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3 장
또다시 올린 상소문
1
(2)
그는 남편처럼 남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처럼 여겼고 남의 슬픔을 자기의 슬픔처럼 여기며 눈물을 흘리는 어질고 착한 마음씨를 지녔다.
…먼 옛적에 그가 시집가던 때의 일이다. 신지향이 신부의 칠보단장을 곱게 하고 꽃가마우에 앉아 신랑집으로 가는 날이였다. 신랑인 조헌이 사모관대를 하고 말을 타고 앞서가는데 견마군이 《에라, 물러까라, 신랑님행차시다!》 하고 벙글벙글 웃으며 구경하는 남녀로소앞을 보란듯이 나아갔다.
신부의 가마가 동구밖의 정자나무를 지날 때 신지향은 조헌의 뒤모습을 정찬 눈길로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저이는 다섯살때 이 정자나무아래서 글을 읽으며 지엄한 대감의 행차를 멈춰세웠다지. 어쩌면 그리도 어릴적부터 신동이로 사람들을 놀래웠을가, 내 이런분과 혼례를 치르게 되였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내 한생 저이의 꺾어지지 않는 지팽이가 되리라. 이같은 생각이 꽃구름처럼 그의 가슴에 피여났다.
지향은 자그마한 자개박이귀중품함을 가슴에 꼭 그러안았다. 거기에는 부모님들이 한푼두푼 마련한 지참금 500금이 들어있었다. 풍족치 못한 선비님의 집에 시집가는데 지참금이라도 가지고가야 신랑의 학문을 성취시키는데 도움이 될것이였다. 내 반드시 랑군님을 문과장원을 할수 있도록 도우리라. 임금이 하사한 어화를 머리우에 꽂고 마을돌이를 하도록 이몸을 다하리라.
지향이는 이렇게 가슴을 설레이면서 말을 타고 앞서가는 조헌의 름름한 모습을 행복에 겨워 바라보았다.
어느덧 신랑신부일행은 옥계천시내가에 닿았다. 지향이는 가마를 내렸다. 가마군들이 가마에서 내리지 말고 그대로 앉아있으라고 하였지만 그것이 미안스럽고 송구스러웠기때문이였다. 조헌이 말에서 내렸다. 신부를 자기 말에 태우고 시내를 건느려는것이다.
지향이는 수집게 얼굴을 붉히면서 조헌의 부축을 받으며 꽃버선발을 말등자에 올려놓으려는데 교군 하나가 갑자기 《사람이 벼랑에서 떨어졌다-》 하고 소리치며 시내가의 웃쪽에 있는 절벽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아니 뭐, 이런 변봤나?!》 하고 다른 교군들이 화들짝 놀라며 앞서 달려가는 교군의 뒤를 따라갔다.
징검다리에서 몇십보밖에 안되는 가까운 시내가에 그리 높지 않은 절벽이 있는데 그밑에는 검푸른 소가 있다. 여기에 사람이 빠졌다는것이다.
조헌과 지향이도 자기들이 신랑, 신부라는것을 다 잊어버리고 뛰여갔다.
《신랑, 신부가 어디로 가는게요? 그만두시오.》
《신부가 시집가는 날에 이러면 안되오이다.》
교군들이 달려가면서 말렸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뛰였다.
먼저 간 교군이 물에 빠졌던 아낙네를 시내가로 끌어내왔다. 조금만 지체하였다면 아낙네를 구원하지 못하였을것이였다. 다행히도 우연히 벼랑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교군 하나가 보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될번 하였는가.
사람들이 달려들어 축 늘어진 아낙네를 엎어놓고 물을 토하게 하였다. 그리고 숨길을 열어주느라 급급히 서둘렀다. 했더니 막혔던 숨길이 돌아서고 잠시후에는 눈을 떴다.
《됐다. 이젠 살았다!》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낙네의 손발을 부지런히 주물러주었다. 아낙네는 잠자다가 깨여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릿두릿 살피고 또 사람들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듯 벌떡 일어나 비칠거리며 자기가 빠져죽으려고 하였던 소를 향해 걸어갔다.
지향은 《아주머니-》 하고 부르며 달려나가 아낙네의 손을 붙들었다.
