 날 때까지… 기다…리겠…다.》

얼어든 입술사이로 간신히 새여나오는 말마디들이 분명치 않았다. 벌써 생명이 위험계선에 들어선것같았다.

해동이와 덕보도 달려와 《나리님-》, 《나리님-》하고 조헌의 손발을 주물러 드리는데 당직승지가 나왔다.

《그대는 너무 과하오. 그러다가 얼어죽겠소. 어서 집에 돌아가서 몸을 녹이도록 하오.》

조헌은 입술조차 뻣뻣이 얼어서 말하기가 어려웠지만 정신만은 분명하였다.

《전하…께서… 하회…를 내리지… 않으…시…면… 여기서… 얼어…죽어야… 하오. 백성들이… 얼어…죽고… 굶어죽는…데… 소신도… 그 백성…들과 함께… 죽으…리…다.》

안세희가 말달구지에 이불을 싣고 급히 달려왔다. 그는 갈린 목소리로 조헌에게 말하였다.

《중봉, 오늘은 이만하게. 집에 돌아가자구. 완기, 아버지를 살려내야겠다. 억지로라도 달구지에 모셔라.》

모두 달라붙어 새우등같이 꼬부라져 펴이지 않는 조헌을 조심히 안아들고 달구지에 눕혔다.

다음날도 조헌은 대궐문앞에 부복하였다. 아버지의 참대와 같이 곧고 강직한 성품을 알고있는 완기는 아버님과 함께 얼어죽을 각오를 하고 조헌의 뒤에 부복하였다. 또 그뒤에 해동이와 덕보도 나리님과 함께 얼어죽겠다고 엎드리였다. 네 사람은 빨아널은 빨래처럼 꽛꽛 얼어들고있었지만 누구도 일어설념을 하지 않았다.

이 전고에 없는 광경에 놀란 사람들이 왜 이런 일이 생기였는지 그 사연을 알고는 너무나 감동되여 눈물을 흘리였다. 그러나 조헌의 상소문에 규탄된 관리들은 본체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조헌은 상소문의 서두에 자기를 용서해주고 귀양을 풀어준 임금의 하해같은 은혜를 입었다고 백배사례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은혜를 입은 신하가 망해가는 나라를 보면서도 못본체 하는것은 죽어도 씻지 못할 죄를 짓는 일이여서 비록 귀양지에서 돌아오는 몸이지만 글을 올리지 않을수 없다고 하였다. 그 내용을 간략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에 왜나라의 강박에 못이겨 황윤길, 김성일 등을 왜나라에 가는 사신으로 임명한것은 왜놈들앞에 굴복한것과 같으며 나라의 수치, 치욕을 스스로 당한것이다.

또한 황윤길이 왜나라 사신으로 온 겐소라는 왜놈의 중에게 우리 나라 사신이 귀국에 가면 접대하는 절차에 대하여 묻자 《지금 말하기가 어렵다.》하고 성의없이 교만하게 대답한것은 우리 나라 사신을 국빈으로 접대하지 않겠다는것으로서 우리 나라를 심히 모욕하고 릉멸하는 왜놈들의 본심을 드러낸것이다. 무자(1588)년 상소에서 이미 제의하였던것처럼 왜사신을 당장 목베이고 있을수 있는 왜적의 침략에 대처해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귀양지에서 돌아오면서 직접 제 눈으로 본 사실들, 즉 굶어죽고 얼어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길가에 널려져있으며 고을마다, 마을마다 류랑걸식하는 백성들이 늘어나 빈집들이 수없이 많다고, 이런 무인지경으로 왜적들이 쳐들어오면 막을 사람이 없게 되여 나라는 하루아침에 무너질것이라고 피를 쏟듯 통탄하였다.

임금은 이 상소문을 보고 진노하였다. 임금이 현명치 못하여 나라가 망해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인것이다.

다음날 사흘째되는 날 중낮에 드디여 당직승지가 임금의 교지를 전달하였다.

《임금께서 지시하기를 <조헌은 간사한 도깨비다. 아직도 두려워하지 않고 조정을 경멸하면서 더욱더 꺼리끼는것없이 방자하게 놀고있는데 이 사람은 반드시 마천령을 다시 넘어가야 할것이다.>

또 지시하기를 <조헌은 심사가 아주 독한 사람으로서 처단당하는것을 모면한것만도 그로서는 다행한 일이다. 예로부터 바른말이 들어오는 길을 막지 말라는 성인군자들의 가르침도 있고 또 대사령이 내렸기때문에 특별히 내놓게 하였는데 이러한 사람에 대하여 우에 물어보지도 않고 급급하게 추천하여 민심을 혼란하게 만들었으니 아주 잘못되였다.> 라고 하셨소. 조헌은 그리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임금의 교지에 《대사령이 내렸기때문에 조헌을 특별히 내놓게 하였는데》라고 한것은 조헌이 아직 귀양지에 있던 지난 10월에 김제군수 정여립의 역모사건을 제때에 적발하고 그 일당을 모조리 잡아없애버린데 대하여 축하의식을 벌리고 온 나라에 대사령까지 내린것을 말한것이다.

조헌은 임금의 교지를 전달받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내리고 이 세상이 멀리 사라져버린것같았다. 그의 눈에 피같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아, 상감마마는 이 사람을 간사한 도깨비로 아시니 내 무엇으로 상감마마를 깨우쳐드릴수 있으랴. 나라님께서 이 사람을 마천령으로 다시 넘겨보내시고 만시름을 놓을수 있다면 이 몸이 마천령을 백번, 천번 넘은들 무슨 한이 있으랴.

그러나 오늘에 왜놈들을 방비 못하고 오늘에 간신무리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늘에 백성들의 살길을 열어주지 못하면 임금님의 바라심이 어이 이루어질수 있으랴. 아 상감마마, 어찌 이 신하의 곡진한 심정을 아시려고 하지 않으시나이까. 임금을 바른길로 돌려세우지 못하는 신하가 백인들, 천인들 살아서 무엇하리까. 내 응당 죽음으로 임금을 바른길로 돌려세우리라!)

조헌은 몸을 부르르 떨며 한생의 힘을 다 모아 누가 어쩔 사이도 없이 대궐주추돌에 세차게 머리를 찧었다.

《쿵-》하는 소리가 대궐의 얼어든 기둥을 흔드는데 고개를 드는 조헌의 이마에서 뜨거운 피가 걷잡을수 없이 뿜어져나왔다. 하지만 그는 육신의 생명을 다하여 다시 또다시 세차게 머리를 찧었다.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피는 흘러 그의 다박수염을 소리없이 적시고 그 다박수염에서 흘러내린 피는 흰눈을 붉게 물들이며 퍼져나갔다. 그것은 마치 대지에 피로 쓰는 조헌의 상소문처럼 사람들의 눈에 안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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