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3 장

또다시 올린 상소문

2

(1)

 

신묘(1591)년 8월초 충청도관찰사 리성중이 당쟁에 몰려 파면되고 상주목사 윤선각이 충청도관찰사로 벼슬이 껑충 올라 부임차로 충청도땅에 들어서고있었다.

군사들과 수하관리들이 주런이 따라선 긴 행차대렬가운데 울긋불긋 장식한 6인교가 둥실 떠가고있었다. 그안에 윤선각이 몸을 의지하는 안석에 엇비스듬히 젖히고 앉아있었다.

살이 올라 둥글둥글한 얼굴에 군턱이 져서 턱이 두개처럼 보였다.

배는 불룩이 나와서 허리에 띤 은고리띠가 제자리에 붙어있지 못하고 푹 처져내려 사타구니에 걸려있었다.

행차는 엄엄하고 위풍당당하였다. 행차의 선두에 주라와 북과 징 그리고 장새납까지 엇섞여들면서 길군악을 울리니 위엄이 더한층 돋구어졌다. 윤선각은 마음이 흐뭇하였다. 충청도는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온화하여 곡식이 잘되고 바다와 면해있어 어물이 많으며 또 배길이 좋아서 물산을 배에 싣고 오가며 장사도 하기 쉬웠다.

그리고 제일 좋은것은 쯔시마의 왜놈들이 가까운 경상도와 전라도에 많이 침입해왔지만 충청도에는 거리가 멀어서 그럭저럭 조용한 편이다.

잘만 하면 이번에 관찰사로 도임할수 있도록 김공량에게 뢰물로 바친 재물의 몇곱절은 그러모을수 있었다. 돈이 돈을 낳고 재물이 재물을 낳는다고 그 돈과 재물로 더 큰 뢰물을 만들수 있다. 그것이면 관찰사가 다 무엇이랴. 정승벼슬에도 오를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선각에게는 하나의 큰 장애물이 있었다. 그것은 옥천고을의 조헌이다. 조헌은 관찰사든 그 누구든 비법불법행위를 보면 즉시에 폭로규탄하는 선비이다. 그는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임금이라 할지라도 대바른 소리를 하고야마는 칼날처럼 예리하고 시우쇠(강철)처럼 강직하다. 대쪽처럼 꺾어지면 꺾어질지언정 굽힘을 모르는 사람이기에 귀양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도 또 상소를 하지 않았던가. 임금이 상소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임금을 바른길에 돌려세우지 못한 신하가 살아서 무엇하겠는가고 하면서 죽음도 두려움없이 제몸을 아끼지 않았으니 이런 사람앞에서 조심해야 하는것이다.

윤선각은 젊은 시절에 조헌과 함께 병조의 좌랑청에서 좌랑벼슬을 지닌적이 있었다.

병조의 좌랑청은 나라의 군량미와 군포를 받아들이고 보관관리하다가 각지 군영에 내보내는 일을 맡아하였다.

윤선각은 상관인 병조판서의 눈에 들려고 애썼다. 마침내 판서의 생신날이 며칠 앞두고있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관흥창(군량미창고)의 군량미를 소바리로 실어내갔다. 이때 관흥창앞을 지나가던 조헌이 멀어져가는 쌀달구지를 보게 되였다. 그는 창고지기에게 물었다.

《웬 달구지냐?》

《윤좌랑님이 판서님의 생신날에 쓸것이라고 하면서…》

《몇섬이냐?》

《벼 열섬에 콩 두섬해서 열두섬이오이다.》

《그걸 출고장부에 적어넣었느냐?》

《못했소이다. 소인이 적어넣으려고 하니 윤좌랑님이 며칠후에 그 수량만큼 보충해넣겠다고 하길래…》

창고지기는 규정대로 군량미를 처리하지 못한것이 켕기였던지 말끝을 채 맺지 못하였다.

《너는 창고지기 소임을 맡을만한 재목이 못되니 곤장 30대를 맞고 쫓겨나게 될것이다.》

창고지기는 조헌의 대바른 성품을 아는지라 당황하였다.