《아주머니, 어디로 가시오이까?》
아낙네는 지향의 손에서 자기의 손을 뽑아내려고 몸부림쳤다.
《이걸 놔요. 왜 이 쇤네를… 죽지도 못하게… 놔요. 놔.》
사람들이 아낙네의 앞을 막았다.
《정신이 멀쩡해서 죽다니? 살려냈더니 이제 또 죽겠다? 미친짓 그만하구 진정하우.》
《참말 생각이 토끼꼬리처럼 짧기도 하구려.》
사람들이 자기를 꽉 붙잡고 진정시키려들자 아낙네는 풀썩 그자리에 앉으며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목놓아울었다. 그의 머리와 온몸에서 젖은 물방울이 흘러내리였다.
지향은 몸에 지녔던 하얀 손수건으로 젖은 머리칼이 풀어져내려 얼굴에 달라붙은것을 훔쳐주고 귀밑머리를 갈라 넘겨주면서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주머니, 왜 이리도 모진 마음을 먹었소이까. 왜?》
지향이는 아낙네가 너무도 불쌍하고 가련하여 저도 모르게 슬퍼져서 마지막말마디가 눈물과 함께 목에 꺽 메여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낙네는 녀인들사이에만 통하는 살틀한 정과 혈육같은 사랑을 느꼈는지 설음을 끅끅 눌러가며 띠염띠염 대답했다.
《삼년전에 꾸어먹은 환자곡을 리자까지 물지 못하겠으면 관가의 노비방에 와서 2년동안 잡역을 하라고 하기에… 그렇게 해서 2년을 채우고… 돌아오게… 되였는데… 관가에서… 남편을…옥에 가두었소이다. 흑, 으흑… 관가에서 한성대궐에 올리려던 진상품중에서 500금만치 나가는 금품이 없어졌는데 우리 주인이 훔친것이라고… 며칠동안 형장을 쳐… 팔다리가 꺾어지고… 다 죽게 되였는데 래일까지 500금을 바치지 않으면… 목을… 친다 하오이다. 으흑… 아, 죄는 천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더니… 억울하오이다. 억울…》 하고는 아낙네는 눈을 뒤집더니 그 자리에 까무라쳐 쓰러졌다.
모두 깜짝 놀라 어쩔줄 모르는데 지향이 얼른 아낙을 붙잡아 자기의 첫날비단치마무릎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고 아낙을 가만가만 흔들었다. 분단장을 곱게 한 그의 얼굴에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조헌은 급히 시내가로 달려가서 수건을 적셔가지고 달려왔다. 지향은 물이 흐르는 그 수건을 받아서 아낙의 얼굴을 차겁게 적셔주고 닦아주었다. 그리고 《아주머니, 정신을 차려요.》 하고 그를 흔들어깨웠다. 잠시후에 아낙이 눈을 뜨고 자기를 내려다보고있는 지향이를 멍청히 올려다보다가 슬픔이 되살아난듯 벌떡 일어서서 반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여보-오. 여보-오.》 하고 울음을 터뜨리였다. 아마도 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있는 남편을 부르는것같았다.
지향이는 아낙네를 두손으로 꼭 잡고 안타까이 달래였다.
《아주머니, 걱정말아요. 조금만 참아요. 오백금을 바치면 남편을 구원할수 있다니 얼마든지 살릴수 있소이다.》
아낙네는 한순간 울음을 그치고 꿈같이 지향이를 바라보았다.
《그 많은 돈이 어디에 있길래…》
《아주머니, 조금 기다려요.》
지향은 시내가에 세워놓은 가마에 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리고 자개박이귀중품함을 선뜻 아낙네에게 안겨주었다.
《여기에 500금이 들어있으니 어서 관가에 바치고 남편을 살려내시오이다.》
《아니, 그건 신부의 지참금인데 어떻게?!》
신부의 둘러리처녀가 놀라와하자 교군들이 또 입을 딱 벌렸다.
《응, 지참금을?!》
지향이는 신랑 조헌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 눈길에는 《사람을 살리고 봐야지요?》하는 무언의 말이 불타고있었다. 조헌은 벙글벙글 웃으며 그렇게 하라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날 아낙네는 그 500금으로 끝내 남편을 살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