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2 장

정사가 부패하면 성돌이 썩는다

2

(1)

 

덕보는 삼녀와 혼례까지 치르고 옥천을 떠나 신각의 군영으로 돌아갔다.

그날 그는 10리, 20리를 따라나와 머리수건을 벗어 손저어 바래주는 사랑하는 삼녀의 모습이 하나의 점으로 사라지자 말을 다그쳐 몰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삼녀가 따라오는것만 같았다. 말을 더 빨리 몰아갈수록 그가 자기를 따라잡으려고 달음박질쳐서 달려오다가 돌부리에 채워 넘어지는 모양이 마음속에 가득차오르기도 하였다. 그래서 말을 멈춰세우고 뒤를 돌아보기까지 하였다.

《잘 가시오다. 몸성히 돌아오실 날을 기다리겠나이다.》

눈물이 가랑가랑 맺힌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며 웃던 삼녀, 첫날밤 초불아래 잠자리도 펴지 못하고 수집어 어쩔줄 모르던 삼녀를 생각하니 저도모르게 가슴이 설레였다.

그날밤 그는 자기보다 한살우인 삼녀였지만 사내대장부의 혈기로 그의 손을 덥석 잡아쥐였다.

《이리 좀 오우. 뭘 그리 부끄러워하우. 이미전에 내 그대의 발목을 물어준적도 있는데… 하하, 어디 한번 보자구. 다리에 물린 자리가 어떤지, 응? 그때 피가 나오게 물어주고 빨아주지 않았소.》

삼녀는 덕보가 신랑으로서 사내답게 접근하는것이 기쁜듯 살그머니 곱게 웃었다.

《후날 실컷 보겠는데 이밤에 꼭 보잘건 뭐람.》

삼녀는 더욱 점직해서 얼굴을 살짝 붉히며 치마자락으로 발을 감추었다.

《허, 발목에 허물자리가 없는 모양이구만. 없으면 내 색시가 아니지 않나. 난 내 색시감을 표적해두었는데 없으면 야단이다. 혼례를 물릴수도 없구. 하하. 이제라도 신랑노릇 그만두고 달아나야 할가부다.》

《호호호… 거기선 신랑노릇을 해야 하오이다. 그때 물어준 표적이 있으니 어서 보소이다.》

삼녀는 어느새 부끄러움도 잊고 치마를 조금 들어올리고 흰버선을 벗었다. 그리고 살며시 내보였다. 덕보는 백설같이 하얗고 귀엽게 생긴 발과 종다리를 정답게 쓸어만졌다.

《어마나.》

삼녀는 얼른 치마자락을 내리우고 발을 가드라뜨렸다.

《표적자리만 보시오이다. 호호…》

《하하하. 그러지.》

덕보는 벙글거리면서 총각의 머리태대신에 상투를 틀어올린 머리를 끄덕이였다.

삼녀는 다시 발을 내보이고 덕보는 행실이 바르게 상처자리만 보았다. 그것은 아래웃이발자리가 마치 꽃송이처럼 곱게 새겨져있었다.

《그참 상처자리가 유별나게 진달래꽃같구만. 합격일세. 당신은 내 색시가 분명하우.》

《저도 이 상처자리가 진달래꽃같아서 늘 이몸에 꽃을 새겨준 총각을 그려보았소이다. 언제나 만나볼수 있을가 하구…》

삼녀는 이렇게 행복에 겨워 속살거리며 치마를 내리웠다.

《가만, 그냥 놔두우. 아무래도 그 상처님에게 절을 해야겠소.》

《아이참, 절이라니요?! 호호호.》

《우리 한생 인연을 기이하게 맺어준 진달래꽃님인데 어찌 고맙다는 절을 드리지 않을수 있겠소.》

덕보는 몸을 절반쯤 일으키였다가 삼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절을 하겠다구 하고선…》

그러면서도 삼녀는 덕보의 품에 몸을 맡겼다.…

첫날밤을 그려보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져왔다. 덕보는 기운차게 박차를 가하여 말을 몰았다. 머리에 눌러쓴 벙거지의 붉은 술이 바람에 나붓기고 푸른 더그레군복잔등이 바람을 안은 돛폭처럼 부풀어올랐다.

더그레안에 받쳐입은 무명바지저고리는 삼녀가 새로 지은 옷이다. 차림새가 깨끗하여 군사로서의 기백과 청춘으로서의 젊음과 힘이 약동하였다.

그는 먼저 청주성밖 안심사로 가서 조헌나리님이 보내는 편지를 령규스님에게 전해야 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조헌나리님의 당부가 없었더라도 스님을 만나 인사를 드려야 할 사람이다. 7~8년전 아직 15살 어린 자기를 산속에서 구원하여주었던 스님을 여지껏 뵙지 못하였다. 그때 스님을 만나지 못했었다면 자기는 벌써 이 세상사람이 아니였을것이다.

처음엔 령규스님한테서 생명을 구원받고 다음엔 조헌나리님을 만나 다시 죽을번한 생명을 구원받지 않았다면 어찌 연안성군사로 자라날수 있었으며 얼굴곱고 마음고운 삼녀를 안해로 맞아들일수 있었으랴.

덕보는 조헌나리님이 자기를 바래워주며 하던 말이 귀에 쟁쟁해왔다.

《너의 뒤를 아는 사람이 이제는 없으니 걱정할것 없다. 너를 죄인으로 압송하였던 꺽다리 맹영달과 옥리는 임자를 놓치고 서로 책임을 넘겨씌우기를 하다가 나중엔 죽일내기로 싸움이 붙어서 둘다 죽고말았다. 이제는 근 10년이 가까와오니 그때 일을 기억해둘 사람이 없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이제부터 너에게는 가정이 있다. 언제나 신각부사님의 부하답게 무예를 열성껏 익혀서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야 한다. 머지않아 왜놈들이 기필코 우리 나라를 침략해올것이 분명하다. 알겠느냐?》

덕보는 조헌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옥천에서 청주까지 300여리를 하루반에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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