《좌랑님, 소인이 얼른 달구지를 돌려세워가지고 오겠나이다.》

《그렇게 해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

잠시후에 량곡달구지가 되돌아왔다. 윤선각이 얼굴이 벌개서 따라왔다. 조헌은 그를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윤좌랑이 하마트면 아찔한 낭떠러지끝으로 달구지를 끌고갈번 하였네그려. 내가 멈춰세웠기 망정이지 달구지와 함께 곤두박힐번 했네.》

윤선각은 자기의 비법행위가 드러난것도 그렇거니와 상전에 발라맞추려는 속심이 드러난것이 더욱 창피하였다. 그런데 조헌이 웃으며 롱담삼아 질책해주니 불안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허, 내가 왜 아찔한 벼랑끝으로 갈가. 흥-》

《낟알바리가 병 판댁으로 들어가면 그게 곧 뢰물바리라 사람들이 규탄하고 임금께 상소가 들어가면 자네가 어떻게 될번 하였나, 응? 그게 바로 낭떠러지라니까. 하하하.》

윤선각은 그후에도 조헌의 눈에 여러번 걸려들어 줄땀을 빼군 하였다.

윤선각이 좌랑벼슬에서 승진하여 정랑벼슬에 오르고 조헌이 사헌부 감찰벼슬에 올랐을 때였다. 정랑이라면 병조의 노란자위와 같은 벼슬자리로서 무관을 등용, 조동, 해임에 이르기까지 문건을 작성하여 병조의 당상관들과 의논하고 임금의 인준을 받아 시행하는 직분을 맡는다. 북방이나 남쪽의 작은 진영의 만호로부터 첨사도 정랑이 기안하여 우에 제기하면 대개 그대로 되였다.

남다르게 칼과 창을 다룰줄 알거나 활을 좀 쏘는 사람들은 윤선각에게 잘 보이려고 주안상을 차려놓고 기생까지 데려다가 푸짐하게 대접하거나 윤선각의 집으로 남몰래 드나들었다. 이렇게 등용되여 변방진영에 나간 만호, 첨사들은 뢰물을 바치느라고 소비되였던 돈과 재물을 봉창하기 위한 일에 일반군사들을 내몰았다. 관할지역의 섬에서 나무를 찍어놓으면 목재장사군들이 배를 몰고와 실어가게 하고 왜놈밀수군들을 눈감아주어 뢰물을 받기도 하고 고기잡이도 하여 어물장사군들에게 팔아먹기도 하였다. 이러니 어떻게 나라의 변방이 허술해지지 않겠는가?

조헌은 감찰의 직분으로 윤선각의 비행을 폭로규탄하는 상소문을 썼다. 승정원을 거쳐 임금에게 올리기전에 먼저 윤선각에게 보였다.

《이 글을 상감께 올리겠다는건가?》

상소문을 들고있는 윤선각의 손이 떨렸다.

《올리려고 품들여 썼네. 그러나 자네가 다시는 그런짓을 하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하면 이 자리에서 불태워버릴수도 있지.》

윤선각의 흙빛으로 컴컴해졌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약속하네. 자네가 늘 정신이 번쩍들게 나를 깨우쳐주니 고맙네. 고마와…》

《그렇다면 나와 약속할것이 또 하나 있네. 그게 뭔가 하면 자네가 비법적으로 추천하였던 만호나 첨사중에 자기의 리욕을 채우면서 변방을 어지럽히고있는자들을 골라 파면하자는 제의를 임금께 올리게. 아울러 자신이 정랑으로서 할바를 다하지 못한 잘못을 속죄하게. 그러면 상감께서 자네를 쓸만하다고 생각하실거네.》

《알겠네. 꼭 그렇게 하지.》

조헌은 한시름 놓은듯이 엄정한 자세를 풀고 껄껄 웃으면서 윤선각이 보는데서 상소문을 불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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