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3 장

또다시 올린 상소문

1

(5)

 

그는 다시 붓을 달리였다.

《왜의 사신이 두 길로 갈라져올 때에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령남과 호남의 각 고을에서 아전과 백성들을 모조리 데리고 역참에 나와 많은 시일을 지체시키면서 대기시켰사옵니다. 그러면서 나라를 방비하는 문제는 하나도 관심두지 않았으니 얼마나 한심하오이까.

왜것들은 우리 사신을 접대할 때 푸대접을 하면서 우리 장수와 관리들을 천한 하인처럼 대하였는데도 전하께서는 그들을 후하게 대하라고 지시하시니 이는 실지 우리 나라의 운명을 단축시켜 영영 자기 힘으로 일떠설수 없게 하는것이며 우리 백성들의 힘을 손상시켜 적을 물리칠수 없게 하는것이니 어찌 통곡할 일이 아니오리까. 더우기 놀라운것은 왜나라에서 돌아온 통역관들이 도요또미의 오만무례한 언사를 온 나라에 퍼뜨렸기에 선비들도 저마다 되뇌이고 백성들도 못들은 사람이 없는데 조정에서는 널리 퍼질세라 겁내면서 사전에 조처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있사옵니다. 전하까지도 간사한 무리들의 술책에 빠져들줄을 생각이나 하였겠사오이까.》

이 대목은 임금의 분노를 자아낼수 있게 하여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수 있었다.

임금을 조롱하고 임금의 무능을 지탄하는것으로 해석되여 받아들일수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조헌은 임금이 이 글을 보고 정신을 차려서 나라와 백성을 지킬 용단을 내려야 하겠기에 자기의 목숨같은것은 생각지 않았다.

본래 학문이 깊고 글씨도 또한 명필이여서 그가 써내려가는 글발은 창과 칼을 틀어잡고 줄을 맞춰 내닫는 군사의 대오처럼 기백이 넘치였다.

도요또미가 우리 사신을 다섯달동안이나 만나주지 않은것은 바로 우리 사신을 억류한것이고 도요또미가 자식을 안고 앉아 조선사신을 대한것은 우리를 어린애처럼 본것이옵나이다.

적의 괴수가 간악하고 교활하여 그 속심을 추측할수 없는데도 우리 사신이 돌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왜적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지 않을것이라고 하여 조야의 마음을 풀어놓았사옵니다. 이른바 그와 마음을 같이한다는 대신은 그가 사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고 요란스럽게 칭찬하면서 금띠의 높은 벼슬을 받게 하는 은총을 도적질하게 하였사옵니다.》

이것은 임금이 왜나라에 갔다온 황윤길, 김성일, 허성을 불러 만나보던 때의 일을 두고 말한것이다.

그때 임금이 먼저 정사 황윤길에게 물었다.

《왜가 우리 나라를 침략할 기도가 보이더냐, 보이지 않더냐?》

《도요또미가 한번 뛰여넘어 명나라를 먹어치우겠다고 하면서 그때 우리 나라가 저들을 따르지 않으면 재앙을 면치 못하리라고 한것으로 보아도 도요또미가 우리 나라를 침략할 기도를 드러낸것이옵니다.》

황윤길이 이같이 고하니 선조왕의 얼굴이 흙빛으로 되였다.

명나라는 우리 나라와 대비도 안되게 큰 나라이다. 그런데도 명나라를 치겠다 하니 우리 나라쯤이야 식은죽먹기로 여길것이 아니냐. 얼마전에 령의정으로 오른 리산해와 좌의정 류성룡을 위시하여 여러 문무백관들도 임금과 마찬가지로 얼굴빛이 죽어들어갔다. 류성룡은 왜나라에 사신을 보낼것인가 말것인가를 론의할 때 왜놈들이 우리 나라에서 랍치해간 《포로》들을 돌려주면 사신을 보내자던 사람이다. 이 《포로》는 왜놈들이 랍치해간 비법불법행위이므로 응당 당당히 맞서 찾아올 문제이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 구걸할 일이 아니다. 그때문에 그는 왜나라에 강경한 립장에 선 사람들에게서 비난을 받았었다. 류성룡이 임진전쟁 전기간에 임금을 보좌하고 일처리를 잘하여 명재상으로 일컬었지만 초시기에는 이같은 과오를 저질렀었다.

선조왕은 다음으로 부사 김성일에게 물었다.

《부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소신은 정사의 생각과 다르오이다. 왜놈들은 겉으로 기고만장하여 큰소리를 치고있지만 그것은 다 허장성세일뿐이고 우리 나라를 칠만한 힘이 없는줄로 아오이다.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비록 왜땅을 통일했다 해도 아직도 반대파세력이 많고 사무라이들과 백성들의 불만이 크오이다.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본시 아비어미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떠돌아다니면서 밥을 빌어먹던 천한 놈이라 배운것은 칼부림밖에 없고 망나니짓밖에 모르는데 어찌 감히 우리를 먹으려 들겠소이까.》 하고 왜놈들을 극히 경시하였다.

선조왕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얼굴이 밝아졌다.

리산해 , 류성룡이도 빙긋이 웃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다음으로 선조왕은 만족한 웃음을 그대로 머금은채로 서장관으로 갔던 허성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소신은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리라고 여겨지나이다.》

《뭐? 침략해올것이라고?》

임금이 재차 물었다. 허성은 단연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대신들은 또다시 술렁이였다.

《허- 서장관은 왜땅에 가서 겁을 먹었나보군.》 하고 허성의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허성은 왜놈들의 오만무례한 언행에 몸을 움츠리고 왜인 선위사가 하자는대로 하였었다. 그것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사신으로서의 대범성과 너그러움으로 왜인들을 포섭한다는 리유도 있었지만 대개 겁났기때문이였다. 하지만 김성일은 허성의 행동을 꾸짖고 왜의 위협과 공갈을 물리치면서 사신의 존엄과 위세를 보여주었다. 그는 왜오랑캐를 깔보고 나라의 존엄과 명예를 위하던 나머지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흉심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나라앞에 엄중한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선조왕과 대신들은 그의 큰 오유를 분간치 못하고 김성일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임금은 만족하여 사신들이 사나운 바다를 건너 나라의 존엄을 떨치고 돌아왔다고 그 공을 평가하여 벼슬품계를 높여주고 금띠를 주었었다.

그러나 조헌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 말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것은 아직 다가오는 세월이 갈라주겠지만 그 세월에 앞서 김성일이 나라앞에 씻을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음을 벌써 예리하게 판단한것이였다.

조헌은 벼루에 붓을 찍어서 상소문을 계속 써나갔다. 그는 자기의 심정을 직필하였다. 붓대는 참대다. 참대붓대처럼 그의 충의지심이 어찌 에돌거나 구부러들수 있었으랴.

그는 썼다. 임금의 은총을 입게 되면(군사지휘권을 맡겨주는것.) 말을 타고 남쪽땅으로 가서 군사를 정비하고 도요또미가 침략해온다면 맞받아나가 치면서 왜땅에 격문을 보내여 도요또미의 부하군사들이 창을 돌려 괴수 도요또미를 치라고 호소하겠다고, 그러면 불만이 많은 부하오랑캐속에서 도요또미를 칠 사람들이 나올것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도요또미의 흉심을 명나라에 빨리 알려서 나라와 나라사이에 쐐기를 박으려는 왜의 리간책동을 꺾어버리는것은 촌각이라도 지체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제의하였다.

조헌은 마지막으로 피와 눈물과도 같은 하소로 상소문을 끝맺었다.

《음산한 구름이 걷히지 않고 하늘의 해가 항상 그늘져 있삽기에 신은 나라를 근심하고 울분에 찬 눈물을 금할수 없사오니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글을 받들어올리나이다.

 신묘(1591)년 3월 15일》

조헌은 붓을 놓고 혼곤히 잠들어있는 안해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부인, 내 또 임금께 올리는 상소문을 썼구려. 임금이 나를 다시 귀양을 보내면 나는 열번이고 백번이고 가겠소. 그러나 외롭지 않소. 내 비록 부인이 앓는 몸으로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해도 내 마음속엔 당신이 열번이고 백번이고 나와 함께 갈것이기때문이요.)

그는 안해의 이불귀를 꼭꼭 눌러주며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왜나라에 갔던 우리 나라 사신을 하인처럼 대하면서 위협공갈도 서슴지 않았다는 도요또미의 오만무례한 언행에 대한 소문은 날과 날이 흐를수록 한성과 지방에 널리 퍼져나갔다.

바로 이런 때 안해의 침상앞에서 쓴 조헌의 상소문이 임금께 올라왔다. 열렬한 애국충정과 분격이 가득찬 조헌의 목소리는 나라의 긴급비상종소리처럼 온 조정을 흔들어놓았다.

홍문관과 사헌부, 사간원에서 련이어 임금께 차자(해당 문제의 옳고그름을 밝히는 짧은 글)를 올려 조헌의 상소가 민심을 소요시키므로 해당 법조문에 걸어서 처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선조왕은 그렇게 할수 없었다. 나라걱정에 자기 머리를 짓쪼아 피를 뿌리며 죽으려 하였던 사람이 다행히 살아나 또다시 나라걱정으로 죽으려고 하는 뜻이야말로 의기남아만이 지니는 장한 기개라고 생각을 고쳐하였다.

선조왕은 문득 어느해인가 길가에서 보았던 버마재비가 생각났다.

수레를 몰아 사냥길에 올랐는데 길바닥에 밤알만한 버마재비가 날카로운 집게발을 추켜들고 수레와 맞서 길을 비키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놈은 앞으로만 나갈줄 알고 물러설줄을 모를뿐만 아니라 상대가 저보다 열백배 커도 두려움을 모르는 놈이였다.

선조왕은 그것이 장하여 《저놈이 사람으로 태여났다면 천하무적의 장수로 되였으리라.》 하고 웃으며 수레를 돌려 버마재비를 피해 간적이 있었다. …

선조왕은 조헌이를 그것과 대비할수는 없었지만 임금과 조정을 상대로 홀로 맞서는 조헌을 생각케 하였다. 오죽하면 앓는 안해의 침상앞에서 상소문을 썼겠는가. 전하께 미칠 화가 박두한것을 그려보니 가슴이 무너지고 부득불 눈물을 뿌리며 말하지 않을수 없다고 하였겠는가. 그에게 임금과 신하사이 의리가 남달랐기에 이렇게까지 한것이 아니냐.

선조왕은 조헌을 처음과는 달리 보게 되여 련이어 올라오는 차자를 깔아두었다. 어찌보면 조헌은 지진이 림박하여 그것을 피터지게 울면서 알리는 산중의 이름없는 새와도 같았고 또 어찌보면 전장에서 홀로 남아 적과 끝까지 싸우는 장수와도 같이 여겨졌다. 그는 조헌을 좀 더 두고보리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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